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 돌보는 40대 가장에 혹했는데…거짓 사연 조작에 후원자 배신감 증폭
대형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 한 회원이 자작극을 꾸며 회원들을 속이고 후원금을 모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배드림 캡처.
먼저 화제가 된 것은 ‘붕어 사건’이다. 커뮤니티 아이디로 ‘붕어의질주’를 사용하던 유저가 후원사기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5월 15일 ‘붕어의질주’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네티즌 곽 아무개 씨는 자신이 ‘재생성 빈혈’이라는 병에 걸렸으며 아내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글을 썼다. 또 사업이 망해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월세가 밀려 회원들에게 후원을 요청했다.
묻히는 듯했던 곽 씨의 사연은 ‘음식물쓰레기 택배’ 사건이 터지면서 수면위로 올라왔다. 문제의 사건은 누리꾼 A 씨가 ‘누군가 곽 씨에게 쓰레기 택배를 보내고 가족들을 조롱했다. 그 충격에 곽 씨 아내가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며 촉발됐다. 보배드림 회원들은 공분해 쓰레기 택배를 보낸 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또 어려움을 겪는 40대 가장의 사연에 후원하겠다는 사람이 속출했다. 1만 원의 소액기부부터 100만 원 이상 목돈을 후원한 사람들도 있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물결에 곽 씨는 4000만 원 이상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바뀐 건 일부 회원들이 A 씨와 곽 씨가 쓴 글의 문체가 비슷하다며 동일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회원들은 병원기록이나 사연글을 뒷받침할 증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곽 씨는 도리어 회원들과 설전을 벌이다 돌연 잠적해 논란이 증폭됐다.
결국 보배드림 운영자가 지난 3일 A 씨와 곽 씨의 아이피가 동일하다고 밝히며 사기극이 드러났다. 쓰레기 택배 관련 글을 작성한 계정과 피해를 당했다는 계정의 접속 아이피가 일치하다고 확인된 것.
6월 13일 곽 씨는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너무 많이 드렸습니다. 경찰조사 마치고 제 신변처리는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월세며 생활비, 채무변제로 사용한 금액이 700만 원 정도 됩니다. 이에 대해선 죗값 다 치르고 와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반성하며 살겠습니다”라는 입장글을 남겼다.
붕어사건이 사기극으로 드러나며 과거의 후원금 모금 사건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붕어 사건 이전에 있었던 후원 모금자 B 씨와 붕어사건의 모금자 곽 씨가 동일인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 근거로 앞의 둘과 놀라운 교집합을 가진 또 다른 등장인물 곽 아무개 씨가 지목됐다. 또 다른 곽 씨는 붕어사건 모금자와 성이 같은 데다 거주지역이 제천으로 같아, 최소한 가족이나 관련된 인물이라는 추리가 나온 것. 게다가 또 다른 곽 씨가 앞선 후원 모금자 B 씨와 동네 지인이며, 과거 일했던 직장 대표가 붕어의질주 모금주 곽 씨와 이름이 동일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누리꾼들은 정보를 모으고 검색을 거쳐 여러 시나리오를 추측해냈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의 인물들의 연령대가 제각기 다르고 연관이 없는 독립된 인물들로 확인됐다. 단순히 성이 같고 동네 지인이 겹쳐 비슷한 혼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곽 씨는 “붕어의질주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성씨가 같아서 엉뚱하게 의심을 받았다”며 “또 수년 전에 일했던 직장 대표님과 붕어의질주님 이름이 같아서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배드림 후원금 사기 사건의 본질은 익명성에 기대 사람들을 기만한 데 있다. 자녀를 키우는 40대 가장의 어려운 사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어려운 사람에게 쓰레기 택배가 도착했다는 극적 사건을 꾸며내 공분을 사며 폭발적 후원을 이끌어냈다. 본인 계정의 아이디를 여럿 만들어 자신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만드는 일종의 여론조작에 누리꾼들의 배신감이 상당하다. 회원들은 사기 자작극에 속아 ‘자녀 6개월 치 학원비를 보냈다’,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배드림 측은 “후원사기와 관련해 14일까지 소송 접수를 받고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며 “먼저 사건 진행을 한 뒤 제기된 별건의 후원 의혹 사건들을 검토할 계획이다. 후원금 규모에 따라 위법 적용 기준이 달라 변수가 있다”고 밝혔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