조직 상처 감수하고 유착 의혹 수사 확대 방침…‘역풍 우려’ 신중론도 고개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찰은 이번 버닝썬 사건 수사의 중심을 ‘유착’에 맞추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특히 경찰 유착뿐만 아니라 클럽 ‘아레나’ 탈세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유착 의혹이 불거진 국세청과 구청, 소방서 등에 화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강도 높은 수사로 인해 조직이 입는 상처를 피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수사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신의 한수’가 될 것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버닝썬 사건과 관련, 경찰이 유착 의혹에 집중할 방침이다. 특히 조직 내부는 물론 국세청, 구청, 소방서 등 다른 기관 유착 의혹까지 샅샅이 확인할 방침이다. 사진은 민갑룡 경찰청장. 사진=임준선 기자
# 경찰의 버닝썬 수사의 핵심은 ‘유착 의혹’
버닝썬 사건 초기만해도 경찰은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경찰 입장에선 클럽이나 유흥주점에서 종종 벌어질 수 있는 ‘오래된 폭행 사건’에 불과했다. ‘연예인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았다면 이정도로 관심이 집중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 경찰은 폭행과 마약 등 사건 전반에서 불거진 의혹 수사를 강남경찰서에서만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폭행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던 ‘경찰 유착’ 의혹이 증폭되기 시작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버닝썬과 경찰 간 ‘뇌물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전직 경찰 강 아무개 씨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게 기점이 됐다. 앞서 마약과 성폭행 등 클럽 내 사건이 여러 갈래로 비화하는 상황이었지만 경찰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건 이때부터다.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공식 수사 착수와는 별개로 유착 의혹에 대응한 경찰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유착에 집중되는 시선을 돌리기 위한 ‘소재 찾기’가 첫 번째다.
이 소재 찾기는 지난 2월 중순부터 약 보름 동안 이어졌다. 본청(경찰청) 범죄정보과를 비롯한 경찰 정보라인이 총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강남 지역 클럽 전반에서 각종 첩보, 의혹 등을 수집했다. 주로 고위직 공무원, 재벌가 2‧3세, 연예인 등의 마약 투약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일부 유의미한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 갈래는 클럽 ‘아레나’ 수사다. 앞서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해 아레나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고 150억 원 대 탈세 혐의로 강남경찰서에 고발했다. 강남경찰서는 그동안 아레나 탈세 수사에 수사 인력을 1명을 배치했지만 최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참여해 수사 인력을 확대했다. 이번 아레나 수사는 승리의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 수사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뒤늦게 아레나 수사에 나선 이유는 따로 있다.
경찰은 국세청이 클럽 아레나 탈세 조사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유착 정황을 포착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경찰은 아레나 탈세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정황을 포착했다. 구체적으로 세무조사 과정에서 업무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아레나 수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경찰 관계자는 “강남권에 유흥업소 10여 곳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 아무개 씨가 클럽의 실소유주로 지목됐는데도 조사 과정 전반에서 빠져 있었다”며 “최초 제보와 조사 결과를 비교했을 때 사건이 약 5분의 1가량 축소됐다는 점 등도 정확한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소방서 ○○○만원’ 등의 내용이 담긴 컴퓨터 파일도 확보했다. 경찰은 아레나 측이 유흥업소의 식품위생법 위반과 소방안전시설 관련 규정을 단속하는 공무원들에게 편의 제공을 청탁하며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국세청과 강남구청, 소방서 등을 주요 대상으로 공무원 유착 의혹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경찰 입장에선 버닝썬-경찰의 유착 의혹에서 유흥업소-공무원 간 의혹으로 사건건을 확대하고, 사실로 드러나면 경찰 수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경찰은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최초 제보 내용과 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서류 등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앞서의 아레나 장부를 토대로 구청과 소방 공무원 등에 대한 의혹도 확인하고 있다.
# “유착 의혹 집중, 역풍 불 수 있다” 신중론도
최근 승리 성접대, 정준영 불법 촬영과 유포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 유착 의혹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은 오히려 침착한 분위기다. 관련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뒤인 지난 13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유착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당혹스러움’ 또는 ‘위기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 청장은 이날 서울지방청 광역수사대에 지능범죄수사대, 사이버수사대, 마약수사대 등 지방청 최고 역량 수사팀이 합류한 특수팀을 꾸리고 126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이미 한 달 전부터 유착 의혹에 대한 사실 확인과 수사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 왔고, 일부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번 특별수사팀 투입도 하루아침에 정해진 게 아니다”라며 “앞으로 특수팀의 유착 수사는 조직 내부뿐만 아니라 조만간 바깥으로도 향할 예정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찰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 유착 의혹과 불신을 모두 걷어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착 수사에 집중할 만한 여건도 충분하다. 최근 ‘승리, 정준영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비롯된 성매매 알선과 불법 촬영 등이 크게 부각되는 것과 달리 수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증거인 카카오톡 대화방 관련 자료를 확보했고, 피의자들의 신병이 확보됐으며 수사에도 협조적이다. 심지어 일부는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유착 수사에 인력이 다소 집중되더라도 ‘카카오톡 대화방’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내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승리와 정준영이 참여한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경찰 유착 의혹이 추가로 드러났다. 사진=고성준 기자
반대로 신중론도 나온다. 경찰이 유착 의혹 수사가 자칫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적지 않아서다. 수사뿐만 아니라 특별 내부감찰 등을 통해 대대적인 의혹 걷어내기에 착수했는데도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
경찰은 버닝썬 유착 의혹과 관련해 지구대와 일선 경찰서 관계자가 연루된 정황은 파악했다. 그러나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입건된 현직 경찰관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결과 유착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불신의 시선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유착 의혹 역시 수사 결과를 끝까지 지켜봐야하는 상황이다. 국세청은 아레나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억울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아레나 조사는 정상적인 절차대로 이뤄졌다. 세무조사, 법리 검토 등의 과정에서 최초 제보 내용과 조사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레나 장부’도 현재로선 사실 확인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돈을 받은 사람이나 돈이 전달된 날짜 등이 적혀 있지 않아서다. 이 경우 본격적인 뇌물 수사에 착수하기 어렵다.
경찰 유착 의혹이 포함된 권익위원회 의뢰사건이 최근 일선 검찰청에 배당된 점도 변수다. 권익위는 지난 11일 경찰 유착 의혹에 대한 부패행위 신고와 승리, 정준영 의혹 관련 공익신고 두 건을 대검찰청에 수사의뢰 했다. 대검은 14일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검찰이 직접수사를 할지, 경찰에 수사지휘를 할지는 사건을 배당 받은 검사가 결정한다. 현재까지 직접 수사 여부가 정해지진 않았다. 검찰이 직접수사에 나서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는 그대로 진행되지만 방향이 일부 틀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