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 없고 타지생활…“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할 때도 있다”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 ‘신림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제보된 글들. 사진 = 페이스북 캡쳐
[일요신문] ‘솔로 전성시대’다. 혼밥, 혼술은 이미 젊은 세대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외에도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행(혼자 여행) 등 혼자 즐기는 취미생활이 대세로 떠올랐다.
더 이상 혼자가 부끄럽지 않은 20대 청년들 사이에 새로운 유행이 등장했다. 바로 ‘동네친구 만들기’다.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엔 ‘동네친구를 구한다’는 글이 매일 올라온다. 술친구를 구하기도 하고, 취미 생활을 함께할 친구를 구하기도 한다.
혼자에 익숙한 20대 청년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친구를 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신문’이 이들을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동네친구’가 그립다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출연자들이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 사진 = KBS 캡쳐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한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근처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통계청이 2018년 8월 발표한 2017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가구 유형은 1인 가구였다. 전체 가구 중 28.6%였다.
직장인 강 아무개 씨(23, 남)는 대구 출신이지만 직장을 다니느라 혼자 서울에 머물고 있다. 작년 12월 상경하기 전까지 대구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강씨는 “외로워서 친구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강 씨는 “대구에 있을 때는 퇴근하고 친구 한 명 불러내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삶의 낙이었다”고 말했다. 또, 강 씨는 “서울에 올라와보니 회사 사람들 말고는 만날 사람이 없었다. 언제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20대 청년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도 이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친구를 구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취업준비생이나 국가고시생은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소 아무개 씨(27, 남)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녀서 친구는 많지만 만나기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친구를 한 번 만나려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해야 하는데 경제적, 시간적으로 부담스럽다는 말이었다.
소 씨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편한 동네친구”라고 했다. 소 씨는 “평소에는 고시식당에서 혼자 식사하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든 적이 많다”며 “혼자 공부하다보면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취미 공유 원하는 20대…“이성 친구보단 동성 친구”
6월 1일부터 20일까지 익명 커뮤니티에 업로드된 제보글 중 이성친구를 찾는다는 글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사진 = 김민표 인턴기자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소개팅’을 검색하면 관련 애플리케이션(앱)만 200여 개에 달한다. 일부 인기 있는 소개팅 앱은 가입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로 친구를 구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성 친구보단 동성 친구를 원한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권 아무개 씨(21, 여)는 영화를 함께 볼 친구를 구하는 중이다. 권 씨는 “항상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며 “영화가 끝나고 같이 영화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씨는 “팝콘도 1인 콤보는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권 씨는 영화 관련 소모임에도 참여해봤지만 친구를 만들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권 씨는 “참여율이 낮아서 멤버도 자주 바뀌고 연애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나는 취미 공유할 친구를 원하는 거지 남자친구 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행동엔 절차가 필요하다.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바쁜 사람들은 혼밥과 혼술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혼자를 즐기던 나홀로 족은 ‘혼밥 동호회’, ‘혼술 동호회’와 같은 역설적인 모임을 통해 고독함을 달래기도 했다.
이제 20대 청춘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를 찾는다. 단순 온라인 친구가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날 ‘동네친구’를 찾는다. 약속을 잡고 옷을 골라 입고 만나는 친구가 아니다. 초등학교 단짝처럼 편한 차림으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다.
김민표 인턴기자 minpyo8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