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가?’ 차기 총장 임명 앞두고 눈치보기…“선배 검사들, 전원 사표 써서 의지 보여야”
검찰총장이 청와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사안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나타낸 적은 드문 일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임기가 2달여 남은 총장님이 나서줘서 다행이다. 하지만 더 강력한 반대의사 표명도 필요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 조기 귀국 문무일 사퇴 배수진
4일 일정보다 조기 귀국한 문무일 검찰총장. 사실 그동안 검경수사권 조정이 경찰조직 비대화, 검찰의 위축을 가져온다며 반대의 뜻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검찰 고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불편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을 상황에 대해 문 총장은 그동안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쳐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무일 검찰총장. 고성준 기자
문 총장과 가까운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정권에서 내려온 수사 처리 방향 지시 등에 대해서, 문 총장은 절대 불편한 소리를 내지 않고 검찰을 다독이며 끌어왔는데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같은 큰 이슈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며 “임기는 2년이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얘기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항명을 한 적은 있지만 청와대를 향해 ‘NO’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보낸 적은 없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라고 분석하는 언론도 있지만, 검찰 내에서는 ‘올바른 수순’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검찰 중간 간부급 관계자는 “문 총장님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톤으로 제동을 잘 거신 것 같다”며 “임기가 2달여밖에 남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금 사표를 내는 게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메시지를 내셨으면 자리를 물러날 각오로 하셨지 않겠냐”고 귀띔했다.
# “지켜보자” 중론 속에 “더 강하게 나서야”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검사들이 “아직 검찰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여당에서도 검찰 입장도 들어볼 것이라고 하지 않냐”며 ‘지켜보자’는 입장을 내지만, ‘더 강하게 표출해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되레 조직 밖에서 쓴소리가 더 크게 나온다. 검사 출신의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검찰의 침묵이 너무 이상하다. 후임 검찰총장 인사와 이어지는 검사장급 고위직 인사 때문일 것”이라며 “말 한 마디 하는 순간 검찰총장이고 검사장 승진이고 모두 물거품이니 숨죽이며 지켜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조응천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당초 취지와 다르게 잘못된 법안”이라며 반대 의사를 내놓았다.
검찰 내부의 중간 간부는 “지금 검찰총장으로 거론되는 고검장급 가운데 그 누구도 총대를 메고 나서서 싸우지 않는 것은 ‘혹시 내가’ 하는 마음에 패를 쪼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말 안타깝다. 이럴 때는 전국 고검장, 검사장이 다 모여 사표를 쓸 각오로 문제 제기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자기 자리 욕심을 내는 것인지 다들 침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4월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 신속처리안건 지정한 후 이상민 위원장(오른쪽)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검찰이 받아들일 수 없는 3가지
검찰이 불만을 가지는 사안은 크게 3가지다. ▲경찰 수사권 부여 ▲검찰 직접 수사 범위 제한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능력 제한 등이다.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이제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법조항이 삭제되면서 자체적으로 1차 수사권 및 종결권을 가질 수 있다. 영장을 먼저 신청했을 경우, 검찰에 수사권을 넘기지 않고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마무리 지어도 된다.
이에 대한 검찰은 사법통제가 불가해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일선 지청의 한 검사는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는지 지휘를 하고, 견제를 하는 게 검사의 역할인데 이제 경찰이 어떻게 수사를 하더라도, 봐주기로 무마를 해도 견제할 수 없지 않냐”며 “검찰에 공소권이 있다고 해도 피의자나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게 당연해질 것이다. 결국 국가 공권력의 낭비”라고 비판했다.
대검찰청 소속 차호동 검사(연구관)도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쓴 글에서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청구하지 않으면, 외부 심의 위원회에서 다시 심사하게 한 부분을 언급하며 “영장이 남발돼 강제 수사가 많아지고, 여론에 따른 수사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수사 범위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등 권력층이 제외되면서 사실상 ‘대기업’만 특별 수사 대상으로 남게 되고, 이마저도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검찰 수사가 불가한 점도 비판 대상이다.
또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해서 검찰에서 피의자를 조사한 내용은 모두 법원에서 다시 입증해야 한다. 피의자가 검찰에서 진술과 법원에서 진술이 바뀔 경우 이를 검찰이 새로 입증해야 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인력이 엄청나게 더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결국 대검은 수사권 조정안에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는 계획이다. 대검 관계자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공수처 법안 관련 서면질의가 들어왔다”며 “공수처법안이 위헌소지가 있고 ‘우선 이첩권’과 ‘부분적 기소대상’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계획을 내비쳤다.
앞선 현직 검사는 “경찰의 수사를 검찰이 견제하고, 검찰의 수사를 법원이 통제하는 식으로 서로의 사법권을 견제해 왔는데 결국 공수처를 빌미로 경찰이 비대해지면서 그 축이 무너질 것”이라며 “공수처와 별개로 경찰, 검찰, 법원 간의 상호 견제는 이제 사라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 청, 지켜보자 기류 속 ‘후임’ 카드 만지작
판사도 검찰 편을 들고 나섰다. 현직 부장판사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법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것을 비판했다. 김태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5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수처 신설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른바 공수처란 기관이 생겨날 모양인데 이 기관은 누가 견제하고 통제하느냐”며 “독자적인 수사권에 기소권까지 부여하고 여기에 그 수사의 주된 대상이 고위직 경찰공무원, 검사, 법관이면 이 세 조직은 그 신생조직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완충장치도 없어 정치적 입김이 그대로 이 수사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히려 그 구성에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나 국회가 상당 부분 관여할 수 있도록 정한 모양이라 정치적 열기의 전도율이 현저히 높다”며 정치중립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공수처도 비판했다.
청와대는 아직 아무런 반응도 공식적으로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문무일 총장이 사표를 낼 경우, 차기 총장을 통해 검찰 불만을 잠재운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A, B 등 몇몇 고검장들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했는데 이들에 대해 충성 서약을 받는다는 얘기까지 돈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 이슈가 터지면서, 누가 더 말을 잘 들을 것인지가 차기 총장 선정에 변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