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관계자 “미국과는 콘텐츠 풍부함 자체가 달라...한국형 시리즈물 존재 필요성은 분명”
한국형 시리즈물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준 ‘신과 함께’ 시리즈. 사진 =리얼라이즈픽쳐스
[일요신문] 21세기 헐리우드의 키워드는 ‘연속성’이다. 헐리우드는 여러 영화의 연속성을 앞세워 시리즈물을 제작하며 전 세계 영화계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20세기 헐리우드 영화에 연속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헐리우드엔 ‘스타워즈’, ‘스파이더맨’, ‘쥬라기공원’, ‘나홀로집에’ 등 시리즈물이 등장했다. 모두 영화팬들에게 적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헐리우드가 자랑하는 ‘연속성’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연속성을 더욱 확장하는 모양새다.
최근 10년 동안 헐리우드에선 ‘시네마틱 유니버스’란 영화 제작 방식이 대세로 떠올랐다.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선 여러 단편 영화의 스토리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다. 마블과 DC 그리고 레고 등 오랜 기간 고유의 콘텐츠를 구축한 기업들은 각자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기업들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마케팅 효과는 다양하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가 연속적으로 개봉할 경우, 자사 영화 및 관련 콘텐츠를 향한 고객들의 충성도가 자연스레 높아진다. 여기다 초기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경우 ‘흥행 지속성’이 보장된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영화팬들의 반응 역시 상당히 좋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 분위기는 헐리우드와 사뭇 다른 모양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고사하고, 연속성을 띄는 시리즈물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2017년과 2018년 개봉한 ‘신과 함께’ 시리즈가 흥행 대박을 터뜨리는데 성공했지만, 그 외엔 다른 시리즈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 “마블, DC 등 미국 히어로물? 남녀노소 모두가 아는 만화 캐릭터… 세대 초월하는 킬러콘텐츠. 한국은 무에서 유 창조해야”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며 전 세계 영화계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마블 스튜디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국내 영화계 관계자들 역시 “국내 흥행 시리즈물 탄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국내 영화 제작사 관계자 A 씨는 “최근 ‘신과 함께’ 시리즈가 두 작품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했다”면서 “탐정, 조선명탐정 등 한국형 시리즈물의 명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한 단계”란 것이 A 씨 설명이다. A 씨는 “헐리우드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의 장점은 풍부한 이야깃거리”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블의 작품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마블은 1900년대 초·중반부터 만화를 통해 수많은 히어로 이야기를 그려왔다. 여러 이야기가 비축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 미국만큼 깊이 있는 시리즈물이 나오기 힘든 환경”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관계자 B 씨는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팬층을 가진 ‘헐리우드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의 등장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B 씨는 “한국 영화 역시 이런 국제 흐름에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전했다.
B 씨는 “미국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살펴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지도를 갖춘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슈퍼맨이나 헐크, 스파이더맨 등이 대표적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랜차이즈 캐릭터를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면, 흥행에 대한 부담 역시 그만큼 적어진다. 최소한 본전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블이나 DC의 세계관은 부모님도 알고, 자녀들도 안다. 콘텐츠 그 자체만으로도 세대를 초월하는 셈이다. 정말 큰 무기다. 하지만 한국엔 세대를 초월하는 스토리가 그리 많이 축적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영화인들 입장에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셈이다.” B 씨의 말이다.
B 씨는 “국내 영화계 상황을 헐리우드와 직접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영화계 역시 캐릭터 기반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을 만들 만한 역량이 충분하다. 흥행하는 시리즈물이 ‘뚝딱’ 나오긴 어렵지만 앞으로 많은 실험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웹툰을 기반으로 한 ‘신과 함께’ 시리즈의 흥행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국내 영화인들은 국산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한다. 이들은 “지속해서 시리즈물 성공작이 나온다면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 한국 영화계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연 한국형 ‘어벤져스’는 등장할 수 있을까. 영화인들이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가 새로운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