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로 준비한 카레에 졸피뎀 넣어...살해 후 7일간 시신 훼손
제주지방검찰청은 지난 1일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로 고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극단적인 인명경시 살인”이라며 “수사 결과와 증거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계획적 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검찰·경찰의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사건은 피해자 전 남편인 강 아무개 씨(36)가 지난 5월 25일 이혼한 고유정과 아들을 만나 제주도의 한 펜션에 들어가면서 발생했다. 당시 고유정은 저녁에 먹을 음식으로 카레라이스를 준비했다. 수사당국은 고유정이 이 과정에서 강 씨의 음식이나 음료에 졸피뎀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숨진 강 씨의 키는 182㎝,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이다. 반면 고유정은 160㎝ 내외로 강 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고유정이 강 씨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졸피뎀 성분 때문으로 추정된다.
졸피뎀은 고유정이 지난 5월 17일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후 인근 약국에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유정은 수면제 처방에 대해 감기 증상이 있어 약을 처방 받았고, 이후 잃어버렸다고 진술했지만 약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고유정은 오후 8시~9시 16분 사이에 강 씨를 살해했다. 강 씨가 오후 8시께 펜션에서 아버지와 통화를 한 점으로 미뤄 이때까지는 범행과 관련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후 오후 9시 16분께 강 씨는 동생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경찰은 당시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진 상태였던 강 씨 통화내역을 토대로 범행 시각을 추정했다. 범행 당시 아들은 펜션의 다른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고유정은 아들이 다른방으로 향하자 본격적인 범행에 돌입했다. 피해자 강 씨는 졸피뎀으로 인한 약기운이 몸에 퍼져 있었어도 정신을 잃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정은 식사 후 잠을 청하는 전남편에게 다가가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공격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사건 현장인 펜션에는 강 씨가 피를 흘리며 주방을 거쳐 출입문 쪽으로 기어간 혈흔이 남아 있었다. 고유정은 강 씨를 뒤쫓아가 흉기로 최소 2~3차례 더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혈흔상 강 씨가 반항한 흔적은 있었지만, 반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숨진 강 씨는 다음날 낮까지 펜션 내 한 곳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고유정이 숨진 강 씨를 다시 다가간 건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 26일 오전 11시께 고유정은 아들을 제주의 친정집에 데려다준 뒤 다시 펜션으로 향했다. 낮 12시 30분께 펜션에 돌아온 고유정은 시신을 본격적으로 훼손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27일 오전 11시께 종이상자 등을 들고 펜션을 퇴실했다. 이후 인근 클린하우스(쓰레기 분류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고유정이 종량제봉투 4개를 버리는 장면이 찍혔다.
하루 뒤인 지난 5월 28일 오후 3시 30분께 고유정은 앞서 범행도구를 구입한 제주 시내 한 마트로 가 남은 표백제와 테이프, 청소도구 등을 환불했다. 오후 6시에는 제주시 다른 한 마트에서 비닐장갑, 향수, 종량제봉투 30장, 여행용 가방 등을 구매했다.
고유정은 이어 오후 8시 30분께 고유정은 완도행 여객선에 오른 뒤 오후 9시 30분께 훼손한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투를 바다에 유기했다. 고유정이 시신이 담긴 것을 추정되는 봉투를 버리는 모습은 여객선 CCTV에 찍혔다.
오후 11시 완도에 도착한 고유정은 자신의 차량을 몰고 아버지 소유 아파트가 있는 경기 김포로 향했다. 29일 오전 4시께 아파트에 도착한 고유정은 강 씨 시신을 또다시 훼손했다.
시신 훼손 과정에서 고유정은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한 도구를 이용했다. 또 앞서 인천시 부평구의 한 마트에서 구입한 방진복, 커버링 용품 등을 사용했다. 이 용품들은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혈흔 등 증거가 남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의 목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어 31일 오전 3시께 고유정은 해당 아파트 내 쓰레기분리수거장에 종량제봉투를 유기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이날 오전 3시까지도 시신 일부를 훼손했다. 이후 고유정은 오전 4시께 청주 자택으로 향했고, 지난 6일 1일 청주 집에서 경찰에 긴급체포 됐다. 현장에서 범행도구와 고 씨 차량에서 피해자 혈흔이 묻은 이불 등이 발견됐다.
고유정의 범행동기에 대해 경찰은 “프로파일러 투입 결과, 피의자가 전 남편인 피해자와 자녀의 면접교섭으로 인해 재혼한 현재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등 피해자의 존재로 인해 갈등과 스트레스가 계속될 것이라는 극심한 불안 때문에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고유정의 범행 동기와 방법을 밝히기 위한 DNA 감정,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재분석 등의 보강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고유정이 전남편에게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을 먹이고 반수면 상태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한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편 현 남편이 고소한 고유정의 의붓아들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청주 상당경찰서가 제주를 찾아 고유정을 상대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