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34] 500년 시공 초월해 조선의 지성을 이어주다
‘유교책판’은 조선 유학자들이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나무에 새긴 책판을 말한다. 사진은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중인 책판 6만 4224장.연합뉴스
‘유교책판’이란 조선시대에 유학자들이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나무판에 새긴 책판(책을 박아 내는 판)을 말한다. 이 기록유산은 조선 500여 년에 걸쳐 718종의 서책을 펴내기 위해 만들어진 책판으로,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총 6만 422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집류 583종(5만 2396장), 성리서 52종(5342장), 족보 및 연보 32종(2134장), 예학서 19종(2216장), 역사서 18종(1813장), 지리지 3종(135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책판의 보존 및 관리를 맡고 있다.
유교책판은 책을 통해 후학이 선학의 사상을 탐구하고 전승하며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는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책판에 수록된 내용은 문학을 비롯해 정치, 경제, 철학, 대인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유교의 ‘인륜공동체 실현’, 즉 ‘도덕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조선의 유교책판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론’(公論)과 ‘공동체 출판’이다. 먼저 유교책판은 모두 공론에 의해 제작되었다. 여기서 공론이란 당대의 여론 주도층인 지역사회의 지식인 계층의 여론을 뜻한다. 문중-학맥-서원-지역사회로 연결되는 지식인 집단은 공론을 통해 인쇄할 서책의 내용과 이후의 출판 과정을 결정했다. 그런 까닭에 공론에 어긋나는 내용은 판각(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제한되었다. 이렇듯 공론에 따라 만들어진 목판은 후대를 위해 파손되지 않도록 보존되었고, 후대는 재량에 따라 스스로 해당 내용의 출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선의 기록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책판에 담긴 내용은 지역 공동체, 즉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식인 집단의 주도 아래 서책으로 간행되었다. 이들은 책판을 판각할 계획부터 수록할 내용을 결정하였으며, 판각 및 완성 과정을 감독하고 서책으로 펴내어 배포하는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사실 책판의 제작에는 개인이나 일개 문중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유교책판의 제작에는 고로쇠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감나무 등의 단단하고 보존성이 높은 목재가 활용되었다. 또한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수’들이 여러 명 동원되어 길게는 수년간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1명의 각수가 1장의 판을 새기는 데 평균적으로 3일이 걸렸다고 하니, 책판을 완성하는 데 실로 엄청난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재정이 투입됐던 셈이다.
한 예로 조선 후기의 학자 이주정의 문집 ‘대계집’을 판각하던 때에 목판 140장을 만드는 데 3000냥(현재 가치로 6억 원가량)이 들었다고 한다. 조선 지식인 집단의 구성원들은 책판의 제작 비용을 서로 분배하여 부담하였는데, 이러한 ‘공동체 출판’ 방식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것이다.
유교책판의 학문적 의미는 500년 이상 지속돼 온 ‘집단지성’(collective learning)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각각의 저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책판으로 출간하였고, 이 책판이 보존돼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로 전승되었다. 또한 후대는 선대의 학문적 성과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토론과 비판을 거쳐 그 내용을 다시 후세에 전했다. 이렇게 세대를 거치며 수정되고 보완된 내용 또한 책판에 담기어 ‘유교적 인륜공동체의 건설’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시공을 초월해 함께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은 대부분의 경우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소중하게 보관돼 당장 인출(책판에 박아 내는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하지만 조선의 멸망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외래문물의 급격한 유입 과정을 거치며 상당수의 조선 책판이 훼손되거나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책판의 가치를 알지 못하여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빨래판으로 썼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고유하고 특별한 유산이라도 후대가 무관심하다면, 그 유산은 더 이상 빛을 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