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은 이해찬 측근…‘이해찬 리더십에 대한 불만’ 작용한 듯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에 비주류 원내대표가 탄생했다.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왼쪽)는 앞으로 이해찬 대표와 함께 호흡을 맞춰가게 된다. 이종현 기자
원내대표 경선을 두고 대부분의 언론은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이 친문을 견제하고 비문을 택했다’는 등의 해석을 내놓았다. 친문인 김 의원 대신 비문 이 원내대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로 친문계로 분류되며, 이 원내대표는 비문계‧비주류이자 ‘86세대’ 운동권, GT(김근태)계로 분류된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번 경선을 친문이 아닌 비문의 승리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 내부에선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친문 견제설은) 프레임을 짜기 위한 분석일 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낡은 틀”이라며 “의원들 사이에는 ‘당 대표와 가까운 측근을 원내대표로 뽑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돌았던 것 같더라. 때문에 이 원내대표가 뽑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의원도 “(친문을 견제하기 위해 비문 이인영을 선택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사실이 아니다. 김 의원이 친문이라고?”라고 말했으며, 황희 의원도 “그건 아니다. 그런 프레임은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당 다수의 관계자들은 김 의원을 ‘친문이지만, 그보단 이해찬 측근’으로 분류했다. 김 의원은 이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이자 직전 정책위의장을 지냈고, 이해찬 대표와 호흡을 맞춰왔다. 그리고 이 원내대표 본인은 친문계가 아니지만, 친문계의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관계자들이 “이 원내대표가 친문의 상징인 전해철 의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온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인영 의원실 측은 승리의 원인을 “‘이해찬 대표-김태년 원내대표’의 조합을 부담스러워한 의원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고 꼽았다. 1차 투표에서 이 원내대표는 54표, 김 의원은 37표, 노웅래 의원은 34표를 얻었다. 이어 결선투표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76표를 얻어 49표를 얻은 김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이에 대해 김태년 의원실 관계자는 “1차에선 이 원내대표가 몸담은 민평련표가 많이 간 것 같았다. 여기에 (친문 모임인) 부엉이 모임표와 (민주당 개혁성향 의원의 정책 연구 모임인) ‘더좋은미래’ 표가 더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여기에 결선투표에선 노웅래 후보에게 갔던 표들이 이 원내대표에게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친문계의 표가 김 의원이 아닌 이 원내대표를 향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표 분석 관련, 이인영 의원실 측은 “이 원내대표가 경선 전 표를 계산했는데 결과가 얼추 비슷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GT계와 부엉이모임, 더좋은미래, 그리고 여기에 중립지대, 친한 의원들, 계파가 없는 이들의 표까지 다 더했을 때 62표 정도로 예상이 됐다”라며 “그리고 결선투표에선 의원들 10명이 표를 주기로 약속했다. 여기에 10표를 더하니 총 72표 정도로 예상됐는데, 얼추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당 관계자들은 이 원내대표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해찬 대표’를 꼽았다.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초‧재선 의원들은 이 대표를 좀 꺼려하더라”며 “초선인 A 의원은 의원회관 복도에서 남들 다 들으라는 식으로 ‘당연히 이인영 뽑아야 되는 거 아니겠냐’라고 말하고 다니더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 대표가 다른 것은 다 잘하고 있지만, 종종 말실수를 하는데 거기에 대한 의원들의 불만이 있다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표직을 수행하며 ‘베트남여성‧재생에너지‧정신장애인’ 관련 부적절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또한, 지난 3일 공개된 민주당 21대 총선 공천룰이 이번 경선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이 관계자는 “만약 이 공천룰을 원내대표 경선 이후에 공개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 대표 체제 아래에서 공천룰을 만드니 의원들은 공천룰을 모른 채 ‘이 대표와 가까운 김 의원을 뽑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미 공천룰을 알고 투표에 임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번 공천룰에 따르면 현역 국회의원은 전략공천 없이 전원 경선을 거쳐야만 한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때문에 의원들 입장에선 ‘지도부가 공천권을 남용하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퍼져나간 것 같고, 좀 더 편하게 투표에 임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원내사령탑이 된 이 원내대표에겐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장외투쟁 중인 한국당을 설득해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하며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을 원만하게 통과시켜야 한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의 주요 국정과제도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들 중 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할 것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이다.
현재 장외투쟁에 나선 한국당은 정확한 복귀 시점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한국당 입장에서도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이 원내대표는 ‘추경안 카드’로 한국당을 복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의원실 측 또한 “절묘한 타이밍에 원내대표가 된 것 같다. 한국당 입장에서도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찾기도 좋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도 “이 원내대표는 좋은 여건에서 당선됐다. 한국당도 언제까지나 장외투쟁을 할 수는 없고, 들어올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이 원내대표가 ‘민생을 위해 추경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하면 이를 어떻게 걷어차겠는가”라며 “추경안엔 강원도 산불 피해복구, 미세먼지 대책, 포항 지진 등 재해에 대한 지원이 들어가 있는데 이걸 거부했다간 국민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향후 ‘이해찬 대 친문’ 대결구도가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총선을 앞두고 충돌이 예상된다. 이 대표는 핵심 인사를 전면에 배치하고 싶을 것이고, 이 원내대표는 외연 확장에 집중할 것이다. 물론 공천관리위원회가 만들어지겠지만, (원내대표보다는) 대표의 목소리가 더 크게 작용할 것이고 내부적 갈등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평론가는 이어 “청와대 인사들도 대거 당으로 들어올 것이고, 당도 청와대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받아줄 수도 없을 것”이라며 “청와대 정무팀과 당 사이의 갈등이 예상되며 이 원내대표 또한 당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이해찬 대 친문’의 구도도 있지만, ‘이해찬 리더십 평가전’으로 봐야 한다. 총선을 임했을 때 이대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이 돌았던 것 같고, 여기에 보완적인 요소로 이 원내대표가 선택된 것”이라며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당은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것이고, 지지율이 회복되면 일체형이 될 것이다. 긴장관계 또는 종속적인 관계로 가는지를 두고 고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 역시 “총선을 앞두고 기존 의원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돌았던 것 같다. 노 의원은 약하고 김 의원은 부담스러우니, 그래도 가장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현역 의원을 이끌어줄 사람은 이 원내대표 아니겠나. 청와대와 당 사이에서 잘 조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