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나오면 ‘터줏대감’ 정세균 ‘지지율 1위’ 이낙연 2파전에 무게…임종석 강한 출마 의지가 변수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고차방정식이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공천을 둘러싼 여권 내 눈치싸움 얘기다. 예선전은 ‘일여다야’ 구도다. 여권에선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에선 황교안 대표가 유력한 주자로 꼽힌다. 키는 황 대표가 쥐고 있다. 종로 총선에선 황 대표가 독립변수, 여권 3인방이 종속변수인 셈이다. 그런데 독립변수가 불안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종로 매치업 시나리오의 출발은 한국당이 ‘황교안 카드’를 띄우느냐에 따라 갈린다. 황 대표가 종로에 출마한다면, 민주당은 지역 조직이 탄탄한 정세균 의원이나 차기 대권주자 1∼2위를 다투는 이 총리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실장이 제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라고 하더라도 제1당 사수가 최대 목표인 민주당은 이길 수 있는 ‘필승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민주당 한 전략통도 “내 사람이라도 필패 카드는 공천할 수 없는 게 선거의 불문율”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 출범 이후 ‘신 친문(친문재인)’으로 부상한 임 전 실장의 최대 약점은 약한 대중성이다.
만에 하나 당 지도부가 ‘사천’을 강행하다가 패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는다면, 서울 등 수도권 전역과 총선 판세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문계가 당 공천인 ‘전투’에서 이겼지만, 본선인 ‘전쟁’에서는 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 임 전 실장의 강한 종로 출마 의지가 당 지도부와 친문계를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 셈이다. 임 전 실장은 6월 10일 서울 은평구 주거지를 떠나 종로구 평창동으로 이사하면서 종로 출마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임 전 실장은 지난 3월 말께 서울 모처에서 정 의원과 만나 은평구에서 종로구로 거주지를 이전할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원은 “알았다”고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실장의 종로구 평창동 이사는 환경연합 출신의 부인 김소희 씨가 강하게 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임 전 실장이 보수 성향이 강한 평창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을 놓고 본선을 대비한 ‘보완재 찾기’의 일환이라는 말도 나온다. 평창동은 사직동과 삼청동, 구기동 등과 함께 한국당 색이 강한 지역이다. 반면 창신동과 숭인동, 혜화동 등은 전통적으로 야권이 강한 지역이다. 종로 지역은 서울의 중심지지만, 아파트가 거의 없는 ‘서울 내 지방도시’로 불린다. 서울에서 노인 비율도 가장 높다. 반문(반문재인) 심리가 타 지역구보다 높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2030세대 등 젊은 층에 인기가 있는 임 전 실장으로선 악재가 적지 않은 지역이다.
임 전 실장과는 달리 6선의 정 의원은 종로 지역에서만 재선했다. 19대 총선 땐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홍사덕 전 의원, 20대 총선 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각각 꺾었다. 총선 득표율도 52.3%(19대)와 52.6%(20대)에 달했다. 반면 홍 전 의원은 45.9%, 오 전 시장은 39.72%에 각각 그쳤다. 그간 차기 총선 출마 여부에 관해 함구해온 정 의원은 최근 종로구 반상회 등을 돌면서 밑바닥 표심 훑기에 나섰다.
정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정 의원의 최대 강점은 두 번의 총선을 통해 지역의 그물망 조직의 표심까지 파고든 점”이라며 “종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외부 인사가 온다고 표를 주는 지역이 아니다”라고 경쟁력을 자신했다. 임 전 실장의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당 내부에선 정세균 국무총리 카드가 현실화할 경우 서울 종로 공천의 교통정리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카드는 한때 여의도 정가에 떠돈 ‘정세균·임종석 밀약설’의 연결고리였다. 다만 임 전 실장의 종로 공천 확정은 ‘이낙연’이란 거대한 산을 넘을 때 성립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 측에선 그간 이 총리 출마를 전제로 “‘이낙연 vs 황교안’ 구도가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종로 공천의 다른 시나리오는 한국당이 황 대표 대신 ‘제2의 카드’를 꺼낼 때다. 이 경우 종로 공천은 새 국면을 맞는다. 한국당 입장에선 황 대표의 종로 출마는 ‘총선 정공법’이다. 가장 강력한 후보를 내세워 최대 빅매치 지역을 탈환할 경우 지난 총선에서 빼앗긴 전통적 강세 지역인 양천구를 시작으로 강남·송파 지역까지 석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20대 총선에선 양천갑(황희)과 강남을(전현희), 송파을(당시 최명길·현 최재성), 송파병(남인순) 등을 모두 내줬다.
황 대표 입장에서도 ‘종로 출마→원내 진입→대권 도전’ 시나리오는 약점인 ‘정치적 상징 자본’을 단번에 획득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인 김세연 의원도 황 대표의 종로 출마에 대해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가 선당후사 정신으로 여권 실세와 맞붙는 ‘험지 출마’를 받아들인다면, 공천 혁신을 매개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수 있는 명분도 얻는다. 공천 혁신 후 ‘중도층 포섭’까지 꾀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명분과 실익을 얻는 일거양득 전략인 셈이다. 다만 황 대표는 종로 출마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역으로 황 대표의 종로 출마는 ‘양날의 검’이다. 낙선 땐 자신의 효용성은 소멸하고 당은 정계개편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비박(비박근혜)계가 ‘황교안 종로 출마설’을 띄우는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포스트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노리겠다는 포석이 깔렸다. 친박계 일각에선 이 같은 비박계의 총선 전략을 ‘황교안 죽이기’로 보고 있다. 향후 친박계와 비박계의 힘겨루기 결과가 ‘황교안 종로 공천’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도 시간이 많지 않다. 여권 내 인사들이 총선 행보에 속도를 낸다면, 황 대표는 ‘선점 효과’를 일시에 실기한다. 과거 대권 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 전 시장뿐만이 아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손학규 현 바른미래당 대표가 낙선했다. 관료 출신인 황 대표가 ‘간 보기 정치’로 일관할 경우 당내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보수진영 안팎에선 선거 때마다 러브콜을 받았던 홍정욱 전 의원 등도 종로 후보군에 오르내린다. 대구 수성갑 출마가 유력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주변에서 종로 출마를 권유받았다.
반반이던 황 대표의 종로 출마 가능성은 최근 잇따른 구설로 낮아지는 추세다. 한국당은 황 대표가 ‘아들 스펙’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후 취재진의 백브리핑 줄이기에 나서면서 ‘황교안 지키기’에 나섰다. 전략통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정두언 전 한나라당(현 한국당) 의원 등은 황 대표의 종로 출마 가능성에 대해 “비례대표로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사실상 ‘이회창 모델’에 가깝다.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는 1999년 6월 서울 송파갑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험지보다는 보수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으로 간 것이다. 이듬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는 전국구 비례대표로 방향을 틀어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이 전 총재의 이력과 유사한 황 대표의 비례대표 출마를 유력하게 보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황 대표와 이 전 총재는 판검사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보수 정당에 몸담았지만, 비영남 출신이다. 다만 황 대표는 이 전 총재만큼의 당내 강력한 구심력은 없는 상태다. 이 전 총재는 1997년 대선 정국에선 민정계를 등에 업었다. 2000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는 김윤환 전 의원을 비롯한 민정계는 물론 민주계 인사 일부만 남기고 모두 제거, ‘이회창 천하’를 만들었다.
황 대표가 이회창 정도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당내 구심점이 약한 황 대표가 험지를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회창의 길은 필패”라고 말했다. ‘험지 출마냐, 예측 가능한 길이냐’, 종로 대전의 퍼즐은 황 대표의 이 선택에서 출발한다. 단순화하면, ‘이회창의 길이냐, 아니냐’다. 여권도 황 대표의 행보를 보며 ‘정세균·임종석·이낙연’ 카드를 놓고 주판알 튕기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