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당 200~300명 동원령…“버스 대절 땐 번호판까지 보이게 사진 찍으라고 해”
자유한국당은 광화문 장외투쟁을 위해 의원당 ‘200~300명 동원령’을 내렸다. 당 내부 곳곳에선 “독재시대도 아니고 너무한 것 같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4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 규탄 장외 집회. 최준필 기자
한국당은 선거법 개편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걸고 세를 끌어 모으는 데에 총력을 다했다. 한국당은 소속 의원들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수도권 지역구를 둔 의원들에게는 300명,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에게는 200명이라는 지침도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이를 구두가 아닌 공문을 통해 문서화했다. 이 공문은 각 의원실 팩스를 통해 전달됐다.
당은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시사항도 내렸다. 한 한국당 소속 보좌진은 “지역에서 대절하는 버스의 경우, 버스 번호판이 보이게 사진까지 찍으라고 하더라”라며 “가까운 경기도권은 버스대절보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런 경우는 버스 번호판을 찍을 순 없었다. 하지만 장외투쟁 장소에 인원이 모였을 때는 그 지역의 당협위원회 깃발을 찍는 등 당에 인원이 모인 것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의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동원력을 증명하면, 이는 차후 공천이나 당무감사 등에서 지표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보좌진은 “이런 걸 다 모아놨다가 나중엔 ‘당 기여도’로 판단하기도 한다. 공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라며 “물론 이게 큰 변수가 되겠나. 잘하는 사람은 당 기여도가 낮아도 공천을 주고, 공천 주기 싫은 사람은 당 기여도가 높아도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보좌진들에 따르면 지역구의 동원 대상은 대부분 지역의 당원들이었다. 이들은 당협위원회 소속의 이름으로 버스에 올라탔고 장외투쟁에 참석했다. 버스 대절을 위한 비용도 각 의원실마다 차이가 있었다. 한 의원실은 참석자들이 각자 비용을 갹출해 버스를 대절했다고 밝혔다. 반면, 또 다른 의원실은 당협위원회에서 버스 대절을 도왔다고 말했다. 어차피 당원들은 당비를 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각 의원실은 직원들을 광화문으로 불러 모았다. 의원실의 직원은 최대 9명이다. 이 가운데 지역구 직원을 제외한 5~6명 정도가 여의도 국회 사무실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별한 사정이 있는 직원들을 제외하고 광화문으로 불렀다.
장외투쟁에 참석한 인원을 두고 주장이 엇갈렸다. 경찰은 2500명, 한국당은 2만 명으로 엇갈린 추산을 내놓았다. 이날 장외투쟁에 참석했던 한국당 직원들은 ‘1만 명’에 무게를 실었다. 이날 현장과 가까운 장소에서 대한애국당 집회도 열렸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이날 태극기부대가 엄청 많이 왔다. 한국당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태극기부대 인원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태극기부대가 근처에 있었으니 그나마 한국당 사람 수가 많아보였지, 한국당의 절대적인 수는 태극기부대와 견줄 수가 없더라”라며 “태극기부대 처음 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한국당이랑은 비교도 안 됐다”라고 밝혔다. 한 비서관은 “태극기부대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나중엔 세종시 가서 장외투쟁 한다는데, 공무원만 있는 그곳에서 뭐하겠냐. 태극기부대도 없는 곳에서 하면 (집회 참석자 규모가) 다 들통난다”고 말했다.
참석자의 평균 연령대는 대한애국당 집회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한 관계자는 “그날 40~50대가 많이 모였다. 물론 30~40대가 주를 이뤘던 촛불 집회에 비하면 나이가 좀 있지만 그리 연령대가 높진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또 다른 비서관은 “(참석자들 가운데 청년은) 굉장히 극소수였다.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날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황교안! 황교안!’을 연호했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하지만 근처의 대한애국당 집회에 비해 소극적이었다는 말도 나왔다. 또 다른 보좌관도 “거기(대한애국당)는 밥 먹고 집회만 하는 사람들인데 한국당이랑 비교가 되겠나. 태극기부대 집회에 슬며시 가봤다가 정말 놀랐다”라며 “‘김정은 칼로 찔러 죽이자!’ ‘따발총으로 쏴죽이자!’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서 ‘못살겠다 갈아 엎어버리자’라는 아우성이 나오더라. 대한애국당 집회는 한국당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험악하더라. 한국당이 집회를 해봤자 얼마나 해봤겠냐”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당은 장외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는 27일 지난번과 같은 장소인 광화문에서 장외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향후 집회의 규모가 더 커지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부 관계자는 “지금 이 규모로 봤을 땐 앞으로 더 커지기 힘들 것”, 또 다른 관계자는 “점점 더 결집해서 커지고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현재 장외투쟁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징성이 있는 세종시로 장외투쟁 장소를 옮긴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전국을 순회하자는 제안도 제시됐다. 산불이 난 강원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며 장외투쟁을 하자는 다양한 의견도 나오는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당이 공문을 통해 동원령을 내리고, 직원들을 소집한 것에 불만도 털어놨다. 앞서의 관계자는 “아마 당 지도부는 이번 장외투쟁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 명 모았지만, 대한애국당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적은 수 아니겠나”라며 “게다가 동원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말만 하면 다 나오는 줄 아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300명 동원? 이건 당 대표도 원내대표도 못 채우는 숫자다. 노력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독재 같다”며 “무슨 집권여당처럼 행세한다. 당 지지율이 60~70%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것도 지지율을 보고 지시를 내렸어야지. 제가 10년 넘게 한국당에 있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앞서의 비서관도 “한국당의 장외투쟁은 자기만족밖에 안 된다. 그날 참석해보니, 일반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제1야당으로서 적절했다. 동원을 더 해야 한다. 물론 공문까지 보내면서 동원하는 것보다는 자발적으로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강권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참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