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축제 참가하며 日문화 소비 여전…의류 업계, 브랜드 따라 ‘온도차’
5일 오전 서울 중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이 ‘무역 보복 규탄, 일본산 제품 판매 중단 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보이콧 재팬’. 일본의 일부 제조업 부품 수출 규제 방침에 국내에서 ‘일본 불매운동’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 주력 제조업 분야로 한정됐다. “규제가 지속된다면 한국내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어 국내에서는 시민단체 등의 주도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특히 온라인에선 불매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등에서는 ‘일본 기업 리스트’가 돌고 있다. 리스트 전달과 함께 불매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불매운동과 함께 ‘일본여행 자제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가 예약했던 비행기 티켓 등을 취소하고 이를 ‘인증’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유명 배우가 일본 여행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자 질타가 쏟아지는 일도 발생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일본 출신 연예인을 퇴출해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6일과 7일 양일간 난지한강공원 젊음의 광장에서 열린 ‘2019 원피스 런 인 한강’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난지한강공원에서는 ‘2019 원피스 런 인 한강’이라는 애니메이션 ‘원피스’ 관련 축제가 열렸다. 원피스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이번 행사는 방영 20주년을 기념해 국내 최초로 열렸다.
원피스 주제가를 부른 가수의 라이브 공연과 한국판 성우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일부에선 행사를 두고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행사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 이전부터 예정된 행사였기에 예정대로 진행됐다. 주최사 ‘대원미디어’ 관계자도 “연초부터 기획됐던 행사다. 국가간 외교 문제 때문에 일정을 취소라도 한다면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규모는 난지한강공원 내 젊음의 광장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곳곳에 원피스 관런 설치물이 자리했다. 하지만 넓은 공간에 비해 많지 않은 참가자 수로 한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게임 홍보 체험관 관계자는 지나가는 행사 참가자들을 체험 부스에 붙잡아두기에 바빴다. 주최 측은 “행사일 날씨가 유난히 더웠다. 대부분이 외부에서 진행됐기에 날씨의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행사장을 찾은 이들은 불매운동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 아무개 씨는 “사전에 티켓을 구매해 놔서 왔다. 일본의 조치가 이슈인데 보복 보다는 양국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코스어(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보이콧’ 움직임 속 일본 문화 소비 이어질까
이 같은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는 열리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산 만화를 수입, 번역해 국내에 판매하는 한 출판업체 관계자는 “최근 일본 업체들이 한국 내에서 작가 사인회, 공연, 전시 등을 열고 싶어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국내 업체 입장에선 흥행 부담에 행사를 열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은 더 크다. 최근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으로만 즐기려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대형 팬덤을 보유한 원피스였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오프라인 행사 개최만 꺼려질 뿐 최근의 불매운동에는 업체 입장에서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전했다. “일본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즐기는 소비층은 ‘팬덤’이 강하다”며 “뉴스에서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시위 장면을 봤는데 거기 참가한 대학생이 일본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더라. 전범 기업이면 몰라도 불매운동이 확산된다고 해서 만화 소비량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불매운동’은 온라인에서 더욱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다.
#의류업계, 불매 ‘타겟’에 초긴장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업 분야에서 일어난 논란에 불매운동의 ‘불똥’은 의류업계로 튀었다. 수년간 국내 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해 온 일본산 SPA 브랜드가 주 타깃이 됐다. 실제 불매운동 분위기가 이어진 기간 내내 이용객이 줄어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대형 쇼핑몰이나 독립 매장 등 계산대에 줄지어 선 고객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업계에선 일종의 ‘함구령’이 내려진 상황이다. 소비자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매장 직원까지도 “인터뷰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또 다른 일본산 의류 브랜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당 브랜드 관계자는 “최근 불매운동과 관련해 언론과 접촉하거나 외부에 이야기를 하지말라는 회사 지침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 또한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일본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여기도 일본 기업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대거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많은 회사 구성원들이 불매운동 조짐에 우려가 많았다”면서도 “아직까지 일매출은 변화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