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장돈은 물론 빠른 대출 통해 수억 빼돌려
[대구=일요신문] 남경원 기자 = ‘요즘도 보이스피싱에 당하면 바보다’ ‘적어도 통장에 돈이 있어야 당하지’ 보이스피싱에 대해 안일한 생각을 가지면 큰 오산이다. 날로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은 그간 우리가 알던 어눌한 연변 말투에 어설픈 경찰행세를 하던 과정을 넘어서 통장에 없는 돈까지 대출로 빼가는 수준에 도달했다.
지난 4월 초 대구에 사는 50대 여성 A씨는 이틀간 보이스피싱을 통해 2억9000만원을 빼앗겼다. 범인은 A씨의 계좌에 있던 돈은 물론 A씨 명의의 카드론 대출까지 받아 돈을 챙겼다. 범행은 단계별로 아래와 같다.
A씨는 휴대폰을 통해 한 쇼핑몰로부터 소액이 결제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최근 쇼핑몰을 결제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의아했던 A씨는 문자메시지에 기록된 번호로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000쇼핑몰 입니다.” 자연스럽게 상담원과 연결된 A씨는 쇼핑몰에서 물건을 산 적이 없다고 항의했다. “고객님의 명의가 도용될 경우 이런 신고가 들어오는데요, 요즘들어 잦은 편이네요. 우선 경찰서에 사건 신고를 넣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후 경찰서로부터 직접 A씨에게 연락이 왔다. 쇼핑몰 상담원과 경찰은 사실 보이스피싱범이다.
# ‘원격제어앱’ 설치부터 유도
경찰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A씨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했다. 우선 경찰(범인)은 “약식 조사 진행에 앞서 피해자의 금융거래내역 확인 및 본인 인증 등 몇 가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원격제어 프로그램(팀 뷰어)’을 설치하라고 했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던 A씨는 의심 없이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 ‘원격제어 앱’ 통한 인터넷 뱅킹
이때부터 범인은 원격제어를 통해 피해자의 휴대폰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 원격제어로 직접 ‘금융기관 앱’에 접속해 인터넷 뱅킹을 시도하는 것이다. “보안상 노출이 되면 안되니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본인도 볼 수 없도록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놓으세요. 그리고 스피커폰을 이용해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범인의 지시대로 A씨는 자신의 폰을 뒤집어 놓은 채 통화를 이어갔다. 덕분에 범인들은 A씨의 모든 금융기관앱에 전속해 범인의 계좌로 이체했다. 이체에 필요한 승인번호나 OTP 번호는 피해자로부터 직접 확인하면 된다. “OTP 보안등급을 강화해야겠네요. 비밀번호 대조가 필요하니 실시간으로 OTP카드에서 생성되는 번호를 알려주세요.”
# ‘사건 연류됐다’ 예금 해지 및 이체한도까지 올려
자신의 돈이 이체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던 A씨는 다음날 범인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보이스피싱범은 더욱 대담한 범행을 벌였다. “A씨가 대포통장 명의자로 확인됐습니다. 사건 피의자들의 출금 기록을 확인해야 됩니다. 피해자 보유 계좌의 잔액들을 확인하고 있는데요, 그 계좌에 대한 금전이 범죄수익금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되니 빠른 이체를 위해 예금을 모두 해지하고 이체 한도를 1억까지 올리세요.”
범죄에 연루가 됐다는 사실에 겁이 난 A씨는 또다시 범인의 말대로 은행으로가 이체 한도를 올리고 예금을 해지했다. 이후 범인은 또다시 ‘원격제어앱’을 이용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접근, 같은 수법으로 전화기를 뒤집어 놓으라고 한 채 인터넷 뱅킹으로 금전을 모두 이체했다.
# ‘원격제어앱’으로 카드론 대출까지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범인은 기왕에 연결된 원격제어 앱을 통해 A씨가 소유한 카드회사를 통해 카드론 대출을 받았다. ARS로 간단한 본인 인증을 통해 대출이 이뤄지는 간소한 절차를 악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보이스피싱범은 A씨로부터 이틀만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1억8000만원의 통장잔고와 범인들이 피해자 명의로 받은 카드론 대출 1억1000만원 등 2억9000만원을 유유히 털어갔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의심을 못한 A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보이스피싱임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하게 됐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 관계자는 “출처 불명의 문자메시지나 유선으로 휴대폰 앱 설치를 요청할 경우에는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므로 절대 설치하지 않아야 된다”면서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할 10가지를 ‘대구지방경찰청 페이스북’을 주변 지인들과 공유해 보이스피싱 피해가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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