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명분 정당해산·국회의원 국민소환 거론…정권 심판론 내건 한국당과 ‘프레임 전쟁’
꼭 빼닮았다. 4년 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꺼내든 프레임의 기시감이다. 여권의 ‘국회 때리기’와 야권의 ‘정권 때리기.’ 속내는 총선 표를 앞세운 일종의 알박기다. 이 싸움의 끝은 둘 중 한쪽이 백기투항하지 않은 한 ‘네버 엔딩 스토리’다. 어느 한 진영의 KO승은 어렵다. 판정승도 총선 개표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남은 것은 둘 중 한쪽의 자책골이다. 2015년 프레임 전쟁 당시엔 자책골을 찬 보수진영이 몰락의 서막을 열었다.
강기정 정무수석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4년 전 박근혜 정부의 국회 심판론은 ‘여권 내부 분열→옥새 공천 파동→20대 총선 참패→최순실 게이트 발발→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들어 급물살을 탄 집권 3년 차 증후군에 휘청거렸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그해 6월 셋째 주(6월 16∼18일 조사·19일 발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9%로 곤두박질쳤다.
앞서 2015년 4월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공무원 개혁안을 시작으로 서서히 부상한 집권 3년 차 증후군은 일명 국회법 개정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파동 등을 거치면서 박근혜 정권 전반을 짓눌렀다. 박 전 대통령은 6월 들자마자, 정부 시행령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을 시사했다. 정국은 요동쳤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입법권에 딴죽을 건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박 전 대통령의 거부권을 ‘대입법부 전쟁 선포’로 규정하고 “유신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라”고 대대적인 압박을 가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방미 일정까지 연기하고 메르스 정국을 진두지휘했다. 또한 같은 달 김진태 전 검찰총장(사법연수원 14기)보다 두 기수 낮은 김현웅 전 법무부 장관(사법연수원 16기)을 임명,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민생·개혁 행보는 대입법권 전쟁 하나에 무너졌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25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회 행정 간섭의 저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선거에서 신뢰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 등의 격정을 쏟아내며 ‘청와대 vs 야권’ 구도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향해 “여당 원내사령탑이 경제 살리기에 협조했는지 의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통해 찍어내기를 한 지 13일 만(7월 8일)에 불명예 퇴진했다.
문재인 정부와 유사한 점이 눈에 띈다. 두 정부 모두 집권 3년 차다. 박근혜 정부 땐 ‘김현웅(전 법무부 장관)’, 문재인 정부 땐 ‘윤석열(검찰총장)’을 통해 개혁 인사를 각각 단행했다. 차기 총선은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정부 개혁입법 과제는 대야 관계 경색으로 꽉 막혔다. ‘국회 심판 vs 정권 심판’ 프레임을 주도하는 쪽은 청와대다. 문재인 정부도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총대를 메고 국회 압박 제1∼2탄인 ‘정당 해산’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연달아 터트렸다. 명분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야권에선 강기정 정무수석까지 나서자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 하나는 국정 지지도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 들어 30% 선이 무너졌다. 집권 3년 차 증후군을 넘어 사실상 레임덕(권력누수) 국면에 진입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집권 3년 차 지지도는 40% 중·후반∼50%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에선 여권 내부 분열 양상이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탈원전 등 경제정책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놓고 당내 엇박자가 일기는 했지만, 여권 내 권력암투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당해산 청원에 대해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질책으로 보인다”고 직격하자, 여의도 안팎에선 “강기정답다”는 얘기도 나왔다. 강 수석은 민주당 시절부터 대표적인 매파(강경파)로 꼽혔다. 정치권 인사들은 문 대통령의 ‘총선 절박함’과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한 ‘여권 인사의 과잉 충성’이 프레임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강 수석의 정당해산 국민청원 발언 등은 문 대통령이 한국당을 향해 쓴소리를 내놓은 것과 맥락이 같다”며 “(사실상) 총선 체제로 전환한 청와대가 선거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고리로 한국당을 압박한 문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현충일 기념사 등을 통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 “약산 김원봉이 광복군 좌우합작, 국군창설 뿌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만드는 총선용”이라고 해석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특정 정당을 압박할 의도였다면 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에 대해서만 답변했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청와대와 한국당의 신뢰가 급격히 무너진 것은 6월 4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폭로였다. 손 대표는 강 수석을 거론하며 “전날(3일)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 회담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 폭로에 그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강 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을 찾았다. 이어 “‘4당 대표라도 만나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한 뒤 ‘5당 대표 회동·일대일 회동 동시 추진’을 한국당에 제안했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나설수록 일이 꼬인다”며 “문 대통령이 국회 파행 당사자”라고 청와대 제안을 거부했다. 이후 강 수석과 복기왕 정무수석 비서관은 국회 압박 제1∼2탄인 국민청원 답변자로 나섰다. 그러자 나 원내대표는 6월 13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 수석을 거론하며 “연락 한 번 안 했다”고 쏘아붙였다. 강 수석은 즉각 “국회 파행 사태에 청와대는 뒤로 빠지라고 해서 연락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 수석은 나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인 지 하루 만에 국회를 찾아 화해를 시도했지만, 둘의 회동은 시종일관 냉랭했다. 나 원내대표는 회동 이후 “얘기를 더 할 것도 없고 하니까 그냥…”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에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나 원내대표의 말은) 청와대가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빠지라고 해서 빠졌다는 것은 청와대 정무수석다운 변명은 아니다. 논란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도 프레임 전쟁을 둘러싼 딜레마에 둘러싸였다. 앞서 동물국회 때나 국회 공전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당 책임론’이 정부여당 책임론에 앞선다. 다수 국민이 한국당에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특히 중도층 이탈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당 일부 의원의 막말 논란 등이 ‘정권 심판’ 프레임 효과를 깎아 먹는 셈이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막말 논란 이후 민주당과 제1야당의 지지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여권 한 관계자는 “장기간 문 닫은 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높지 않으냐”라며 “국회 심판론에 손을 들어주는 유권자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당 내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홍문종 의원 탈당으로 촉발한 친박(친박근혜) 신당 움직임으로 한국당 내부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이다. 일각에선 ‘홍문종 탈당’으로 자연스레 친박 물갈이를 단행할 수 있다는 긍정론도 나오지만, 한국당 현역 의원의 탈당 러시가 두 자릿수에 이를 경우 보수 분열의 단초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보수 대통합은커녕 한국당의 총선 전략인 ‘문재인 vs 반문재인’ 구도가 무력화할 수도 있다. 여전히 과반에 육박하는 문 대통령 지지도도 한국당에 고민거리다. 내년 4·15 총선 때까지 문 대통령의 지지도 40% 선이 유지된다면, 한국당의 정권 심판론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청와대의 국회 심판론에 되치기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총선 프레임 승자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한국당 밖에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