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역에 흑인 가수 할리 베일리 발탁…희생적 여성 캐릭터 한계 어떻게 다룰지가 관건
사진 출처 = 할리 베일리 인스타그램
그렇다고 인종차별 이슈는 아니다. 애니메이션으로 형성된 아리엘의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 논란의 핵심이다. 물론 인어이기 때문에 하체가 물고기 지느러미라는 부분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색도 아리엘을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 역할을 흑인 배우가 맡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기억해온 아리엘의 이미지가 깨진다는 것이 할리 베일리 캐스팅을 반대하는 이들이 주된 주장이다.
이는 완구 등 캐릭터 사업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리엘의 인형이나 장난감, 그리고 피규어 등은 모두 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색이 특징이라 흑인으로 다시 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와 실사 영화의 캐릭터가 똑같을 수는 없다. ‘알라딘’ 실사 영화의 여주인공 나오미 스콧 역시 애니메이션의 자스민과 그리 닮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리엘처럼 백인 캐릭터가 흑인 캐릭터로 달라지는 큰 폭의 변화는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할리 베일리는 “꿈은 이뤄진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이 속한 ‘클로이 앤 할리’ 공식 트위터에 이런 짧은 글을 올린 뒤 애니메이션 속 아리엘을 흑인으로 바꾼 이미지를 올렸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번 결정이 마블스튜디오를 통해 흑인과 여성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크게 성공한 사례를 디즈니 원작 애니메이션의 실사 영화에서도 적용하려는 전략으로 본다. 바로 흑인 슈퍼히어로가 전면에 나선 ‘블랙 팬서’와 단독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는 ‘캡틴 마블’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블랙 팬서’가 무려 7억 5만 9566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캡틴 마블’은 9억 1029만 달러, 한화로 무려 1조 원을 넘기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사실 디즈니의 인기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흥행을 이뤄냈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유명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2018년 한 미국 TV쇼에 출연해 “딸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못 보도록 금지했다”며 “신데렐라는 부자 남성이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또 인어공주처럼 남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줘선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보수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왕자의 도움을 기다리는 공주’라는 한계가 명확했던 것.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리엘과 클로인 앨 할리 공식 트위터에 게재된 아리엘. 우측 사진 출처 = ‘클로인 앨 할리’ 공식 트위터
극장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디즈니는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주인공인 ‘포카혼타스’와 중국인이 주인공인 ‘뮬란’이다. 둘 다 더는 왕자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는 당찬 여성상을 그려냈다.
디즈니 실사 영화의 시작점으로 알려진 ‘말레피센트’에서는 아예 선악 구도를 뒤흔들어버린다. 대표적인 디즈니의 악역 캐릭터인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원작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이야기 구도를 뒤흔든 것.
아리엘 역할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해서 확실한 변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원작 애니메이션은 키이라 나이틀리의 비판처럼 남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여성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가 원작 애니메이션의 세계관과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다룰지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뮬란’ 실시판으로 캐스팅 된 유역비. 사진 출처 = 유역비 인스타그램
항간에선 ‘블랙 팬서’가 그랬듯 일단은 ‘흑인’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캡틴 마블’의 역할을 맡아줄 디즈니 실사 영화로는 이미 ‘뮬란’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아버지 대신 남장을 하고 전쟁에 참전해 큰 활약을 펼치는 뮬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용감한 여성 캐릭터다. 이미 유역비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있다.
이런 관측에는 롭 마샬 감독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한몫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롭 마샬 감독은 ‘애니’ ‘시카고’ 등의 뮤지컬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만큼 노래가 중요한 ‘인어공주’에 어울린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로 디즈니 실사 영화에 대한 적응도 끝냈다. 다만 롭 마샬 감독이 ‘게이샤의 추억’이나 ‘나인’ 등의 영화에서 여성 혐오론자라는 의혹을 받으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 이런 까닭에 롭 마샬 감독이 요즘 시대가 바라는 아리엘의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아리엘 역할의 캐스팅을 끝낸 ‘인어공주’ 실사 영화는 현재 한창 캐스팅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며 2020년 4월 즈음 본격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