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예상하기 어려운 국내외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복병...‘합병 반대’ 노조도 변수
최근 임시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킨 현대중공업이 다음 관문을 준비 중이다. 울산시 동구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전경. 사진=연합뉴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31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 결합을 위한 물적 분할(법인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총 주식의 72.2%를 차지하는 주주가 참석했고, 참석 주식수의 99.9%가 찬성했다. 이번 법인 분할안은 특별결의사항으로 참석 주주 의결권 중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 2개 회사로 나뉘게 됐다. 본사를 서울로 정한 한국조선해양은 자회사 지원·투자, 연구개발(R&D) 등을 수행한다. 울산에 본사를 두는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플랜트·엔진기계 등 사업부문을 맡는다.
지배구조는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 아래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을 두고, 그 아래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이 놓인다. 대우조선은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지주 간 주식교환, 유상증자 등을 거쳐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가 된다. 이번 물적 분할 승인으로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본 계약 체결 이후 첫 관문을 넘어섰다.
남은 관문은 기업결합심사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온전하게 인수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심사와 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경쟁국들의 기업결합심사를 거쳐야 한다. 심사는 짧으면 한 달, 길면 다섯 달 정도다. 수주 잔량 기준 세계 1, 2위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병하면 초대형 조선사가 탄생하는 만큼 독과점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두 회사의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은 21.2%에 달했다.
국내 공정위 심사가 먼저 이뤄질 전망이다. 공정위는 심사 과정에서 독과점으로 인한 시장 경쟁 훼손 여부와 합병이 실패할 경우 대우조선해양 존속 여부 등 경쟁 제한 효과와 효율성을 집중적으로 확인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독과점 논란이 공정위 심사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조선 시장은 발주사 우위에 있는 만큼 수주업체의 20%대 점유율은 시장 경쟁을 크게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공정위 경쟁 제한 기준선도 50%라 점유율이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심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공정위의 판단도 앞서의 업계 분석과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기업규모가 큰 만큼 심사 준비와 공정위 심사 절차가 길어질 수 있지만, 사실상 시간 문제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번 인수가 ‘조선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만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 3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제경쟁회의에 참석해 “어느 국가보다 한국 공정위가 빨리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 사진=현대중공업
문제는 중국과 일본·유럽연합(EU) 등 최소 10개국에서 각국 공정거래 당국의 결합심사 승인이다. 만약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두 회사의 합병은 불발 된다.
주요 선박 구매자이면서도 반독점 금지 규정이 특히 강한 EU의 심사는 문턱이 높다. 관건은 EU가 적용하는 기준이다. 심사 과정에서 시장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의 전체 점유율은 20% 남짓이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따로 떼보면 지난해 말 기준 각각 60% 내외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자국 산업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며 “특히 내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로 LNG 운반선 발주가 세계적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 EU가 이번 합병을 까다롭게 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독일 안드레아스 문트 연방카르텔청장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고, 기업결합 심사를 맡는 EU집행위원회는 “위원회가 합병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제한 여부와 소비자에 대한 영향”이라는 입장을 냈다. 국내 조선업계는 EU집행위가 지칭하는 ‘소비자’는 현재 세계 1위 조선사 탄생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그리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 선주와 조선 기자재 공급사 등을 포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속한 국가는 EU 회원국이고, 일부 큰 손들은 EU의 기업결합 2차 심사를 맡는 자문위원회에 참여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일찌감치 자문사를 선정하고 EU와 접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국가별로 제출할 서류와 방식이 달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최근 연내 심사를 마무리 짓겠다고 밝힌 만큼 업계에선 구체적인 실무협상에 착수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 우리사주 조합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위한 주주총회가 위법한 주총이라고 주장하고 현장자료와 증거를 제시하며 법적 대응과 투쟁계획을 밝혔다. 사진=이종현 기자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이번 인수를 반대하는 노조들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노조는 현재 물적 분할이 통과된 임시 주주총회가 위법이라고 주장하며 인수 가치를 매기기 위해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진행하는 현장 실사를 막고 있다. 실사는 현대중공업이 국내외 공정거래 당국에 기업결합 신청서를 제출하는데 필수 절차다. 서류상으로도 가능하지만, 회사 규모가 크고 인수계약에 현장 실사가 포함돼 있는 만큼 현대중공업과 산은은 이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이번 인수를 막기 위해 해외 여론전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이 부당하고, 이를 기업결합 심사를 하는 국가들에 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21일 송명주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신상기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제조산업노조의 세계중앙집행위원회에 참여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하면 강력한 독점력을 지닌 조선사가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국제제조산업노조는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막기 위해 세계 공정당국 심사에 함께 대응할 것을 결의했다. 다른 조선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거래 내용 보다는 협상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현대중공업이 국내에선 노조와, 국외에선 해외국가, 특히 EU와의 협상을 얼마나 잘 이끌어내는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