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32] 500년 역사 깃든 왕과 왕비의 영원한 안식처
남양주의 유릉. 조선 27대 순종과 순명효왕후, 순정효왕후의 무덤이다. 연합뉴스
조선은 1대 왕인 태조 이성계부터 27대 왕인 순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은 이들 왕과 왕비의 무덤 총 44기 중에서 북한 지역에 있는 2개 능(제릉, 후릉)과 폐위된 연산군묘와 광해군묘 등 4기를 제외한 40기다. 제릉(개성)은 태조 이성계의 원비(임금의 정실)인 신의왕후의 무덤, 후릉(황해북도 개풍군)은 제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무덤이다.
조선왕릉은 크게 두 가지의 조건으로 입지가 정해졌다. 그 중 하나는 ‘배산임수’ 등 풍수사상에 기초한 길지(명당)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조상의 덕으로 자손이 복록을 받기를 바라는 발복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궁궐이 있는 한양(서울)을 중심으로 40km 이내에 능이 위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39.27km) 안에 두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궁궐과 거리가 가까워야 왕이 자주 능에 찾아가 ‘효’를 실천할 수 있고, 왕의 참배 때 드는 백성들의 수고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왕릉 중 장릉(단종의 능)을 제외한 대부분은 이 기준에 따라 서울 시내와 근교 등지에 자리하고 있다. 단종의 경우,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유배돼 죽임을 당한 영월에 묘가 조성되었고, 사후 240년 만에 복위되어 능호를 받았다.
조선왕릉은 크게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 등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진입공간은 왕릉이 시작되는 공간으로, 참봉 등이 머물면서 왕릉을 관리하고 제향(나라에서 지내는 제사)을 준비하는 재실과 금천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금천교란 ‘건너가는 것을 금하는 다리’라는 뜻을 지닌 석조물로 능역과 속세를 구분하는 경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제향공간은 제사를 통해 산 자(왕)와 죽은 자(능에 모신 왕이나 왕비)가 만나는 공간이다. 능역의 홍살문에서부터 제향공간이 시작되며,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제례를 지내는 정자각이다. 끝으로 능침공간은 ‘죽은 자의 공간’이다. 봉분이 있는 왕릉의 핵심공간으로, 왕이나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을 말한다. 봉분 둘레와 전면에는 인물상과 동물상을 비롯한 의식용 석물들을 배치해 능실을 보호하고 왕의 영원한 안식을 지키려 했다.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 연합뉴스
유교적 세계관이 확고했던 조선 왕실은 최고 통치자인 왕의 무덤에 지극한 의미를 부여했다. 죽은 왕의 무덤을 신성하고 엄숙한 성역으로 삼아 참배함으로써 백성에 충효의 모범을 보이고, 왕실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왕릉은 봉분의 조성 형태에 따라 단릉(왕과 왕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능), 쌍릉(왕과 왕비의 봉분을 하나의 곡장 안에 조성한 능), 합장릉, 삼연릉(한 언덕에 왕과 두 명의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능), 동원이강릉(같은 능역에서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을 조성한 능) 등으로 구분된다. 한 언덕에 3기의 봉분이 나란히 조성된 삼연릉의 경우, 헌종이 두 명의 왕비와 함께 잠든 경릉이 유일하다.
조선의 왕 중에서 홀로 외롭게 영면에 든 왕은 왕조를 개창한 태조(건원릉), 후대에 복위된 단종(장릉),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정릉) 등 3명뿐이다. 반면,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두 명의 황후와 함께 한 봉분에 잠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숙종의 경우엔 자신이 사랑했던 4명의 ‘왕비’와 함께 서오릉에 묻혀 있다.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인 명릉,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 익릉, 그리고 한때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은 희빈 장씨의 무덤(대빈묘)이 이곳에 자리해 있다. 대빈묘의 경우 경기도 광주에 폐허처럼 버려져 있다가 1970년에 서오릉으로 옮겨졌다.
조선왕릉은 6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왕릉에서의 제례의식, 즉 ‘산릉제례’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 조선은 개국 이래 산릉제례를 엄격히 지켜왔으며, 광복 이후로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그 전통을 이어받아 제례를 집행하고 있다. 조선왕릉이 단순히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