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참여연대 ‘공익제보자 보호헌장’과 2019년 서울시체육회 ‘공익제보자 색출’ 논란의 공통 분모는?
서울시체육회 회장 직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맡고 있다.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국가는 공익제보자에게 보복행위를 가하는 조직과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사무처장: 박원순) ‘공익제보자 보호헌장’ 中
2002년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는 ‘공익제보자 보호헌장’을 발표했다. 이 헌장은 “자신들에게 닥칠 일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나선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9년 5월. 서울시체육회가 ‘공익제보자 색출‘ 논란에 휩싸였다. 공익제보자 색출 정황이 포착된 까닭이다. 서울시체육회 회장 직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맡고 있다.
5월 14일 서울시체육회는 목동빙상장 직원 A 씨를 ‘제24차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A 씨는 2018년 여름 목동빙상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의 공익제보자로 지목받은 인물이다. 인사위원회는 A 씨에 대한 징계를 심의하려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징계 심의 내용은 ‘목동빙상장 조사에 따른 징계’였다. 심의 내용만 봐선, A 씨의 징계가 논의되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A 씨의 징계가 논의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A 씨의 측근은 ‘일요신문’에 ‘A 씨 징계 심의와 관련한 세부 내용’을 귀띔했다. A 씨 측근은 “서울시체육회 인사위원회가 A 씨에게 ‘A 씨의 언론 제보가 체육회의 명예와 품위를 손상했다’는 취지로 질의를 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어 A 씨의 측근은 “A 씨의 언론 제보를 징계 심의 대상으로 본 것”이라면서 “이는 대놓고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5월 14일 밤 ‘일요신문’은 A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사실 언론 제보와 관련해 징계 심의를 받은 터라 입을 열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위원회에 출석했을 당시, 서울시체육회는 ‘언론 제보가 서울시체육회 품위와 명예를 손상했는지 여부’를 심의했다”고 전했다.
A 씨는 2018년 목동실내빙상장이 숱한 논란에 휩싸일 당시부터 ‘공익제보자’로 지목받은 인물이다. 5월 14일 서울시체육회는 ‘제24차 인사위원회’를 열어 A 씨의 징계를 심의했다. 사진=이동섭 기자
“14일 인사위원회에서 징계 심의 내용에 대해 소명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공익제보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내 공익제보가 서울시체육회의 명예와 품위를 손상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목동빙상장 내에서 일어난 불합리한 일들을 바로잡으려 공익제보했다. 내 제보는 당시 목동빙상장 소장과 연관 있는 내용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인사위원회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A 씨의 말이다.
A 씨는 서울시체육회 인사위원회 출석 당시 변호사를 대동했다. 인사위원회에서 A 씨와 동석했던 박지훈 변호사는 “인사위원회에 참석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언론에 공익제보를 했다고 임직원의 징계를 심의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A 씨에 대한 징계 심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어긋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2011년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한 사람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5조는 “누구든지 공익신고자 등에게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서울시체육회가 직접적인 징계 처분을 내릴지 여부는 아직 모르겠다”면서 “결과와 상관없이 A 씨의 징계 심의는 그 자체로 ‘불이익 조치’라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체육회가 A 씨에 통보한 ‘제24차 인사위원회 심의결과 통보’ 공문. 사진=이동섭 기자
A 씨는 “‘징계 심의를 다시 논의할 것’이라는 통보에 눈앞이 깜깜했다. 징계 심의가 결론이 나지 않아 뭔가 찜찜하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공익제보자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체육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서울시체육회 관계자들도 목동빙상장 직원 A 씨가 인사위원회에서 징계심의를 받은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체육회는 7월 1일부로 목동빙상장 위탁운영권을 다른 기업에 넘길 예정이다. 1달하고 며칠이 지나면, 목동빙상장은 서울시체육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시설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체육회가 목동빙상장 직원의 징계심의를 갑작스레 진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5월 24일 ‘일요신문’은 서울시체육회 정창수 사무처장과 연락이 닿았고, A 씨 징계 심의 사유가 ‘공익제보’인지 여부를 질의했다. 이에 정 사무처장은 “해당 부서의 확인이 필요하다”며 “징계 심의는 스포츠 인사위원회에서 했다. 담당 팀장이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다음 주에나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공익제보자’는 맑은사회 건설을 위한 선구자라 불러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어려운 결단을 한 이들은 오히려 조직을 고발한 ‘배신자’로 몰리고, 보복을 받아 사회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2002년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 박원순 사무처장이 공표한 ‘공익제보자 보호헌장’ 발췌 내용이다.
헌장은 2002년 당시 공익제보자들이 처한 현실을 개탄했다. 헌장 발표 이후 17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공익제보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서울시체육회 공익제보자 색출’ 논란이 그 단편적인 예다.
‘공익제보자 보호헌장’에 따르면, 서울시체육회의 제보자 색출 논란은 충분히 개탄스러운 일로 분류될 소지가 다분하다. 역설적이다. 2002년 ‘공익제보자 보호 헌장’ 발표자와 2019년 ‘공익제보자 색출‘ 논란이 불거진 서울시체육회의 수장이 동일 인물인 까닭이다.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