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업계 “애초에 인터넷 방송인 출연 부정적…쉽게 이목 끌려는 게으른 방송사들이 문제” 지적도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신인상을 받은 감스트. 사진=방송 화면 캡처
K리그 홍보대사, 지상파 방송 축구경기 해설위원, 각종 예능 방송 등으로 이름을 알렸던 감스트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6월 18일의 일이다. 같은 아프리카tv BJ인 남순, 외질혜와 함께 인터넷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다른 여성 BJ 이름을 언급하며 “그 BJ 방송을 보고 XXX(자위를 뜻하는 비속어) 했지”라는 질문에 “당연하지, 세 번 했다”고 답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감스트는 즉각 사과했고, 이후 공식 사과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은 식을 줄 몰랐고, 결국 감스트는 ‘잠정 활동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유명세를 보고 기용했던 각종 업계에서도 이번 사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2018년에 이어 올해도 감스트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던 K리그 측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논하지 않았지만 당분간 홍보대사로의 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잠정 중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스트가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사과 영상을 올렸으나 대중들의 질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감스트 유튜브 채널
감스트의 출연이 예정돼 있던 MBC 스포츠프로그램 ‘스포츠매거진’ 역시 방송 방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MBC 측은 명확하게 감스트의 하차나 출연 재검토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논의 중’이라는 모호한 말로만 일주일을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공중파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인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용해 놓고, 논란이 불거졌는데 책임 있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대중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MBC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은 MBC가 감스트의 전폭적인 지원자로 나서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각종 TV 예능프로그램과 라디오 방송, 심지어 드라마에까지 감스트를 출연시킨, 즉 ‘감스트의 지상파 데뷔’ 매니지먼트를 자청한 게 MBC였다.
실제로 MBC는 지난 3월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A 매치 친선경기 생중계석에도 감스트를 해설위원으로 앉히는 등 지상파 방송으로써 논란이 예상되는 모험까지 강행해 왔다. 당시 이 해설에서도 감스트는 인터넷 방송에서나 통용되는 속어를 사용하거나 인종차별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무례한 언사로 대중들의 많은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자 결국 전체 인터넷 방송인의 지상파 데뷔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으로 확전되고 있는 분위기다.
MBC의 선례를 본 방송업계는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상파와 그 케이블 자회사에서는 “MBC가 보여준 모험의 끝을 토대로 인터넷 방송인들이 관련된 프로그램 계획을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리카 유명 BJ인 외질혜, BJ남순 등과 함께 합동 방송을 진행하던 감스트. 사진=아프리카TV 캡처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 방송인의 출연을 저울질하고 있던 방송사들이 ‘감스트 사건’ 이후 몸 사리기에 돌입한 형국이다. 실제로 인터넷 방송인을 보조 MC로 한 예능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던 모 방송사는 이번 논란 후 계획 자체가 엎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 예능프로그램 PD는 “뷰티 유튜버나 게임 방송 진행자들이 케이블 방송의 뷰티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과 그야말로 단순한 ‘인터넷 방송’을 해 온 방송인들이 지상파로 넘어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일단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 방송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언제 갑자기 터져서 프로그램은 물론 방송사에까지 먹칠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MBC가 총대를 메고 인터넷 방송인이 지상파에 넘어 오면 어떤 결말이 나올지를 보여줬으니, 이제 누가 똑같은 모험을 하겠나. 차라리 방송사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어서 그 쪽으로 돌리면 돌렸지 TV 방송은 어림도 없다.”고 진단했다.
사실 방송가에서는 이전부터 유튜버나 아프리카BJ 등 인터넷 방송인이 TV 방송을 넘나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이른바 ‘크리에이터’로 분류되는 인터넷 방송인이 TV에 출연하고, 연예인이 유튜버로 변신하는 ‘영역 파괴’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지만 후자에 비해 전자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적당히 선을 긋고 ‘넘어라, 넘지 말아라’ 조언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인터넷 방송인들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짚었다. 최근 CJ ENM이나 그 산하의 DIA TV 등 인터넷 방송인을 위한 다양한 멀티채널 네트워크사가 형성돼 있지만, 이들 역시 개별 방송인들의 모든 활동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감스트 성희롱 사건’에서도 그의 채널을 관리하는 아프리카TV가 고작 ‘방송 3일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비난을 받은 것에서 관리 및 대처 소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이어 “TV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소속사가 완벽하게 대외 관리에 나선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인들은 그들의 발언이나 행동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져 줄 곳이 전무하다”며 “영역 파괴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방송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을 ‘인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세우고, 그게 방송 혁신인줄 아는 방송사의 게으른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