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한 여성 음역대, 존재감만으로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 남긴 여가수들
마성의 알토 저음으로 동서양 대중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여가수들은 그 존재감만으로 소프라노 일색의 시장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에 ‘배틀색’은 서양과 동양의 불멸의 알토 대중가수들을 구분해 2회에 걸쳐 차례로 소개한다. 서양 편에서는 백인 알토 가수들인 카렌 카펜터와 앤 머레이, 흑인 알토들인 재즈 보컬 사라 본과 블루스 보컬인 니나 시몬을 얘기헤 보겠다.
카펜터스
카렌 카펜터는 오빠 리처드 카펜터와 보컬 그룹 ‘카펜터스’를 결성해 부드러운 알토 보이스의 극치를 보여 줬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빌보드 차트 1위에 빛나는 <Close to You‘> , <Top of the World>, <Please Mr. Postman> 뿐만 아니라 ’<Yesterday Once More>나 <Sing‘> 등 친숙한 멜로디를 들어 보면 “아 그 여가수의 노래”라고 무릎을 탁 질 것이다.
카펜터스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지만 리처드의 작곡 실력과 카렌의 보컬은 지금도 이들을 스탠더드, 어덜트 컨템퍼러리, 이지 리스닝 계열의 우뚝 선 거목으로 군림하게 하고 있다.
카렌 카펜터의 보컬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마음이 차분해 지고 편안해 진다. 금방이라도 달콤한 잠에 빠져들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요절은 팬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녀는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 10대부터 무리한 다이어트를 이어 갔고 결국 남은 평생을 거식증으로 고생하면서 불과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생존해 계속 주옥같은 보컬을 들려주었다면 팝 음악의 역사는 분명히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앤 머레이
이제는 고희의 나이를 훌쩍 넘긴 캐나다 출신의 앤 머레이는 솜사탕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저음을 가진 알토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사랑하고 잘했던 앤 머레이는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해 한때 고등학교 체육교사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러한 앤 머레이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그녀는 1970년 데뷔 앨범을 냈고 타이틀 곡 <Snowbird>가 인기차트에 등장하면서 매력적인 저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주부와 가수로서의 생활을 병행하면서 활동을 이어 갔다.
그녀는 대표곡이자 지금까지도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곡 <You Needed Me>로 1978년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팝 여성가수상을 수상하면서 최전성기를 맞았다. 앤 머레이의 알토 보컬의 진미를 더 느껴보려면 실연의 슬픔을 노래한 <broken hearted me>나 사랑에 빠진 여자의 기쁨을 노래한 <’I Just Fall in love again>을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데뷔 후 반백년의 시간이 지난 앤 머레이의 노래는 때로는 사랑스러운 연인처럼 때로는 자상한 어머니의 포근한 자장가처럼 부담 없이 편하게 그녀의 노래를 듣는 이들의 가슴에 울려 퍼지고 있다.
카렌 카펜터와 앤 머래이가 부드러운 음색의 백인 알토였다면 흑인 알토인 사라 본과 니나 시몬은 강한 개성과 야성미를 뿜어내는 저음을 갖고 있다.
사라 본
한국에서 사라 본은 1997년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 엔딩 크레딧에 울려 퍼지는 <A Lover‘s Concerto>를 부른 목소리 굵은 여성 가수로 친숙하다. 이 노래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원곡 <미뉴에트 G 장조(Minuet in G Major)>의 친숙한 멜로디에 영어 가사를 붙인 노래다.
그녀는 순탄한 인생을 살고 러브 송에 장점을 지닌 탓에 자신과 함께 3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로 꼽히며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선배인 빌리 홀리데이와 같은 시대 활동했던 엘라 피츠제럴드에 비해 저평가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재즈 인기 저변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사라 본의 인지도는 단연 으뜸이다
미국의 블루스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인 니나 시몬의 노래를 들어 보면 마치 남성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착각하기 쉽다.
니나 시몬 < Sinnerman Album> 재킷
필자는 피어스 브로스넌과 르네 루소 주연의 1999년 작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토마스 크라운이뉴욕 박물관에서 훔친 모네의 작품을 기발한 방법으로 제 위치에 돌려놓는 과정에서 강한 소울풍의 노래가 삽입돼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것에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볼 당시엔 특이한 목소리의 남성 가수가 부르는 노래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후에 <Sinnerman>이라는 이 곡을 부른 사람이 남성이 아닌 니나 시몬이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
을 알고 경악했다.
본명이 유니스 웨이먼인 니나 시몬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흑인 여성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성의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지 못하자 그 이유를 자신이 흑인 때문이라고 믿은 니나 시몬은 이후 흑인민권운동에 투신했다.
니나 시몬 이후 음악을 하는 흑인 여성 아티스트들은 모두 그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성미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강한 중독성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마성의 소리였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