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 롯데에 신세계 AK 도전장 내밀 듯
롯데마트 서울역점. 사진=롯데마트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영등포역사와 롯데마트가 영업 중인 서울역사는 올해 12월 31일 영업이 종료된다. 롯데백화점은 1991년 역사 완공 시점부터 영업 중이고 롯데마트는 2004년부터 한화에서 재임대받아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계약기간은 2017년까지였으나 역사에 입주한 입점업체들이 사업을 정리할 수 있도록 사업 종료를 2년 연장했다.
이에 따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르면 이달 말 영등포역과 서울역 민자역사 임대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고를 낼 예정이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국토부와 세부일정 등을 조율하고 있다. 5월 초 입찰을 위한 일정이 시작되며 늦어도 7월 초까지는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입찰은 입찰 자격을 사전에 제한하는 제한경쟁입찰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사실상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사업권을 가져가게 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공고는 최근 개정된 철도사업법 개정안이 적용된다. 국회는 지난 4월 5일 본회의를 열고 민자역사의 임대기간을 최대 20년으로 늘리는 한편 제한적으로 재임대(전대)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대형 유통업체들은 10년이라는 짧은 임대기간 탓에 시설 투자비용 회수도 쉽지 않아 서울역사와 영등포역사 사업자 참여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왔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통과로 ‘유통공룡’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임대기간 20년이면 투입 비용 대비 수익을 어느 정도 장담할 수 있는 기간”이라며 “특히 백화점 출점 제한 등의 규제로 올해 대형 유통업체들이 새 백화점을 낼 계획이 없었는데, 서울에서도 알짜로 통하는 영등포역사와 서울역사 점포가 매물로 나온 상황이다.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과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롯데의 핵심 점포다. 5000여 억 원 안팎의 매출을 내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본점이나 잠실 등에 비해 적지만 전국 4위권 수준이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연 매출 1500여억 원으로, 국내 롯데마트 중 매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여기에 영등포의 경우 자체 인구밀도가 높고, 향후 마곡 신도시를 중심으로 서울 강서권 쇼핑의 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서울역은 전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만큼 상징성뿐만 아니라 경기 불황을 타지 않는 몇 안 되는 상권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선 어느 업체가 들어와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대형 업체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는 곳은 영등포역사다. 롯데는 영등포점을 30여 년 간 알짜 중의 알짜로 키워온 만큼 운영권을 쉽게 넘겨줄 생각이 없다. 실제 롯데 안팎에선 “영등포역사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맞서 신세계와 AK가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영등포점과 이마트, 복합쇼핑몰인 타임스퀘어 등을 운영 중인 신세계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 1월 롯데에 인천터미널점을 뺐기면서 체면을 구겼던 만큼 이번 영등포역점 입점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오는 8월 구로 본점 철수로 서울 내 영업점이 사라지는 AK플라자도 유력한 입찰 후보다. AK는 평택·수원 등 2개 점을 민자 역사를 기반으로 성장시켜 온 만큼 롯데나 신세계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역사는 다소 싱겁게 사업자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롯데마트가 기존 사업권을 지켜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마트는 인근 용산역에 용산점이 있기 때문에 서울역점을 따낸다 해도 상권이 겹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기존 사업자가 자리를 지키든 새로운 사업자가 선정돼든 부담이 상당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사업권을 따내는 데 고려해야할 점이 많아서다. 입찰 가격부터 문제다. 업계에선 각 역사 임대료를 연 200~300억 원 수준으로 관측하고 있다. 세부 계약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입찰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여기에 영등포역사와 서울역사는 시설이 비교적 낙후돼 있어 리모델링 등 비용으로만 1000억 원 이상이투입 되는 등 투자비용도 부담이다.
여기에 신규 사업자의 경우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인근 전통시장과의 상생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점도 작지 않은 부담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매장 면적 3000㎡ 이상의 대규모 점포를 열기 전에 1㎞ 이내 전통시장과 협의해 지역협력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영등포역과 서울역 인근에는 각각 영등포 청과시장과 남대문시장이 위치한다.
여기에 입찰을 주관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에서는 심사 요건으로 ‘외부 환경과의 조화’를 강조하며 주변 교통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영등포는 특히 교통 체증이 극심한 지역인 만큼 환경 개선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롯데와 신세계, AK 등은 아직까지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신중한 모습이다. 롯데 측 관계자는 “오랫동안 운영해온 곳인 만큼 이번 입찰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기존 영업점과 시너지 등을 검토하는 게 먼저”라고 밝혔다. AK 관계자는 “입찰 공고가나면 세부 내용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답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