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걸고 마약 안 했다”에서 “내 몸에 어떻게 마약이 들어갔지”로 번복 …‘씨제스’는 정말 몰랐나 의혹도
연예계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을 박유천의 4월 10일자 기자회견 현장. 그가 이 자리에서 주장한 내용은 결국 마약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거짓’이 됐다. 사진=고성준 기자
박유천의 인생 굴곡이 완벽하게 급강하를 탄 지점은 지난 4월 18일이다. 앞선 16일 간이 소변 검사에서 마약 ‘음성’ 반응이 나와 한시름 놨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마약 정밀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이 대중들에게 공개된 것은 4월 23일의 일이었지만, 국과수는 18일 경찰에 먼저 결과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4월 넷째 주에는 박유천과 그의 전 연인이자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그리고 마약 공범 황하나 씨(31)와의 대질 조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됐다. 경찰은 “굳이 대질 조사가 필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취소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박유천의 마약 검사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17일부터 3차례에 걸친 경찰 조사에 임했던 박유천은 전신의 대부분이 제모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마약 수사선상에 오른 마약 사범들 사이에서는 “모발은 무조건 짧게 자르거나 염색할 것. 체모는 제모할 것”이란 ‘팁’이 돈다. 일정 시일이 지나면 검출되지 않는 소변 검사는 큰 문제가 없지만, 체모의 경우 모근에 남아있는 성분으로 덜미를 잡힐 수 있으니 이를 물리적으로 제거해 혐의를 피하라는 것이다.
박유천 역시 마약 수사를 앞두고 제모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혐의를 피하려고 수를 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당시 박유천 측은 “원래 콘서트 등 활동을 앞두고 꾸준히 제모를 해 왔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박유천은 동방신기와 JYJ 활동 시절 콘서트나 일반 방송 무대 활동에선 거의 제모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17일 경찰의 첫 소환조사에 응한 박유천. 사진=고성준 기자
경찰은 제모 되지 않은 박유천의 다리털 일부를 채취해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했고, ‘필로폰 양성 반응’ 결과를 얻어냈다. 실제 제모에 면피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박유천의 몸 안에 마약 성분이 있었다는 사실 만큼은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부정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 만큼, 박유천의 주장은 여기서 또 한 번 바뀐다. “인생을 걸고 마약을 한 적이 없다”에서 “마약 성분이 어떻게 체내에 들어가 검출된 것인지 알아보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치 앞서 황 씨가 박유천을 두고 주장한 “나에게 마약을 권유하고, 자고 있는 내게 강제로 마약을 주사했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다. 양 측의 남은 공방전에서 박유천도 황 씨를 ‘강제 마약 투약자’로 지목할 것인지 언론은 물론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마약 전문 수사관은 “대마를 피는 무리들 사이에 있다가 머리카락에 대마 성분이 묻어서 양성 반응이 나온 것 같다는 주장은 들어 봤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 안에 필로폰이 들어가고 그 성분이 모근에서 발견됐다는 주장은 처음 듣는다”며 의아해 했다.
일반적으로 필로폰은 정맥 주사를 이용해 투약되기 때문에 멍이나 주사 자국이 남지 않을 수 없고, 만일 ‘누군가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투약되더라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어려울 정도로 뚜렷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필로폰이 나도 모르게 내 몸 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박유천 측의 주장은 신빙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4월 18일 2차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박유천.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경찰은 박유천이 직접 필로폰을 구입한 정황과 근거 자료를 확보해 그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박유천이 마약상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일정 금액을 입금한 뒤 ‘물건’을 가져가는 듯한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을 입수했다. 박유천이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던지기’는 거래상이 일정 장소를 지정해 물건을 두면 마약사범이 이에 대한 대금을 지불한 뒤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서로에 대한 자세한 개인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면하지 않고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마약사범이 이용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박유천이 올해 2~3월 사이 필로폰을 3차례 구매한 뒤 5차례에 걸쳐 투약한 것으로 범죄 사실을 기재하고, 그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박유천은 매번 0.5g의 필로폰을 구매해 총 1.5g를 사들였다. 일반적으로 필로폰의 1회 투여량은 약 0.03g이니 박유천은 최대 50회를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을 사들인 셈이다.
경찰은 박유천이 필로폰을 구매한 뒤 공범인 황 씨와 함께 투약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초 박유천은 마약 구매로 의심되는 CCTV 영상에 대해 “모르는 계좌에 돈을 입금한 것은 맞지만 황 씨의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마약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황 씨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CCTV 영상에 대해서도 “부탁받은 물건이고 마약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마약의 실질적인 구매자를 특정하는 데 남은 수사 방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박유천과 ‘마약 공범’ 관련 진실 공방을 벌여야 할 황하나 씨.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그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4일 공식 입장을 내고 “박유천과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씨제스 측은 “박유천의 결백 주장을 믿고 지난 4월 10일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의 말대로 마약 검사 결과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성 반응 결과를 받고 참담한 심경”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박유천은 2월 새 앨범 발매, 3월 콘서트 준비 등으로 한창 바쁠 시기였다. ‘그 사이에 설마 마약을 했겠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씨제스가 황하나의 마약 의혹을 과연 몰랐을까에 대해선 의문점이 남는다. 박유천 외에 김재중 역시 황하나를 알고 있었고 ‘약’과 관련된 소문도 황 씨의 지인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박유천에게) 그 영향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박유천의 주장을 믿은 건 순진한 게 아니라면 씨제스 측도 알면서 묵인한 것, 둘 중 하나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유천의 구속 여부가 결정될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4월 26일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