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사실 알고 전격 은퇴? 의문이 의혹으로…주가 4천억 증발 아들 상속세 부담 뚝 ‘아이러니’
지난 5월 16일 자본시장법과 독점규제법, 금융실명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 연합뉴스
지난 4월 불거진 인보사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5월 28일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인보사의 주성분 중 하나가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293유래세포)로 확인됐고, 코오롱생명과학에서 제출한 자료가 허위로 밝혀진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오롱티슈진의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됐고, 한국거래소는 상장심사 당시 제출한 서류가 허위로 드러났다며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검찰 수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식약처는 서울중앙지검에 코오롱생명과학과 이우석 대표를 약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형사고발했다. 코오롱뿐 아니라 철저한 검증 없이 신약 허가를 내준 식약처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식약처 전·현직 임직원들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류영진 전 처장과 이의경 처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손문기 전 처장은 직무유기 혐의를 받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시선은 이웅열 전 회장에게 쏠리고 있다. 특히 인보사 사태가 터지기 4개월여 전 발표한 이웅열 전 회장의 깜짝 은퇴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웅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28일 코오롱 사내 포럼 말미에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내년부터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코오롱그룹 회장직과 대표이사, 이사직도 그만두겠다. 앞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갑작스레 퇴임을 발표했다.
이어 사내 인트라넷에 임직원을 향한 편지를 통해 “1996년 1월 나이 마흔에 회장자리에 올랐을 때 딱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나이 60이 되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고 작정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3년이 더 흘렀다”며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 전 회장의 ‘폭탄선언’을 두고 한국 사회와 재계에서는 여러 말이 나왔다. 1956년생인 이 전 회장의 나이 불과 62세. 아들 이규호 전무가 30대 중반 나이로 아직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이러한 의문은 5개월여가 지난 현재 의혹으로 변하고 있다. 인보사 주요 성분이 바뀌었고, 이를 코오롱생명과학이 허위신고하는 등 모든 과정을 이 전 회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알고서도 묵인했고 은퇴를 선언했다면 책임론이 거세질 수 있다. 코오롱 측 입장은 ‘당시 담당자가 해당 사실을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재계 많은 이들은 이웅열 전 회장이 조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재계 관계자는 “식약처의 발표에 따르면 코오롱 측이 2017년 3월 주성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식약처에 서류를 제출해 4개월 후인 7월 신약 허가를 받았다. 이런 중대한 비리 사안을 오너의 승인 없이 저질렀을 리 없다. 이 전 회장도 당시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월 28일 식약처 강석연 바이오생약국장이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인보사케이주’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 전 회장은 코오롱 지분을 팔지 않고 갖고 있는 만큼, 금전적 손실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코오롱 지분 49.74%로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면서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을 지배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 지분도 각각 14.40%, 17.83% 보유하고 있다.
이에 이 전 회장의 주변인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 상장 당시 주식거래를 통해 이득을 취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코오롱티슈진의 전·현직 사장인 이범섭·노문종 대표와 연구개발 총괄책임자인 이관희 전 대표(전 인하대 의대 교수) 등 수뇌부 3명은 미국 국적을 취득해 검찰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코오롱 지분을 보유했던 아버지 이 전 회장과 달리 장남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는 지주사 코오롱 지분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셰어하우스 계열사 ‘리베토’를 제외하면 주요 계열사 지분도 전무하다. 이 전 회장이 보유한 코오롱 등 5개 상장사 지분 가치는 인보사 제조·판매가 중단되기 직전과 비교해 약 4000억 원이 증발,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이규호 전무 등에게 물려줄 경우 상속세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앞서 이웅열 전 회장은 지난 5월 16일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상속주식 34만여 주를 차명으로 숨긴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현재 이 전 회장은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이 인보사 수사 상황에 따라 귀국 일정을 늦추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