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단 ‘인성’ 추구 바람직하지만 “소속사에서 어떻게 다 확인하나” 한숨도
학폭 논란으로 그룹에서 탈퇴한 인디밴드 잔나비의 멤버 유영현. 사진=페포니 뮤직 제공
연예인들의 ‘일진설’은 연예계에 있어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연예인, 특히 아이돌은 데뷔 직전 초·중·고등학교의 온갖 동창들이 튀어나와 “학교폭력을 당했다” “나를 왕따시켰다” “학생 신분으로 담배 피고 술도 마셨다” 등의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진실로 밝혀지거나, 공론화 돼 연예계 퇴출 수순으로 이어졌던 것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이것도 2000년대 후반의 이야기다. 최근 연예계는 학교 폭력에 대해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의혹이 불거졌을 뿐인 윤서빈에 대해 곧바로 ‘계약해지’라는 단호한 모습을 보인 JYP엔터테인먼트만 봐도 그렇다. JYP 측은 “회사의 방침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윤서빈과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JYP는 소속 연예인들의 ‘인성 교육’을 중시한다고 주장해 온 바 있다.
잔나비 역시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문제의 멤버를 퇴출시켰다. 잔나비의 소속사 페포니 뮤직은 논란 직후였던 5월 24일 피해를 주장한 측이 게시한 글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학교 폭력 논란과 관련해 유영현 본인에게 직접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유영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라며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향후 활동을 중지하기로 했다. 잔나비에서 자진 탈퇴해 자숙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15년 전 학폭 논란이 불거졌던 가수 효린. 피해를 주장한 측과 원만히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브리지 제공
그럼에도 잔나비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잔나비는 이제까지 ‘학연’ ‘지연’ 등으로 이뤄진 밴드라는 점을 부각시켜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영현과 같은 학교를 다녔던 멤버도 있다. 이런 이들이 “과연 유영현의 학교 폭력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라는 것이 비판하는 대중들의 시선이다.
잔나비에 이어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던 것이 걸그룹 씨스타 출신 가수 효린의 학폭 논란이었다. 이는 15년 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간 효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여성이 네이트판에 글을 올리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당시 효린의 소속사 브리지는 미흡한 대응으로 논란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학교 폭력과 관련한 사안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15년 전의 일이어서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사실 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는 모호한 답변을 공식입장으로 내놨던 것이다. 효린은 씨스타 데뷔 직전 ‘일진설’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에 소속사의 이와 같은 대응은 이미지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런 가운데 피해를 주장한 측에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강경 입장까지 내놔 대중들의 더 큰 반감을 사기도 했다. 이 논란은 결국 피해를 주장한 여성과 효린이 합의한 뒤 정리됐지만, 실제 학교 폭력이 있었는지 여부 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다소 찝찝한 마무리가 된 모양새다.
학폭 논란이 불거진 걸그룹 베리굿의 멤버 다예. 사진=JTG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예계 학폭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타자는 걸그룹 베리굿의 멤버 다예였다. 5월 28일 자신이 다예의 학폭 피해자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13살, 초등학교 6학년 때 괴롭힘을 당했다”라며 폭행과 욕설 피해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베리굿의 소속사 JTG엔터테인먼트 측은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익명으로 올린 해당 글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이 추가 폭로를 이어가자, 결국 베리굿의 팬덤이 나서 “이번 논란이 전혀 사실무근임을 굳게 믿고 있으므로 소속사 측에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상세한 입장을 표명해 달라”고 호소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베리굿 측은 별도의 추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상태다.
연이은 학폭 논란은 그대로 대중들의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잔나비는 숙명여대 축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5월 25일 “숙명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시간으로 꾸려질 청파제에 학교폭력 가해자가 소속됐던 아티스트가 참여한다는 사실이 많은 숙명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며 잔나비의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2017년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던 래퍼 영비의 제주대학교 축제 출연이 무산됐다. 사진=인디고뮤직 제공
이번 연예계 학폭 논란에 언급된 연예인은 아니지만, 래퍼 영비(본명 양홍원) 역시 과거 학폭 사건에 연루된 이유로 제주대 축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제주대 총학생회는 5월 29일 “이번 아라대동제에 사회적 논란이 있는 특정 아티스트 출연과 관련, 긴급회의를 진행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해당 아티스트와의 계약 해지를 통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영비는 지난 2017년 엠넷 ‘고등래퍼1’ 출연 당시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연예인으로서의 능력보다는 먼저 인성이 받쳐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다만 그들의 인성을 데뷔 전부터 철저하게 확인해야 할 엔터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디션과 이력서,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인성을 확인할 수 없지 않나. 소속사에서도 데뷔를 앞두고 또는 활동이 진행된 이후에 갑작스런 폭로로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사실 확인은 결국 당사자한테 할 수밖에 없는데 단시간에 가능한 것도 아니고 사실무근일 경우에도, 실제 사실이 맞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도 손해는 고스란히 소속사가 보게 된다. 이래저래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