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강간·뇌물·외압의혹 등 3갈래 수사 ‘벽’ 부딪혀…윤중천 개인범죄 찾아내 압박중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1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검찰이 특수 수사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을 처리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핵심 진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입’을 확보하기 위한 신병 확보(구속)는 수사 성공까지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첫번째 산이다. 이 단계를 잘 넘으면 핵심 피의자의 유죄 입증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수사 성공 여부의 8할이 달려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사람을 놓고 검찰과 언론에서는 ‘키맨(Key man)’ 혹은 ‘귀인’이라고 부르는데, 뇌물 사건의 경우 공여자(준 사람)가 이에 해당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에서는 전통적인 수사 방식이 첫 단계부터 실패에 부딪혔다. 귀인이 될 수 있는 인물은 단연 건설업자 윤중천 씨. 김학의 수사단은 김 전 차관에게 성접대를 했고 그 과정에서 특수강간이 있었다는 의혹의 열쇠를 쥔 윤중천 씨부터 구속하려 했지만, 법원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문무일 검찰총장 임기에 맞춰 7월 말까지는 끝내야만 했던 수사가, 더 길어질 수도 있게 됐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수사단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알려진 윤 씨 체포로 시작…‘다른 범죄’로 법원 찾았지만 ‘기각’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의 계획은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윤 씨의 개인 비리를 통해 윤 씨의 신병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성접대가 아니었다” “뇌물성 대가는 없었다”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고 한 적이 없다” 등 김학의 전 차관을 향한 수사 흐름에 ‘반하는’ 입장으로, 수사에 비협조적인 윤 씨를 구속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
검찰이 찾아낸 윤 씨의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지난 2008년 A 건설업체 공동대표로 취임한 뒤 골프장 건설 인·허가 등의 명분으로 억대의 돈을 받아 챙긴 혐의다. 또 김 전 차관을 통해 검찰 수사를 무마해주겠다며 사업가 B 씨로부터 돈을 받은 의혹도 받고 있다.
수사단은 윤 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전, 윤 씨가 진술 태도가 구속 전후로 바뀔 가능성을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윤 씨가 현재 조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에 신병 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체포까지 선택한 게 아니겠냐”며 “이미 언론에 알려진 윤 씨를 체포까지 하는 것은 겁을 주려 한 것도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체포될 경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며 겁을 먹고 진술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수사단 관계자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진술 확보를 위한 영장 가능성을 인정했다.
개인 범죄로 윤 씨를 구속하면 성접대 및 뇌물 의혹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진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는데, 법원은 순순히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법원은 윤 씨에 대한 체포 영장은 발부했지만, 정작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수사를 개시한 시기와 경위,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범죄 혐의 내용과 성격,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에 비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수사개시 시기 및 경위’ 등을 언급한 것을 감안할 때 ‘별건 수사’라는 윤 씨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윤 씨는 체포된 뒤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거나 진술을 일체 거부했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검찰이 과거에 잘못해 놓고선 이제 와서 다시 조사하는 게 상당히 억울하다”며 “구속시키려고 별건 수사를 하고 있다”며 부당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단 원래 3갈래 수사에 한 갈래 추가 불가피?
원래 검찰의 계획은 윤 씨를 구속한 뒤, 윤 씨를 상대로 크게 3갈래의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다. ▼별장 성접대 당시 특수강간 여부 ▼성접대 외 뇌물 제공 여부 ▼검찰 수사팀 및 당시 청와대 외압으로 인한 1, 2차 수사 봐주기 의혹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앞선 핵심 혐의 2가지에 대해서 진술이 필요했던 윤 씨를 구속하는데 실패했다는 것. 수사단은 다시 윤 씨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사단은 뇌물죄 공소시효 문제를 고려해 윤 씨의 2012년 전후 행적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는 한편, 윤 씨의 다른 성범죄 의혹도 확인에 나섰다.
실제 수사단은 최근 윤 씨 주변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성관계 동영상 및 이를 캡처한 사진들을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피해여성 이 아무개 씨와의 성관계 동영상 캡처 사진 등이 있는데, 이 씨는 “2008년 1월쯤 서울 역삼동에서 윤 씨가 강제로 김 전 차관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2013년 검경 수사 때 진술한 바 있다. 이 씨는 2014년에는 검찰 수사에서 영상 촬영 당시 김 전 차관과 윤 씨에게 합동 강간을 당했다는 점도 언급한 바 있는데, 검찰은 윤 씨의 추가 성범죄 의혹이 김학의 전 차관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 중이다.
영장이 기각됐지만, 유죄 입증이 가능한 윤 씨의 개인 범죄를 검찰이 찾아내 압박하자 윤 씨의 태도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실제 4월 23일에 이어 이틀 만에 이뤄진 소환조사에서 윤 씨는 첫 조사 때와 달리 거부권을 행사하진 않았다. 개인비리 혐의는 부인했지만, 김 전 차관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이 원하는 답도 일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별장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라고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직 진술 자체가, 전반적으로 검찰이 원하는 수준의 내용은 아니라는 게 수사단 안팎의 평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나친 별건 수사라는 것.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미 앞선 2차례 수사를 통해 검찰이 면죄부를 줘놓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수사 영역을 확대해 억지로 잡아넣는 것은 되레 검찰이 ‘정권의 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김 전 차관에 대해서 확실하게 확인을 하면 될 것을 억지로 성과까지 내려는 것 같다. 과거 검찰에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결국 영장이 기각되는 탓에 수사단 계획보다 2주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길어지는 수사…문무일 총장 임기 전 끝내야 하는데
윤 씨를 귀인으로 만들지 않으면, 수사는 난관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검찰 상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 내부에서의 해결책(특별수사단)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임기 내에 끝낼 것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7월 25일로 임기가 끝나는 문무일 총장. 90여 일 가까이 시간이 있다지만, 수사를 해야 할 영역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자칫하면 수사 결과가 차기 총장 취임 후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학의 전 차관 임명와 1, 2차 수사 당시 경찰청, 청와대 등의 개입까지 수사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압수수색 자료를 포렌식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토대로 수사 구조 및 소환 등을 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곽상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등의 소환도 필요하다.
게다가 강간 유죄 입증을 위해서는 1차, 2차 수사 당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피해 여성들 사이의 진술이 엇갈렸던 점도 뛰어넘어야 한다. 어떻게 유죄 입증으로 방향을 맞춰 사실 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지, 앞선 수사 때의 무혐의 판단 근거를 어떤 새로운 근거로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제 막 피해 여성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검토하는 상황.
수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전직 검찰 관계자는 “앞선 1, 2차 수사가 아무리 엉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때의 빈틈을 넘어서는 근거와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이 맞다고 하더라도 강간의 입증은 별개의 영역이지 않냐”며 “당시 엇갈렸던 진술을 넘어서는 증거 등 검찰 내부를 설득하는 작업도 중요한 수사이기 때문에 수사단이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