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스페셜 캡쳐
28일 방송되는 ‘SBS 스페셜’ 561회는 ‘나의 수상한 이웃 나탈리’ 편으로 꾸며진다.
경기도의 한 바닷가 마을. 이 일대에선 유명하다는 지윤희 씨(가명)와 같은 빌라 주민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곧이어 언성이 높아진다.
“어딜 따라붙어! 내가 다 찍고 있어” 윤희 씨 손엔 어김없이 휴대폰이 들려있다.
벌써 수년 째, 휴대폰과 태블릿PC 등으로 행인들의 사진을 찍는 윤희 씨와 사람들 사이에서 험악한 욕설, 때로는 폭력까지 오가고 있다.
인근 지구대에 접수된 윤희 씨 관련 신고건수 만해도 한 달 평균 약 10여 건. 사흘이 멀다 하고 들어오는 신고 때문에 지구대에서도 윤희 씨는 이미 유명인사라고 했다.
윤희 씨가 거주하는 빌라의 주인 역시 그녀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호소했다.
밀린 월세만 해도 1000만원에 육박하며 윤희 씨가 복도와 옥상 등 공용공간에 짐을 쌓아두고 매일 이웃과 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세입자들이 모두 이사를 가버렸다는 것.
실제로 이미 윤희 씨가 사는 층은 한 집을 제외하고 모두 공실이 된 상태다. 게다가 윤희 씨 집 안은 짐들로 꽉 차 발 딛을 공간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웃 주민들은 조심스럽게 윤희 씨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여러 갈등 때문에 민원도 수차례 제기해봤지만 해당 지역 주민센터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윤희 씨는 제작진에게 30년 가까이 이웃들로부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배후세력이 이웃들을 시켜 24시간 자신을 감시, 미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자신도 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하수인들을 찍고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윤희 씨는 끊임없는 감시 때문에 프랑스 유학, 박사과정까지 밟고서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한통속이 된 집주인이 자신을 괴롭히는 바람에 살던 집에서조차 쫓겨날 위기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의 바람은 오직 하수인들과 그 배후의 만행을 낱낱이 세상에 알리고 그들이 처벌받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20년째 조현병을 겪고 있는 당사자이자, 현재는 다른 조현병 환자들의 사회 재활을 돕고 있는 이정하 씨는 윤희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위협적인 세상의 전형이라는 것. 정하 씨 역시 얼마 전까지 늘 감시당하고 쫓기는 위협적인 세상에 갇혀있었다고 했다.
“제가 제일 무서웠던 건 뭐였냐면 그림자였어요. 그림자가 살아있는 거야. 눈이 보고 있는 그러한 느낌을 항상 갖고 있었거든요.”
“벽에 소리가 나는 거야. 틱틱틱틱 그다음에 끽끽끽끽 그리고 깜박깜박깜박. 그게 뭐라고 그러죠? 점점점 시간이 지나니까 그 소리가 의문이 드는 거예요. 윗집이다, 윗집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구나.”
환청, 환시, 망상장애 등을 겪는 조현병 환자들은 누가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들이 느껴지는 병이기에 더욱 더 이해를 바라기 어려운 병이다.
최근 ‘진주아파트방화사건’ ‘조현병 환자 역주행’사건 같은 끔찍한 일이 발생한 이후 조현병 당사자들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더욱 커져만 가는 상황이다.
전문가와 병을 극복하고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으는 건 ‘조기치료’와 ‘약’의 중요성이다.
치료시기를 놓쳐 만성화되면 환자가 치료에 대한 거부감도 커질 뿐만 아니라 치료 효과도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의 특성상 당사자들이 본인의 병을 인지하고 치료에 동의하기까지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바로 이 때가 가족과 이웃, 지역 사회의 개입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만약 조현병 환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조현병 당사자들의 가족,이웃들의 고충은 더욱 커진다.
환자의 자의에 의한 입원이 어려운 경우 가족들의 동의하에 입원을 시키는 보호입원이나 자타해 위협이 있는 경우 관련기관의 도움을 받아 응급입원, 행정입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2017년 정신보건법 개정 이후 실제 입원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희 씨의 경우 현재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다.
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 윤희 씨 자의로 통원치료나 입원치료는 기대하기 어렵고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가족과 연락을 취할 수 없어 보호입원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타해 위협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응급입원, 행정입원도 불가능하기에 현재 윤희 씨가 치료를 받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다시 가족이나 이웃들의 부담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 윤희 씨와 이웃들의 사연을 통해 환자의 인권 강화를 위해 개선된 정신보건법의 한계점을 들여다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