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필 측 “전문가 증인 신청 내용 쏙 빠져” 법원 측 “조서 잘못 주장은 흔히 있는 일”
1986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정규필 대령은 2019년까지 첩보장교로 활동하다 예편했다. 대북공작 최전선에서 청춘을 바쳤다. 군인으로서 커리어를 마친 정 대령은 전역 이후 자신의 삶을 부정 받을 만한 사건에 휘말렸다. 2019년 5월 14일 갑작스레 찾아온 국정원의 압수수색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처음 압수수색 목적은 군사기밀 누설 혐의였다. 공작원에게 군사기밀 누설 혐의는 간첩 혐의에 해당된다. 정 대령은 군사기밀 누설 혐의를 벗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상고 절차를 밟고 있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비인가자의 군사기밀 점유 및 탐지·수집) 혐의를 받은 것 때문이다. 정 대령은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 대령은 항소했다. 채증법칙 위배, 법리오해 등을 주장했다.
항소심에서 정 대령은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정 대령 혐의와 관련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명령 160시간을 선고했다. 정 대령 측은 2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고를 결정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정 대령 측은 공소권 남용, 채증법칙 위반 등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여기다 공판조서 허위 기재 의혹을 근거로 명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2024년 1월 8일자 제출한 공판재개신청서에서 12월 6일자 제5회 공판조서 기재 변경을 청구하였음에도, 재판장 의견을 기재한 조서를 첨부하지도 않고 선고한 위법이 있다”면서 “제5회 공판조서의 기재는 대부분 허위로 작성돼 있다. 제1~4회 공판조서도 녹취록과 비교하면 대부분 허위기재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 제56조에 따르면 공판조서에 기재된 내용은 그 조서만으로 증명한다. 공판조서에 대한 배타적 증명력을 인정하는 절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판조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100% 증거 능력을 지니는 상당히 중요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정규필 대령 2심 공판 녹취록과 공판조서를 입수해 비교했다.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이 상고이유서에 명시한 제5회 공판 과정이 핵심 쟁점이었다. 공판 내내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은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외장하드 내 군사기밀이 진짜 군사기밀인지 여부를 두고 다툰 것으로 파악됐다.
제5차 공판기일에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증인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증인 신청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재판에서 다뤄지고 있는 군사기밀이 군사기밀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군사기밀을 점유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고 재판부도 해당 내용에 따라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피고 측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이후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1심에서 증언자들이 군사기밀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들을 갖다가 검찰 측에서 증인을 세웠고, 그 의견이 지금 1심에서 증거로 채택돼 유죄가 됐다…(중략)”면서 “저희는 군사보안 전문가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피고 측 새로운 증인 신청에 대해 판사는 “그 사이에 충분히 새로운 증거신청을 하거나 증거신청을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증인 신청을) 하는 게 좀 적절치 않아 보이고, 이미 변론 종결까지 한 마당”이라면서 “만약 정식으로 증인 신청을 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어 판사는 “항소심에서는 증인 신청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채택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 규칙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증인 신청은) 조금 곤란하다는 말씀을 미리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1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3번 공판 열고 지금 변론을 종결하고, 그 다음에 증인을 신청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피고인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느냐”고 따졌다.
판사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항소심 절차 운영을 한 번 보시면 재판장이 조금 전 변호사님께 말씀드린 취지를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법률대리인은 “재판장님이 하신 말씀을 조서에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판사는 “아직 정식으로 증인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률대리인은 “그러면 증인 신청을 하겠다”면서 “예비역 기무사 보안담당관이고, 군사기밀보호법에 대해서 이런 사건에 대해서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판사는 “그런 내용은 안 된다. 구체적 관계를 말씀하셔야죠”라면서 “그것은 법리판단이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 법률대리인은 “군사기밀보호법 상 군사기밀은 해제가 되면 군사기밀성을 잃는다”면서 “증인 의견이 아니라 법에 규정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사는 “법에 규정돼 있으면 법을 제출하면 된다”면서 “증인 신청에 대한 판단은 잠깐 재판부에서 협의를 해서 정해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이후 공판은 잠시 휴정을 거쳤고, 재판부는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재판부는 법률대리인과 피고인에게 최종 의견 진술 시간을 부여했다. 법률대리인은 “정상적인 재판을 해 달라”면서 “제가 지금 말한 변론 요지를 조서에 다 적어 달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적어 달라”고 했다. 피고인 정 대령은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았는데 정상적인 재판을 받아보지 못했다”면서 “재판을 좀 제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정 대령 사건 항소심 마지막 공판기일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공판조서를 확인한 결과, 이날 오간 대화 중 증인 신청 등에 관련한 내용들이 조서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 대령 측 법률대리인 이명현 법무법인 닥터홈 변호사는 “공판조서는 증거로서 100% 인정이 된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증인 신청을 했는데, 재판부가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 그런데 조서 상엔 우리가 증인을 신청하지 않은 것처럼 돼 있다. 더 이상 할 게 없는 것처럼 돼 있다. 다 허위다. 제5회차 공판뿐 아니라 앞선 공판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있다. 3회 공판이 끝나고 선고를 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4회 공판을 열어서 발견된 군사기밀을 열람하라고 재판부가 지시했다. 열람을 했더니 분량이 2000페이지 이상이 돼서 복사를 요청했더니 그건 기각이 됐다. 사실상 팔다리가 묶인 채로 재판을 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사회봉사명령이 추가됐는데, 그건 파렴치범들에게 부여하는 조치”라면서 “제2의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유죄 판단 근거가 된 군사기밀은 국정원이 압수수색에서 가져간 외장하드를 포렌식해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에서도 혐의를 인정한다는 의견서를 쓰면 기소유예 조치를 해서 선처하겠다고 해서 의견서를 썼더니 기소를 해버렸다”면서 “평생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한 국가유공자에게 어떻게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울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서울중앙법원 측에 정규필 대령 측 법률대리인이 제기한 공판조서 허위작성 관련 입장을 물었다. 서울중앙법원 측은 “재판 관련 내용은 확인해드릴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 “조서 내용이 잘못됐다, 이런 주장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담당 재판부에서 보고 적절히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