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 잠깐 출연했다고 많은 것 바뀌길 바란다면 욕심”...“연기 하나 만큼은 불량 아니다는 평가 받을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
‘기생충’에 피자집 사장으로 출연한 배우 정이서. 사진=이종현 기자
[일요신문] 신스틸러. 짧은 등장 시간에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 캐릭터를 일컫는 말이다.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국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091만 관객을 끌어모은 ‘괴물’의 신스틸러는 ‘헤드폰녀’였다. 등장 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헤드폰녀의 강렬한 인상은 오랜 시간 대중의 뇌리에 남았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대작 ‘기생충’에도 신스틸러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바로 ‘피자집 사장님’이었다. 배우 정이서가 연기한 피자집 사장님은 영화 초반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단번에 이해시켜주는 캐릭터였다.
‘피자집 사장님’은 짧은 등장 시간에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 ‘기생충’이 거침없는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피자집 사장님’을 연기한 신스틸러 정이서를 향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일요신문’이 배우 정이서를 만났다. ‘일요신문’은 6월 5일 영화 ‘기생충’의 신스틸러, 피자집 사장님과 서울 모처에서 피자집 대담을 나눴다.
당찬 신인 배우 정이서, 피자집 사장님 추가 등장신의 비밀
6월 5일 ‘일요신문’과 정이서가 피자집 대담을 나눴다.사진=이종현 기자
– 장안의 화제작 ‘기생충’의 피자집 사장님과 ‘피자집 대담’을 나누게 됐습니다. 피자 좋아하시나요.
“네(웃음). 원래 피자를 좋아해요.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기생충’에서 피자집 사장님을 연기할 때도 ‘피자를 먹을 수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었었어요. 하지만 피자를 먹는 신이 없었습니다. 피자를 앞에 둔 신은 있었어요. 군침만 흘렸죠.”
– ‘기생충’에 등장하는 사장님은 딱 두 명입니다. 바로 주연급에 해당하는 ‘박사장’(이선균 분)과 피자집 사장이죠. 둘뿐인 사장으로서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감이요? 사실 제가 ‘기생충’에 출연한 것 자체가 영광이에요. 일반 관객의 심정으로 영화를 재밌게 감상하고 나왔습니다. 나오고 나서는 ‘내가 정말 이 작품에 출연한 게 맞나’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존경하는 감독님, 선배님들의 영화 메이킹 필름에 쏙 들어갔다 나온 기분입니다.”
– 영화에 캐스팅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오디션에 지원했습니다. 오디션을 본 다음 ‘기생충’ 제작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어요. ‘봉준호 감독이 네 오디션 영상을 보고, 역할 하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요.”
– 그 역할이 피자집 사장이었나요.
“맞아요. ‘원래 4~50대 역할인데, 연령을 낮출 것 같다’고 귀띔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피자집 사장님 역에 캐스팅됐습니다. 처음엔 친구들이 제게 장난을 친 줄 알았어요. 근데 장난이 아니라 진짜더라고요. 봉준호 감독님을 직접 만난 뒤에야 캐스팅 사실을 실감했죠.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 어떤?
“봉 감독님이 ‘이서 씨는 대사가 좀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대본을 쥐여 주셨죠. 집에 가는 길에 대본을 읽어봤는데, 영화 초반부에 정말 제 대사가 있더라고요. 그때 감정은 ‘기쁨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내가 이 대사를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어요. 근데 촬영 현장에서 더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웃음).”
– 무슨 걱정이었나요.
“감독님이 ‘지금 피자 박스 상태가 이런데, 네가 직접 대사를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했어요. 대본에 있는 대사를 소화하는 것도 긴장됐는데, 애드립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정말 긴장 많이 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장면이 제가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에게 ‘피자 상자 4개 중 하나가 불량이다. 돈을 다 줄 수 없다’는 신이에요.”
– 사실 피자집 사장님 등장신이 애드립이란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1년 쓸 머리를 그때 다 쓴 것 같아요(웃음). 최대한 재밌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제 역할을 소화한 뒤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잠깐이라도 좋으니 한 장면만 더 나오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렸어요. 그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봉준호 감독이 그 부탁을 들어줬습니까. 제 기억으론 피자집 사장님은 영화 초반 이후로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저만의 비밀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웃음). 영화 막판 체육관 장면이 있어요. 그 뒤를 자세히 살펴보면, 피자집 직원이 피자집 사장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장면이 이스터에그처럼 등장합니다.”
“연기 하나만큼은 불량이 아닌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는 정이서.사진=이종현 기자
– 영화 속 피자집 사장님은 깐깐하고 시크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니 오히려 밝은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지네요.
“영화에서 깐깐하고 시크한 이미지가 두드러졌을 거예요. ‘쌩얼’로 연기했거든요. 제 눈에도 어두운 기운이 보일 정도였어요. 오늘은 화장해서 밝아 보이나 봐요(웃음). 사실 평소에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유쾌하고 밝은 성격입니다.”
– 그렇다면 ‘기생충’ 피자집 사장님이 아닌 ‘인간 정이서’는 어떤 사람인가요.
“느리고 차분한 사람이요. 사람들과 있을 땐 밝고 유쾌하지만,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혼자 동네 카페 가서 책 읽고,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전시회 관람도 즐깁니다.”
– 가까운 미래에 유명 배우로 거듭난다면, 취미생활이 조금 바뀌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제 취미생활은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 모르겠지만, 유명해지더라도 저는 ‘유유자적’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웃음).”
– ‘기생충’ 상영 이후엔 유명세를 직접 느끼진 못했습니까.
“영화에 나온 모습과 실생활이 달라서인지, 아직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작년에 웹드라마를 촬영했을 땐 저를 알아봐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셨어요. 지하철에서 저를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관객분들께 더 익숙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기생충’ 이후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요. 오디션 열심히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웃음). ‘기생충’에 잠깐 출연했다고 많은 것이 바뀌길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에요. 저는 여전히 오디션 탈락을 걱정하고,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무명 배우니까요. 작은 욕심이 있다면, 올해로 27살인 제가 30살이 되기 전엔 20대를 표현하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고 싶다는 겁니다. 밝고 쾌활한 역할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20대임에도,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답변입니다. 이제 피자집 대담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카멜레온 같은 배우요! 아직 저는 경험이 부족하고, 색깔이 없는 연기자예요. 제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을 채워나가며, 상황마다 다른 색깔을 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카멜레온 같은 배우’라… 너무 식상한 것 아닙니까(웃음).
“그런가요? 그러면 카멜레온 같은데, 영어 잘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웃음). 어릴 적 7년 동안 미국에 살았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영어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 하나 더 생각났어요. 진짜 감정을 꺼내는 연기자요. ‘연기 하나만큼은 불량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끔요. 그런 배우로 성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꼭 지켜봐 주세요.”
박광주 인턴기자 park92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