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삼보컴퓨터 창업자인 이용태 회장의 장남. 그는 동생인 이홍선 전 두루넷 회장과 함께 삼보컴퓨터그룹을 이어갈 차기 오너 경영인으로 부상했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오너 2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V소사이어티 등을 주도하면서 닷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 관심을 모았다. 미국에 컴퓨터 판매법인을 설립하는가 하면 두루넷을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서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홍순 부회장이 삼보컴퓨터 대표이사직에서 퇴진한 것은 지난 4월14일. 이날 삼보컴퓨터는 이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박일환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삼보측은 이 인사의 배경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구축하고 사업 부문별 책임경영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되 등기이사와 부회장이라는 직위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여기에 그의 부친인 이용태 회장이 여전히 그룹 회장으로서 건재하고 있어 이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퇴진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오가고 있다.
특히 사실상 삼보컴퓨터그룹의 후계자로 꼽혀온 그가 그룹의 모기업인 삼보컴퓨터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많다. 일단 재계에선 그의 사퇴를 최근 삼보컴퓨터그룹의 경영악화와 관련지어 풀이하는 시각이 지배적. 실제로 닷컴 붐이 꺼지면서 삼보는 최악의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삼보컴퓨터는 5천여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01년 63억7천여만원의 흑자, 2000년의 1백59억원 적자에 비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실 폭이 늘어난 셈. 이런 순손실 급증은 두루넷, TG벤처, 나우콤 등 관계사들의 경영악화가 가장 큰 원인. 지난해에 계열사로 공식편입된 두루넷은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삼보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규 사업군 분야에서 수천억원대의 지분 평가손실을 입혔다.
때문에 이번 이 부회장 퇴진은 경영부진에 대해 오너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냐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일반 이사보다 책임이 더 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이 책임경영이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이용태 회장 | ||
그의 대표이사직 사임배경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최근 잇따랐던 일련의 잡음에 대한 수습책이라는 해석이다.
삼보컴퓨터그룹의 가장 큰 현안은 계열사인 두루넷의 경영악화이다.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두루넷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삼보의 계열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말 삼보컴퓨터가 두루넷의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1대주주로 떠올랐다.
두루넷에 대한 출자전환 이후 삼보에선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매각작업을 병행했다. 지난해 삼보컴이 두루넷 매각 상대로 꼽은 회사는 하나로통신이었다.
하지만 거의 매각합의에 도달했던 삼보컴과 하나로는 막판에 매각협상이 깨졌다. 두루넷을 실사했던 하나로쪽에서 감춰진 우발채무가 거의 1조원대에 달한다며 협상을 깬 것.
이에 삼보쪽에선 이미 지난해 실사까지 해서 회사 내용을 잘 알고 있던 하나로가 협상을 깬 것은 회사 경영진의 경영권 욕심 때문이라며 하나로 경영진을 맹비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일로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용태 회장이 직접 상대 회사를 찾아가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또 하나의 잡음은 지난해 불거졌던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됐던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과의 ‘악연’이다. 지난해 검찰에선 TPI의 송재빈 대표가 학교동문 인맥을 이용해 4백억원대의 벤처자금을 조성해 이를 로비자금으로 활용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송 대표와 이 부회장은 서울 S고 선후배 사이. 삼보는 TPI에 3.2%의 지분 출자를 하고 스포츠토토 복권사업에 필요한 복표단말기를 독점공급하는 사업을 함께 벌이기도 했다. 물론 토토 사업은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송씨와 이 부회장은 고교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구설에 올라야 했다. 삼보쪽에서도 TPI에 대한 투자는 두 사람의 개인 교분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기업의 투자활동이었다고 적극 해명했었다.
TPI건은 이 부회장의 개인적인 스캔들과 투자실패가 어우러져 그에게 불명예를 안긴 셈이다. 여기에 올초 성사 직전 무산된 두루넷 매각작업 실패도 그를 궁지로 몰았다는 분석. 일각에선 이것이 결국 그의 대표이사직 사임을 부른 원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또 두루넷이나 소프트뱅크코리아 등 2세 체제로 넘어가면서 벤처쪽으로 사업군을 넓혔지만 이에 대한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모기업의 경영위기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2세 경영진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부회장의 대표이사 퇴진 인사에서 삼보컴이 컴퓨터 전문회사 체제로 돌아가는 인사 개편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같은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보는 그간 2세체제 재편 과정에서 다소 방만하게 펼쳤던 사업을 단순하게 정리하면서 그룹의 모태인 컴퓨터 사업으로 집중하는 인사를 짰다.
하지만 이용태 회장이 올해 칠순의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이홍순 부회장이나 차남인 이홍선 두루넷 부회장이 완전히 퇴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
이번에 이 부회장 후임으로 대표이사에 선임된 박일환 부사장(45)의 경우 이 부회장과 비슷한 연배로 삼보컴퓨터의 국내 사업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박 사장 선임과 함께 물러난 정용근 사장(53)의 경우 이용태 회장 시대를 이끌었던 인사로 분류되고 있어 2세 경영체제를 대비하는 세대교체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결국 이번 이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으로 대표되는 삼보컴퓨터 인사는 그룹 사업구조조정, 세대교체 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삼보의 기사회생을 위한 최대 현안인 두루넷 매각은 KT와 매각협상설이 나도는 가운데 데이콤도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두루넷의 법정관리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매각 협상작업의 새로운 걸림돌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