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 대가성’ 입증 쉽지 않아…결론 내기까지 다소 시간 걸릴 전망
최근 클럽 ‘버닝썬’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 일부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었다. 경찰은 일명 ‘정준영 카톡방’ 불법촬영물 유포 사건은 지난달 말 검찰에 송치한 뒤 잔가지를 정리하고 있고, 클럽 내 마약 투약 및 유통 의혹 수사 역시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사관 150여 명이 모인 전담팀을 구성해 집중했던 만큼 속도를 낼 수 있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유독 경찰 유착 의혹 수사는 제자리다. 연예인이 연루된 각종 의혹과 마약 사건 수사 등에 못지않은 화력을 쏟아 붓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지난 15일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도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유착 수사와 관련해 속 시원한 결과를 내놓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결론 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경찰이 클럽 버닝썬과 경찰 유착 의혹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경찰 유착 의혹 수사는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경찰관들에 대해선 내부 감찰과 수사가 투트랙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의혹이나 제보가 확인된 경찰관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주변 인물이나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로도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찰은 현재까지 유착 의혹을 받는 경찰관 총 8명을 입건해 ‘대기발령’ 조치했다. 버닝썬 미성년자 출입 사건부터 연예인 카톡방에서 언급된 ‘경찰총장’ 윤 아무개 총경뿐만 아니라 다른 클럽 등에서도 유착 의혹이 번지고 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관을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문제는 수사가 더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사건이 부상된지 3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유착과 관련해선 명확한 결론이 나온 게 없다.
일각에선 ‘늑장 수사’를 한 만큼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사실상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항변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유착 또는 뇌물 수사는 보안과 속도가 생명인데 이번 수사는 경찰 첩보나 고소 접수 등이 아닌 언론보도 등을 통해 시작된 만큼 둘 다 놓치고 시작했다”며 “관련자들이 미리 준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런 경우엔 수사가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유착과 뇌물 등 수사 특성과 절차상 시간이 지연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설명도 있다.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 한 명의 금융계좌, 카드 사용 및 전화 통화내역, 기지국 수사 등을 하는데 모두 영장을 받아야 한다”며 “영장도 계좌나 통화내역 등 수사대상에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는 증명이 있어야 발급 받을 수 있다. 단톡방이나 마약 등 일부 사건들은 명확한 증거가 있어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기서 연루된 관계자나 또 다른 수사 대상이 나오면 이 절차를 반복해 밟는다.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라고 덧붙였다.
영장 등 절차를 마무리해도 넘어야할 문턱은 또 있다. 유착을 입증하려면 ‘청탁과 대가’가 확인돼야 하는데, 경찰은 여기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의혹을 받는 대상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전면 부인을 하고 있어서다.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입건된 경찰관 대부분은 현재 이 단계에 멈춰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앞서의 ‘경찰총장’으로 언급된 윤 총경은 경찰 조사 결과 승리와 유리홀딩스를 공동 설립한 유인석 전 대표로부터 여러 차례 골프와 식사 접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청탁이나 대가성 여부 등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윤 총경은 승리와 유인석 유리홀딩스 전 대표가 강남에 설립한 술집 ‘몽키뮤지엄’이 2016년 7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신고를 당하자 부하 직원을 통해 수사 과정을 알아봐 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선배나 간부급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내용이 뭐냐’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며 물으면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건 사실이다. 구체적인 요구 없이 간단히 몇 마디만 하고 끊더라도 ‘사건이 소극적으로 처리됐다’는 식의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며 “문제는 정황이 뚜렷하더라도 청탁과 대가성이 입증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피의자들로부터 명확한 증거와 진술 등을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서 실패하면 사실상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버닝썬’ 외에도 ‘아레나’를 비롯한 강남 클럽 전반과 최근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황하나 씨 봐주기 수사 의혹 등에서도 경찰 유착이 있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아레나는 탈세 수사와 관련해 유착 의혹이 불거졌고, 황하나 씨에 대해선 과거 경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혐의가 입증되면 곧바로 입건하고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을 경우엔 감찰실에 통보해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