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제안자 “협의 없이 아이디어 변경했다” vs 서울시 담당자 “충분한 협의 거쳤다”
서울특별시청 청사. 장애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 사업을 진행해온 사단법인 도와지는 “서울시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서울특별시의 ‘주민참여예산제’운영 과정에서 한 단체가 제안한 사업이 시 공무원들의 입맛에 따라 변경되고 다른 단체에 사업에 돌아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들이 직접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가 주민의 아이디어를 빼앗는 듯한 행태가 발생해 논란이 예상된다.
사단법인 ‘도와지’는 장애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 및 지원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단체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사업으로 한 사업을 제안했다. ‘장애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꿈틔움 예술 창작 놀이터’라는 이름의 사업은 교육기회가 제한적인 장애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시설물이나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는 요청이 아닌 시민과 지자체 행정부의 ‘협치’와 관련된 제안이었다.
적격심사와 숙의심사 등의 과정을 거쳤고, 이후 시민들로부터 투표를 받아 최종 선정에 이르렀다. 그런데 제안 단체는 장애 아동·청소년에게 예술 교육을 하겠다는 목표가 일그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했다. 이들의 사업 제안이 시청 문화본부로부터 ‘난도질’을 당하면서부터다.
사업 진행을 맡은 시청 문화본부는 도와지 측의 사업 제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도와지 관계자는 “문화본부 관계자가 ‘제안 내용을 서울문화재단으로 돌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면서 “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다시 서울시 산하 기관에 돌려준다는 발상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어질 사업자 공모에서 자신들이 배제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문화본부 내 또 다른 관계자로부터 ‘도와지라는 단체가 서울시의 커다란 사업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 그렇게 돼서도 절대 안된다’는 발언을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칙에 따른 공모 절차를 거쳐 진행이 될 텐데 그런 말을 들으니 허무했다”고 말했다.
결국 곧이어 발표된 공고를 보고 도와지 측은 심사에서 탈락 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시가 발표한 사업 공고에는 ‘참가 자격’으로 ‘최근 3년 이내 예술교육 관련 사업 경력이 있는 서울시 소재 교육전문기관 또는 비영리법인·단체’가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비영리법인이나 비영리단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다른 사업의 참가자격과는 차이가 있었다. 도와지 관계자는 “공고를 내기 이전부터 공무원들은 우리의 ‘규모’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서 대상 학생 수, 교육 분야 등의 변동이 있었다.
사단법인 도와지 측은 운영단체 선정 과정에서 “우리 단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응모단체들을 평가 과정에서 꿈틔움 사업에서만 ‘정량적 평가 세부지표’가 삽입됐다. 평가항목은 ▲최근 3년간 유사사업 수행 실적 중 최대 실적 규모 ▲최근 3년간 유사사업 수행 실적 합산 건수였다. 첫째 항목에서는 실적 규모(1억 원, 7000만 원, 5000만 원 등)에 따라 점수를 배분했다. 이를 두고 도와지 측에선 “사업 실적 규모를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은 결국 단체 규모를 보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꿈틔움 사업과 청년예술가 사업의 예산 규모는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청년예술가 사업을 제안한 단체는 사업 수행 단체로 선정됐고 도와지는 사업을 제안하고도 탈락했다.
또한 도와지 측은 제안서에 대한 서면 및 프리젠테이션 평가 과정에서도 부당한 부분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이들은 “업체별 제안설명 시간 15분을 발표에 임박해서 10분으로 줄였다. 심사위원들이 15분은 너무 길다고 했다더라”라며 “미리 공지된 15분에 맞춰 PPT 자료도 이미 제출한 상태였다.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5분은 승패를 가르는 시간 아닌가”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결국 도와지가 받아든 결과는 ‘탈락’이었다. 심사에 합격한 곳은 이들과 규모가 크게 다를 바 없는 단체였다. 이에 도와지 측이 시청 문화본부에 반발하자 “선정 단체는 사무처 직원이 3명이다. 도와지보다 1명이 더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공식적인 문의에는 모호한 답변뿐이었다.
도와지에게 관련 사업 경력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 3년간 ‘발달장애청소년미술교육’ 사업을 서울시와 함께 진행해 왔다. 이들은 “지난 3년간 사업이 잘 진행돼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2018년에는 서울시 ‘수범사업’으로도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올해는 도와지가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수범사업 선정 이후 사업 예산 규모가 커지면서 한 사립대학이 수행 단체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도와지 관계자는 “‘저소득층미술교육사업’을 위탁받아 진행 중인 이 학교에 장애청소년 대상 사업도 넘어가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안타까운 점은 물론 규모도 크고 인프라도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그 곳은 장애인 대상 교육은 경험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 측에서는 ‘발달장애청소년미술교육’이 올해부터 대학에서 열리게 됐다는 내용을 장애아동 학부모들에게 공지하기 위해 이들의 연락처를 도와지 측에 묻기도 했다. 도와지 관계자는 “시청에서 그런 개인정보를 우리에게 묻는 무리한 행동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면서 “사업에 탈락한 단체에게 너무 잔인한 행동이기도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꿈틔움 사업의 제안 단계부터 스스로 나섰던 도와지로선 시정협치 사업 탈락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억울한 마음에 담당 부서에 문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안자와 합의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공고를 변경해서 낼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같은 내용은 서울특별시장 직속 기관인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에 의해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도와지 측은 서울특별시의회 측에 억울함을 전했고, 시의회는 옴부즈만위원회에 감사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시의회 김창원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시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서 예산을 집행한다는 것은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고 본다”면서 “하지만 받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변동사항이 있다면 제안자와의 긴밀한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이번 일은 이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봤고, 이런 부분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감사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도와지 측은 행정소송도 준비중임을 밝혔다.
서울시 측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업을 담당한 문화예술과 예술교육팀 관계자는 “시정협치 사업이라는 것이 제안자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절차에 따라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심의 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에선 시청 측이 아니라 외부 인원이 심사를 맡는다”면서 “특정 응모 단체와 유대나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제안 내용이 공고로 나오는 과정에서 변동된 것과 관련해선 충분히 제안자와 논의를 거쳤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비록 공문이나 메일로 논의를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통화 등으로 충분히 의견을 나눴다. 다만 그 근거를 남겨놓지 않은 것은 다소 잘못된 부분이라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2014년 재선 직후 “갑을 관계를 뿌리 뽑겠다”며 ‘갑을관계 혁신대책’을 내놨다. 함께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서로 합의된 내용을 바꿀 경우 꼭 사전 협의를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청으로부터 피해를 주장하고 있는 도와지 측은 “아이디어를 제시한 제안자의 아이템을 시청이 마음대로 변경했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감사가 진행중인 이번 사안이 어떤 결과로 마무리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