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미니 헐크’ 등이 별명…“강원에선 형들이 ‘샤키리’라 불러”
최근 강원 FC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K리그 최단신’ 김현욱.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일요신문]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손꼽히는 리오넬 메시는 데뷔 당시 170cm(FC 바르셀로나 홈페이지 기준)의 작은 키로 주목을 받았다. 유럽 축구의 거구들 속에서 단신임에도 뛰어난 활약으로 스스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서로의 신체가 부딪히는 축구라는 종목에서 신체조건이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메시는 신장이 전부가 아님을 실력으로 증명한 바 있다.
최근 K리그에는 유난히 작은 키로 상대 진영을 휘젓는 선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키 160cm(K리그 정보시스템 기준)의 ‘K리그 최단신’ 선수 김현욱이다. 메시보다 10cm가 작다. 그는 매 경기 재기발랄한 움직임으로 최근 소속팀 강원 FC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이에 ‘일요신문’은 지난 16일 강원 클럽하우스를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원은 5월 들어 열린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최근(17일 기준) 3연승을 구가하고 있다. 이 같은 강원의 상승세에는 김현욱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스승의 날이었던 전날(15일), “선수들과 함께 지도자 선생님들께 작은 선물과 꽃을 전달하며 기념하는 이벤트를 가졌다”는 김현욱은 “경기 중이나 평소에도 팀 구성원들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며 현재 좋은 분위기를 전했다.
데뷔 3년차를 맞은 김현욱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강원으로 이적했다. 트레이드 형태로 임한울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됐다. 새로운 소속팀에서 12라운드 일정을 앞둔 현재 그는 팀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 중이다. 개막 첫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에 나서며 2골을 기록하고 있다. 강원 전력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일각의 평가에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전보다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수라면 모두가 다른 부분보다는 경기장 위에서 자신이 평가받기를 원하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을 원한다”면서 “경기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감도 올라가고 있고 만족감도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년간 4골을 넣었던 그는 초반 일정임에도 2골을 넣은 이번 시즌 기록에 대해서는 “작년 기록은 깨야죠”라며 의지를 보였다.
작은 키로 상대 진영을 돌파하는 김현욱의 플레이는 팬들의 눈길을 끄는 한가지 요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현욱을 라운드 MVP로 만든 강원과 제주의 경기에선 그가 골을 넣고 전 소속팀에 대한 예우로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중거리포로 제주 골망을 흔들자마자 뒤로 돌아서 양손을 살며시 들어 올리며 세레머니를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경기 전에 ‘혹시라도 골이 들어간다면 세레머니를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정말 골이 들어갔고, 그 순간 정신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세레머니 생각이 바로 딱 나더라. 그래서 참았다(웃음).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형들이 나한테 골을 먹고 고개를 숙이고 그러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오는 25일에는 제주와 홈경기를 앞두고 있다. 시즌 두 번째 맞대결에선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김현욱은 이번에도 골을 넣는다면 흥겨운 세레머니를 펼칠 계획을 밝혔다. 그는 “한 번 그렇게 했으니까 이제는 (세레머니)해도 될 것 같다. 제주 팬들이 서운해 하시려나(웃음). 그래도 이번엔 홈경기이기에 경기장을 찾아주신 팬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제주에서 강원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김현욱은 프로 데뷔 3년차에 경험하는 첫 이적이었다. 그는 “축구에서 이적이라는 것은 선수 생활 중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주에 계신 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섭섭하게 느껴졌다. 숙소에 짐을 챙기러 갔다가 식당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는데 기분이 이상했다”고 떠올렸다.
새 소속팀 강원에서는 빠르게 안착하는 모양새다. 트레이드 상대였던 임한울과는 공교롭게도 대학 동기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이들은 서로에게 중요한 ‘정보원’이 됐다. 그는 “서로 팀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물어봤다”며 웃었다. 새 팀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선수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하는 분위기다. 나에게 잘 맞는 것 같고,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 단신 축구 스타인 세르당 샤키리(리버풀)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연합뉴스
강원에서 샤키리로 불리며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 아이디도 바꿨다. 기존 ‘미니 후키’였던 아이디에 샤키리를 합쳐 ‘후키리’라는 아이디가 탄생하게 됐다. 김현욱은 “석화 형이 자꾸 그렇게 바꾸라고 하더라. 형의 최종 확인을 거쳐 그렇게 바뀌게 됐다”며 웃었다.
키에 대한 언급은 그를 이야기할 때 피해갈 수 없는 내용이다. K리그 최단신 선수이기도 한 김현욱은 장신 수비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경기장 위에서 더욱 작은 키가 두드러진다. 그는 “내가 내 영상을 봐도 작은 키게 계속 눈에 들어온다”면서 “‘작은데도 잘한다, 작은데도 안밀린다’는 말이 싫지 않다. ‘작다’는 말에 부정적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많은 분들이 ‘그럼에도 괜찮다’면서 좋게 봐주신다”고 말했다.
이어 “성장 과정에서 피지컬적인 면을 요구하는 지도자를 만났다면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건지 만나는 분들마다 좋게 봐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은사인 한양대 정재권 감독은 ‘특별한 키’를 가진 제자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현욱은 “정재권 감독님께서 종종 ‘키가 너에게는 메리트다. 선수도 상품인데 눈여겨 볼만한 요소가 된다. 한 가지 메리트가 있으니 축구만 잘하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중에서도 ‘작으려면 확 작아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웃음)”고 설명했다. 그는 “나도 솔직히 작은 키가 싫기도 했다. 이제는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기분 좋다. 사실 키 작은 선수들이 순발력은 좋다. 작은 선수들만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면 나도 즐겁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주 가끔, 큰 선수의 플레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제리치(195cm) 같은 선수들은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김현욱은 올시즌 목표로 현재 8강에 올라있는 FA컵 우승을 말하는 동시에 향후 A대표팀과 유럽 무대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지난해엔 한 차례 시련을 겪기도 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또래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하지만 백승호(지로나), 서영재(뒤스부르크) 등 일부 동료들과 함께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그는 “실망스러운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주변에서 많이 위로해 주셨고, 그걸 계기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더 좋은 기회를 만들자고 생각하려 했다”고 말했다.
경기장 위에서 웃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김현욱은 밝은 성격으로 아픔을 극복해 냈다. 그는 “장난기도 많고 밝은 편인 것 같다”고 자평하면서 “경기장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내에서는 외국인 선수들과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제리치, 빌비야, 발렌티노스 등 팀 내 외국인 선수들이 인터뷰 장소를 방문해 그를 가리키며 “Famous(유명해)!”라며 짓궂게 놀리기도 했다. 김현욱은 “제주에서는 특히 알렉스와 정말 잘 지냈다. 매번 알렉스가 나에게 스케줄 있냐고 물어보고 밥 같이 먹자고 했었다”면서 “발린테노스도 성격이 정말 좋다. 원정을 갈 때면 버스 기사님께 ‘삼촌, 얼마나 걸릴까요?’라며 한국말로 넉살 좋게 물어본다”고 전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 이번 시즌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김현욱은 “아직 11개 팀과 단 한 경기씩만을 치렀을 뿐”이라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부상이 없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작년보다 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좋은 영입’이라는 말을 조금씩 듣고 있는데 이런 평가가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또한 이번 시즌의 또 다른 목표로는 FA컵 우승을 꼽았다. 강원은 전날 FA컵 16강전에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그는 “8강 진출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 우승컵 한 번 들어 올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장기적인 목표로는 대표팀과 유럽 진출을 이야기했다. “‘언제, 어느 시점에 들어가겠다’는 세밀한 그림은 없지만 언젠가는 A 대표팀에도 가보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K리그를 좋아한다. K리그도 강한 무대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유럽 무대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대표팀과 유럽, 선수라면 한번쯤 꿈꿀만한 무대 아닌가.”
강릉=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