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쟁당국서 심사,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합병 무산...“일본, 몽니 부릴 수 있다” 우려 목소리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온전하게 인수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심사와 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경쟁국들의 기업결합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이번 합병은 무산된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해양 부문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1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신고 대상국을 확정했다. 한국을 비롯해 EU(유럽연합),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5개국이 우선 결정됐다. 향후 기업결합 대상 국가를 추가로 검토해 신청할 계획이다.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에는 기업결합심사 대상국을 확정한 이날 신청서를 제출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해외 경쟁당국 기업결합 신청 절차가 고차방정식이 됐다. 사진=현대중공업
# 중국에서 첫 발, EU는 최대 고비
해외 심사는 중국에서 첫 발을 뗐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22일 중국 경쟁 당국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냈다. 회사는 각 국가별로 제출할 서류와 방식이 달랐고, 이 가운데 중국 신청서가 가장 먼저 준비됐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전략적으로 첫 심사 대상국을 선정했다고 분석한다. 중국 역시 대규모 조선소 합병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중국 1위 조선소인 중국선박중공업집단과 중국 2위 조선소인 중국선박공업집단은 최근 통합을 추진 중이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중국은 총 규모 1,014만톤, 세계 점유율 17%의 초대형 조선소를 갖게 된다. 한-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게 된 만큼 중국 경쟁당국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조선해양은 EU와 지난 4월부터 사전협의를 진행했다. 지난 6월엔 회사 출범 이후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유럽을 방문해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해외 투자자들을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만났다. 유럽을 찾은 경우는 단 두 차례뿐이었다.
한국조선해양이 일찌감치 유럽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EU가 이번 기업결합심사의 최대 난관으로 꼽혀서다. 글로벌 상선 운영국은 총 25개인데, 이 가운데 10개국이 EU회원국이다. 선박 주문 가운데 절반 이상이 EU 회원국에서 나온다. 특히 EU는 다른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소비자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왔던 만큼, 나란히 세계 1, 2위 조선사 타이틀을 가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이 반가울 수 없다. EU는 한국조선해양의 합병을 상세심사 대상으로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한국조선해양은 당초 한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카자흐스탄의 승인을 받고 EU의 문턱을 넘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중국은 승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일본과 카자흐스탄도 뚜렷한 반대 명분이 없어서다. 4개국의 ‘무난한 승인’은 EU 심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 “일본, 불허 안 해도 몽니 부릴 수 있어”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본이 복병으로 등장했다. 최근 한국을 상대로 한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 국가)에서도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양국 갈등이 격화돼 기업결합 심사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한국 조선업에 견제구를 던지긴 했지만 기업결합심사를 불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며 “다만 최근엔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와 입장을 보면 ‘몽니’를 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6월 말 ‘2019 불공정무역 신고서’를 내면서 한국 국책금융기관이 조선사에 공적자금을 지원한 사안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을 지원한 점을 겨냥한 조치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이 “세계무역기구의 보조금 협정을 어기는 행위”라며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산업성은 기업결합 심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아니지만, 이번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수출 제한 조치를 담당하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 주무부처인 공정취인위원회의 스기모토 가즈유키 위원장은 아베 정부에서 6년째 수장을 맡고 있다. 공정취인위원회는 일본 헙법상 독립기구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에선 최근 아베 정권의 태도로 볼 때 위원회가 정치적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그밖에 최근 신임 회장을 선임한 일본조선공업회(IHI)는 두 기업의 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기업결합을 불허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 독점금지법을 보면, 기업들이 합병 이후에도 독립적으로 영업을 하면 독과점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조선해양은 합병 이후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개별적으로 영업을 한다.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제적 기준과 관렵법에 따라 심사해야하는 만큼 불허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심사 과정에서 시간을 끌거나 조건부 승인을 요구하는 형태로 제동을 걸 순 있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복병으로 등장한 일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최근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해 입장을 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일본 경쟁 당국이 법령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선 한국조선해양이 일본에 심사 신청서 제출을 미룰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다소 잦아 들때까지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최근 한일 관계와 기업결합 심사는 각각 독립적인 사안이다”라며 “일본을 포함해 다른 국가들에 제출할 신청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