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결과와 성과급 직결돼 공공기관들 혈안...마사회 “PCSI 아닌 자체 시행 ‘고객 성향 조사’ 준비하는 차원”
경마 경기가 열리는 렛츠런파크 서울.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박은숙 기자
[일요신문] 기획재정부에서는 매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PCSI)’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한다. 조사 대상 기관을 유형에 따라 나누고 그 기관의 기능별로 그룹화해 그룹별 상대평가를 실시한다. 그룹 내 1:4:4:1 비율로 S-A-B-C 등급을 매긴다. 이는 ‘대국민 서비스 품질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실시되는 연례 행사다. 하지만 공정하게 실시돼야 할 PCSI에서 마치 ‘짜인 각본’처럼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그 의혹을 받는 곳은 한국마사회다.
지난 3월 28일 발표된 2018 PCSI 결과에서 마사회는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돼 문화 관람 그룹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이로써 마사회는 이번 조사까지 총 4년 연속 최고등급을 획득하게 됐다. 김낙순 마사회장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마사회의 국민신뢰 회복 노력이 거둔 성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마사회 내 일각에서는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PCSI 과정이 공정한 절차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S등급을 받는 과정에서 편법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편법의 내용은 일명 ‘우호 고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렛츠런파크, 지역별 문화공감센터 등을 자주 찾는 단골들과 ‘우호 관계’를 쌓고, 이들을 조사 대상으로 참여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PCSI에서 긍정적 답변을 당부 받은 이들이 조사원들을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조성했다는 것이다.
과거 마사회 영업장을 자주 찾았다는 A 씨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만족도 조사원들을 특실로 안내해 조사를 진행하도록 했다”면서 “특실은 거기(영업장)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내가 가던 곳은 특실에 오는 사람들을 미리 예약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특혜를 줬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사전에 조사에서 좋은 점수를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다른 행위는 없이 말로만 부탁하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점에선 단순히 ‘말로 부탁하는 정도’를 넘어선 곳도 있었다. 실제 ‘일요신문’이 입수한 ‘우호고객 간담회 개회’ 제하의 마사회 내부 문건에는 고객성향조사 및 고객만족도 조사 대비 우호고객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상세히 적시돼 있었다. 간담회가 잡힌 이유는 고객만족도 설문조사에 대한 답변 요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레 이 자리에는 마사회 측과 함께 경마고객이 참석했다. 이외에도 우호 고객에게는 사은품이 제공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서울 소재의 한 문화공감센터. 경마일(금~일)에는 마권 발매 및 경마중계가 이뤄진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일요신문’에 관련 의혹을 제보한 현직 마사회 관계자 B 씨는 “우호고객 관리 업무를 직접 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원이 대면 조사를 위해 장내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혼잡 유발 등을 이유로 다른 곳으로 동선을 유도하고 사전에 ‘섭외’된 고객과 접촉하도록 만든다. 그런 업무를 맡으면서 자괴감도 들었다. 양심에 걸리는 일 아닌가”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마사회 관계자 C 씨 또한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묻자 “모두 사실이다. 나도 그런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이어 “마사회 내 거의 모든 사업체에서 만점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 지금 당장 무작위로 같은 내용을 조사하면 그런 점수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이에 기재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그랬고 PCSI 관련 지적 사항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기관을 상대로 조사에 직접 나서는 인원들은 기재부가 아닌 리서치업체 관계자들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서도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교육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사기간 사전 공지 문제와 관련해선 “내부에서 논의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PCSI 과정에서 ‘편법 동원’ 의혹에 대해 마사회 측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마사회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 2000년대 중반 도로공사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이후로 조사 방식이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에 교육 받은 고객을 참여시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PCSI를 사전에 준비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조사 고객 범위나 표본수가 조사를 임박해서 정해진다. 또한 조사에 임하는 리서치 업체를 미리 알 수 없기에 접촉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우호 고객 간담회와 관련해선 “PCSI가 아닌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고객 성향 조사’를 준비하는 차원이었다. 매년 초에 실시하는 PCSI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 ”고 말했다.
한편, 마사회 외에도 많은 공공기관들이 PCSI 결과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들 기관들이 이 조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 결과가 돈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각 기관의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되고 성과급 등과도 연결된다.
사회공공연구원 관계자는 “PCSI의 투명성과 공정성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돼 온 부분이다. 기재부에서는 계속해서 보완책을 내놓고 있지만 지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라며 “조사 결과가 성과급과 연결돼 있는 점도 불공정을 유도한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