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자격논란에 대통령의 지원 의혹…청와대 “그런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제21대 광복회장 선거장 모습. 이종현 기자
광복회는 5월 8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제46차 정기총회를 열었다. 이날 총회는 광복회장 선출을 위한 자리로 총 투표인 80명이 참여한 가운데 1차 투표결과 김 전 의원이 35표, 이 전 국정원장이 29표, 95세의 이 애국지사가 16표를 획득했다. 1차 투표 1, 2위가 펼친 2차 결선투표에서 김 전 의원이 50표, 이 전 원장이 30표를 얻어 김 전 의원이 회장으로 선출됐다.
김 신임회장의 부모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했던 부부 독립운동가다. 부친 김근수 선생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모친 전월선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김 신임회장은 1944년 중국 중경에서 출생, 대전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생 시절 한일회담 반대투쟁 주모자로 지목돼 투옥된 적이 있으며, 14, 16, 17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초 광복회장은 김 전 의원(3선)과 이 전 원장(4선), 두 전직 국회의원 간의 양파전이 예상됐다. 선거기간 동안 이들을 둘러싼 공방은 치열했다. 특히,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 전 원장의 후보 자격 논란이 거셌다. 특히 광주 시민단체들이 지난달 22일 광복회장 후보로 나선 이 전 원장의 과거 전력을 꼬집으며 출마 철회를 촉구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광주지역 26개 시민단체들은 이날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두환 독재정권 하수인으로 활동했던 이종찬의 광복회장 출마에 대해 참으로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출마 철회를 촉구했다. 이 전 원장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에는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과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장, 안기부장, 초대 국정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21대 광복회장 후보자 모습. 위부터 김원웅 신임회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이용관 애국지사. 이종현 기자.
하지만 이 전 원장의 자격논란은 더 거세졌다. 사단법인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 14개 선양단체는 4월 29일 성명을 통해 “전두환 독재정권 부역자 행위를 대국민 사죄하라”며 이 전 원장의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이 전 원장이 광주학살 이후 민정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사무총장 등 요직을 거친 창당 주역임을 자랑으로 삼았다며,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원장은 해명과 함께 반격에 나섰다. 이 전 원장은 “지난 54년간 빛이 바랜 광복회를 다시 갈고 닦아서 국가최고 원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는 데 인생 마지막 사업을 하겠다”며 “공명정대한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펼쳐 더 이상 악습, 편법, 날조, 매수 등 악행들이 광복회에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방 선거를 멈춰달라는 의지와 함께 광복회 회칙과 각종 내규도 시대에 맞게 손을 보겠다며 현 광복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직격으로 날렸다.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보낸 ‘사회원로 12인 초청간담회 해명자료’.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원로들과 개혁과제를 비롯해 노동 문제, 사회 안전망 강화 등 사회분야 이슈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정현안을 두고 대화했다. 문제는 다음 날인 3일 광복회장 후보자들의 대의원 정견발표에서 이 전 원장이 청와대 오찬에서 문 대통령에게 광복회 지원 등의 약속을 받아왔다는 주장을 하면서다. 일부 대의원들은 문 대통령이 이 전 원장을 지지해주는 뉘앙스와 함께 청와대 초청을 선거 홍보에 이용한 것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광복회 관계자들은 지난 7일 이 전 원장이 제기한 대통령과 청와대 지지 관련 등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 전달했다. 이에 이용선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해명자료를 보내면서 진화에 나섰다.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해명자료에 따르면, 이 수석비서관은 “(대통령과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해) 그런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한 적 없고, (광복회장) 선거가 있는 것을 알고 (이 전 원장을) 사회원로회의에 참여를 시킨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비서진이 선거를 알지 못하고 초청자 명단을 짰다”고 밝혔다. 이 전 원장의 원로회의 참석을 알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참석에서 제외해달라는 사전 취소 요청에 대해서는 “(오찬시간 두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너무 늦어서 취소를 할 수가 없었고,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대통령은 지지 발언을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한 원성이 여전하다. 애초에 청와대가 현 광복회장이 아닌 차기 회장 후보를 초청한 점 자체가 문제였으며, 정치적인 관계와 관점에서 광복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한편에선 광복회장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자격논란과 광복회의 진정성 논란도 모자라 국가 최고 원로수장을 뽑는 선거가 전직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치판 양상으로 번질까 하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과거 정부와 독립유공자 간의 역사관 차이로 마찰을 빚은 적은 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선거에 직접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광복회장 선거에서 불거진 각종 잡음과 후폭풍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