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점포 늘고 무인 편의점까지 등장…통신망 마비·해킹 등 부작용 최소화 대책 필요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 스타벅스 매장 직원은 커피를 주문한 뒤 현금을 내미는 고객에게 이같이 설명했다. 현금밖에 없다는 고객의 말에 직원은 “매장 자체가 현금을 취급하지 않아 거스름돈을 드릴 수 없다. 기프트카드를 구입해 결제하는 방법도 있다”며 계산대 옆에 진열된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가리켰다.
같은 날 찾아간 서울 성동구의 이마트24 편의점에서도 현금 결제가 불가능했다. 소비자가 직접 셀프계산대에서 결제해야 하는 무인점포였다. 셀프계산대에 물건을 올린 뒤 계산 버튼을 누르니 결제 수단으로 신세계 SSG페이와 신용카드, 이마트24 쿠폰, 3가지 방식만 선택할 수 있었다. 해당 매장은 평일 새벽과 주말에는 완전한 무인매장으로 운영된다. 신용카드를 출입구 옆에 설치된 기기에 찍어야 매장 문이 열리기에 카드가 없으면 아예 이용할 수 없다.
서울 중구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현금을 받지 않고 카드·모바일 결제만 가능하다. 이종현 기자
# 코앞으로 다가온 현금 없는 사회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이 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4월 3개 매장을 시작으로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해왔다. 지난 4월엔 현금 없는 매장을 전체 60% 수준으로 확대해 전국 1280개 매장 중 759곳에서 현금 결제 서비스를 중단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현금 결제율이 평균 5% 미만인 곳을 현금 없는 매장으로 지정하고 있다. 전산 오류나 계산 과정에서 시간·인력 낭비를 줄이고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올리브영도 가세했다. 지난 2월부터 10개 매장에서 ‘현금 없는 매장’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신용카드와 올리브영 기프트카드, 삼성페이·LG페이·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페이 시스템으로만 결제 가능하다.
무인점포의 확산은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무인기기는 현재 세븐일레븐, GS25, 이마트24, CU 등 편의점업계로 확산돼 신용카드·모바일 페이와 같은 간편 결제 시스템 활성화를 촉진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5월 업계 최초로 무인점포를 열어 현재 12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이마트24는 운영하는 무인점포가 43개로 업계에서 가장 많다. CU와 GS25도 각각 14개와 7개 무인점포를 도입했다.
한국은행은 2017년 4월부터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과 마트 등에서 현금거래를 한 뒤 거스름돈을 선불교통카드 등에 적립하는 방식이다. 올 하반기 내 신용카드를 주면 연결된 계좌로 거스름돈을 입금해주는 계좌이체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23일 서울 중구 수표동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시그니처타워점. 소비자들은 인공지능 결제 로봇 ‘브니’를 통해 셀프로 계산해야 하며, 카드나 모바일 페이로만 결제 가능하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처럼 현금을 취급하지 않고 카드나 모바일페이로만 결제할 수 있는 무인점포를 늘리고 있다. 이종현 기자
# 현금 없는 매장, 반응 엇갈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서울 중구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무인기기로 주문한 곽근형 씨(21)는 “평소 지갑 대신 카드만 들고 다닐 정도라서 현금을 받지 않는 게 더 편하다.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고 주문 속도도 빨라졌다”며 편의성에 만족해 했다. 그러나 불만을 표시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만난 이시은 씨(25)는 “더운 날씨에 회사까지 와준 친구에게 커피를 사주려 했는데 현금 결제가 안 된다니 당황했다. 현금밖에 없는 상황에서 뒤에 줄이 길어 다시 나오기도 민망해 결국 친구가 계산했다”며 “매장 직원들은 일하기 편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당황스럽다”고 했다.
소비자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주한 씨(37)는 “카드를 들고 다니면 과소비를 하게 되고 모바일 결제 시스템도 해킹이 우려돼 전혀 사용하지 않아 현금만 들고 다닌다”며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는 건 당연한 권리인데, 특정 결제수단을 강요하는 행위는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 중인 스타벅스 관계자는 “현금으로 계산하려는 고객이 있으면 먼저 모바일 페이와 카드 결제, 기프트카드 구매를 통한 결제를 권유하지만 그럼에도 현금 결제를 원하면 계산할 수 있도록 응대할 것을 각 지점에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금 결제를 아예 거부하는 일부 ‘현금 없는 매장’에 대해 “지침에 대한 공유가 덜 된 것 같다. 안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금 없는 매장’ 도입 취지가 소비자 편리성보다는 매장 관리자 입장에서 업무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한 결과 은행 업무를 보거나 정산하는 시간이 줄면서 고객 응대와 매장 점검 등 서비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현금 없는 매장 도입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고객 서비스 질도 향상하겠다는 차원”이라고 했다.
23일 서울 중구 수표동에 있는 무인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시그니처타워점에서 소비자들이 인공지능 결제 로봇 ‘브니’를 통해 결제하고 있다. 해당 매장에서는 현금을 제외하고 카드 및 모바일 페이로만 결제 가능하다. 이종현 기자
#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부작용 최소화해야”
전문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는 비껴갈 수 없는 흐름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술과 산업 발달에 따라 마차에서 자동차·기차로 주요 교통수단이 바뀌었듯,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따른 결제수단 혁신도 자연스러운 변화란 얘기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화폐 제조·관리비 절약과 블록체인 등 IT 기술 발달,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라도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게 맞다”고 했다.
문제는 카드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기 힘들거나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노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서는 카드 및 모바일 결제를 더 어려워 하는 사람도 있다. 신용불량자나 외국인 이민자 등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없거나 만들기 까다로운 금융소외계층의 경우도 서비스 이용에 큰 장벽이 생긴다. 아울러 해킹에 따른 개인 정보 유출과 금융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지난해 KT아현지사 화재에 따른 통신장애 사태처럼 사건·사고나 재해로 통신망이 마비되면 모든 전자거래가 중단되는 위기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소비자 혼란도 우려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모든 매장이 현금결제를 거부한다면 현금을 안 들고 다니겠지만, 어느 곳은 현금만 어느 매장은 카드만 받으니 소비자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아울러 소비자가 모바일 페이 등 매장에서 통하는 지식·기술을 축적해야만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주권과 거래 보편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애 교수는 또 “디지털 소외계층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서비스 생산·공급자 차원에서도 소비자가 사회적 약자나 정보소외계층을 보호해주고 그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