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니까 떠난다? 다른 프로 병행 출연 불가 “떠날 수밖에 없더라”…콩트 몰락·풍자 부재 원인도
지난 5월 19일 방송된 KBS 2TV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을 챙겨본 시청자의 댓글 반응이다. 지난 1999년 9월 4일 첫 발을 내디딘 ‘개그콘서트’는 20년 만에 1000회 방송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박준형, 정종철, 김병만, 김준현, 윤형빈, 강유미 등 지금은 ‘개그콘서트’를 떠났지만 이 프로그램의 황금기를 누린 이들이 대거 등장해 ‘달인’, ‘봉숭아학당’, ‘비상대책위원회’ 등 인기가 높았던 추억의 코너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개그콘서트’ 1000회의 시청률은 8%. 최근 이 프로그램이 시청률 5∼6%를 전전했던 것을 고려하면 ‘반짝 상승’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때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구가하던 그들의 옛 영광을 떠올린다면 성에 차지 않는다. 일요일 밤이 되면 다음 한 주를 준비하며 온 가족이 모두 TV 앞에 모여 챙겨 보던 ‘개그콘서트’는 왜 지금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을까?
KBS 2TV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 방송 화면 캡처.
# 스타가 없고, 만들지도 못한다
‘개그콘서트’는 스타 사관학교였다. 1000회를 맞아 오랜만에 ‘개그콘서트’를 찾은 모든 선배 개그맨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후 다양한 영역의 러브콜을 받으며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이제 하나의 프로그램을 맡는 MC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이끌며 또 다른 삶을 개척해가고 있다.
혹자는 반문할 수 있다. “뜨니까 ‘개그콘서트’를 떠난 것인가?”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대다수 개그맨들은 타사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하기 어렵다. KBS는 공채 개그맨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입사 후 일정 기간 KBS의 규정에 따라야 하는 것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일반적인 연예인이 그렇듯, 각자의 활동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그렇지 못 한 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은 후 떠나게 됐다는 개그맨 A는 “‘개그콘서트’는 수요일 녹화 전까지 아이템 구상부터 연습까지 일주일을 꼬박 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노하우가 생기기 때문에 적절히 시간을 운용하며 다른 프로그램도 병행할 수 있는데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라며 “결국 ‘개그콘서트’에 계속 출연하고 싶었으나 다른 프로그램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어서 ‘개그콘서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KBS 2TV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 방송 화면 캡처.
‘개그콘서트’가 스타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다른 스타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강력한 브랜드네임과 탄탄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스타 몇 명이 빠져도 그 위상을 지켜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인력 누수로 인한 부담은 점차 쌓여갔다. 이름값 높은 스타들이 떠나니 대중의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신인 개그맨들을 이끌어줄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던 이들이 빠지니 시스템에도 균열이 생겼다.
또 다른 개그맨 B는 “‘개그콘서트’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굉장히 오랜 기간 서서히 인기가 사그라지며 시청률 역시 하락했다. 유행어의 산실이었던 ‘개그콘서트’에서 더 이상 유행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꼬집었다.
# 리얼의 시대, 콩트의 몰락
방송가의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것도 ‘개그콘서트’가 흔들린 이유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예능 시장은 MBC ‘무한도전’과 KBS 2TV ‘1박2일’, SBS ‘패밀리가 떴다’ 등이 3분할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라 불렸다. 출연진이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모습으로 등장해 여러가지 상황에 도전한다. 그리고 배경도 스튜디오 밖이다. 촬영 시간이 길어지고 제작비도 상승했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줄 수 있으니 스튜디오 예능에 진부함을 느끼던 대중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는 ‘관찰 예능’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연예인과 그들의 2세를 다룬 육아방송, 요리와 먹는 것에 초점을 맞춘 ‘먹방’, 전 세계를 도는 여행 예능을 비롯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뤘다. 이 모든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리얼’이다. 짜여진 구도가 아니라 현실에 발붙인 모습에 모두가 몰두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대본을 바탕으로 한 ‘개그콘서트’의 설 자리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각 코너를 치밀하게 짜고, 출연진이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여도 대중들이 요구하는 예능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이었던 셈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거나, 새 앨범을 발표할 때가 되면 홍보 차원에서 앞 다투어 ‘개그콘서트’를 찾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발길조차 뜸하다”며 “‘개그콘서트’가 현 예능 트렌드에서 밀려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KBS 2TV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 방송 화면 캡처.
# 풍자와 해학이 사라졌다
정치와 사회 현상을 다룬 풍자와 해학은 개그 프로그램이 가진 미덕 중 하나였다. 맥락 없는 웃음을 좇기보다는 현장의 관객과 TV를 통해 이를 보는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촌철살인 한 마디는 웃음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하지만 최근 ‘개그콘서트’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개그콘서트’는 ‘퀴즈카페’ ‘민상토론’ ‘도찐개찐’ 등의 코너를 통해 꾸준히 정치·사회 풍자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코너는 자취를 감췄다. 몇몇 언론 매체들이 이를 꼬집기도 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들은 “관찰 예능에서는 출연진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현실 생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마치 특정 정치색을 드러내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돌려 생각하면 정치·사회 풍자는 콩트 형식의 개그 프로그램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라며 “하지만 요즘 ‘개그콘서트’는 그런 ‘한 방’이 없다. 정치·사회적 현안을 건드리는 것이 또 다른 논란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뭔가 시끌시끌한 이슈를 만들며 대중의 관심을 되찾아오는 것이야말로 ‘개그콘서트’가 예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