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흥행 ‘톱10’ 중 외화 6편 모두 디즈니 영화…‘역전’ 우려도
아직 실망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개봉 일자가 달라 누적 관객수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알라딘’은 이미 지난 5월 23일에 개봉해 2달 넘게 극장가에서 활약 중이다. 보기 드문 극장 장기 레이스로 개봉 당시보다 그 이후 더 많은 관객이 몰리는 역주행 열풍을 보여주고 있다. ‘라이온킹’ 역시 여름방학 시즌 겨냥 영화 가운데 가장 빠른 7월 17일에 개봉했다. 반면 ‘엑시트’와 ‘사자’는 7월 31일에 개봉해 단 이틀 동안 올린 극장 관객수다.
8월 1일 일일관객수를 보면 흥행의 추가 한국 영화로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 ‘엑시트’가 39만 2479명으로 가장 앞서고 ‘사자’가 16만 708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라이온킹’이 8만 7880명으로 다소 기세가 꺾였지만 두 달 넘게 극장가에 머물고 있는 ‘알라딘’은 여전히 6만 4999명의 높은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엑시트’ ‘사자’보다 한 주 빠른 7월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9840명으로 흥행 동력이 꺼져가는 모양세다.
물론 ‘나랏말싸미’도 개봉 초반에는 ‘라이온킹’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기 때문에 아직 개봉 초기인 ‘엑시트’와 ‘사자’이 흥행 여력을 계속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대부분의 기대작 영화들은 개봉 당일부터 2~3일 동안은 출연 배우와 감독, 그리고 홍보마케팅의 힘으로 많은 관객이 몰려든다. 이후 재밌다는 입소문이 더해져야만 흥행 돌풍이 가능하다.
‘엑시트’를 필두로 한 한국 영화들이 여름방학 시즌을 통해 다시 극장가를 수복하는 분위기지만 2019년 상반기는 완벽하게 외화가 한국 극장가를 점령했었다. 8월 2일 기준 2019년 흥행 순위 1위는 ‘극한직업’으로 1626만 4806명이다. 그런데 2, 3위는 ‘어벤져스: 엔드게임’(1393만 3753명)과 ‘알라딘’(1200만 1072명)이다. 4위는 기생충(1005만 6728명)으로 무려 4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왔고 이를 한국 영화와 외화가 각각 2편씩이었다.
흥행 상위 10편 가운데 한국 영화는 4편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화다. 그런데 단순히 외화가 아닌 모두 디즈니 영화다. 한국에서 엄청난 관객 동원력을 가진 마블 스튜디오 역시 디즈니가 지난 2009년에 인수해 디즈니와 한 회사다. 결국 2019년 상반기 한국 극장가는 디즈니 영화가 지배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단순히 올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극장에서 1000만 관객 신화를 쓴 영화는 모두 26편으로 이 가운데 19편이 한국 영화이며 외화는 7편이다. 그런데 7편 가운데 5편이 디즈니 영화(마블 스튜디오 포함)다. 전체적으로는 한국 영화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최근 5년 동안의 상황에선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다. 2015년 이후 1000만 관객 영화는 모두 16편인데 이 가운데 한국 영화는 12편, 디즈니 영화가 4편이다. 올해만 놓고 보면 각각 2편씩이다. 서서히 격차를 줄여온 디즈니 영화가 비로소 올해 상반기에는 한국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역전을 내줄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디즈니는 과거 흥행에 크게 성공한 애니메이션의 실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거듭 흥행 대박을 일궈내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 역시 ‘어벤져스’ 시리즈를 모두 끝낸 뒤 새로운 시작을 이어가며 흔들림 없는 흥행 성적을 써가고 있다. 이제 한국배우 마동석이 출연하는 ‘이터널스’가 제작에 돌입하고, 중국배우 유역비가 나오는 ‘뮬란’도 있다. 게다가 흑인 공주 에리얼이 나오는 ‘인어공주’도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흑인 히어로를 앞세운 ‘블랙팬서’와 여성 히어로의 ‘캡틴마블’을 통해 마블 스튜디오가 흥행 열풍을 불러일으키자 디즈니 실사 프로젝트가 이를 이어 받는 형국이다. 이처럼 계속되는 디즈니의 공습에 한국 영화계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