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취향 따라 타입별 몸통·얼굴 조합 수준…커스텀제작 홍보 업체는 사기 가능성 높아
‘리얼돌 합법화’ 논란이 뜨겁다. 동시에 리얼돌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이 난무한다. 이종현 기자
대법원은 2심 재판부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을)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해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없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인천세관은 2017년 7월 길이 159cm, 무게 35kg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물건’으로 판단해 수입통관을 보류했다. 일본에서 리얼돌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던 A 업체는 인천세관 상대로 ‘수입통관 보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리얼돌을 전체적으로 관찰해 볼 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했다”며 인천세관 손을 들어줬다. 그렇지만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 판단을 뒤엎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얼마 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리얼돌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글쓴이는 “(리얼돌은) 머리 스타일뿐만 아니라 점 위치, 심지어 원하는 얼굴로 커스텀 제작할 수도 있다고 한다.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얼굴이 리얼돌로 만들어진다면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리얼돌 사용으로 성범죄는 오히려 증가할 거다.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실제 여성들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현재 리얼돌은 국내에선 200만 원에서 700만 원 선의 가격대에서 거래된다.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서 제작된 리얼돌을 수입·판매한다. 재료로 의료용 실리콘이 가장 많이 쓰인다. 감촉이 실제와 비슷하고 위생상 안전하기 때문이다. 시중에선 완제품으로 판매되는데 리얼돌 커스텀제작 업체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 리얼돌 커스텀제작? “현재로선 불가능”
많은 여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포감을 표출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리얼돌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이 업체는 원하는 얼굴, 머리스타일 심지어 점 위치까지 주문에 맞춰 제작해준다고 홍보했다. 물론 남자 리얼돌도 있다. 하지만 남성 소비자를 겨냥한 여자 리얼돌이 주를 이룬다.
리얼돌 커스텀제작이 가능하다는 업체의 홈페이지 캡처본. 현재 이 업체는 커스텀제작이 가능하다는 글을 지웠다.
국내 리얼돌 수입 혹은 제작·판매 업체 4곳에 문의해본 결과 커스텀제작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4곳 모두 커스텀제작을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고 강조했다. 커스텀제작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한 업체가 오히려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리얼돌을 제작하는 업체인 팀포유의 김성식 대표는 “리얼돌 제작 과정은 영화 특수 분장의 미술작업과 같다. 사진을 보고 얼굴을 똑같이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현재 중국 업체의 커스텀제작 수준은 몸과 얼굴 등 특정 부위를 여러 형태로 생산해 주문자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 비슷하게 조합하는 정도”라며 “실제 모델이 와서 본떠서 만드는 ‘라이프캐스팅’이 아니고선 커스텀제작은 말이 안 된다. 초상권, 저작권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을 해줄 생각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특수 분장으로 얼굴 본뜨는 것만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든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똑같이 나오지 않아도 컴플레인 걸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커스텀제작을 한다고 해도 어림잡아 바디까지 수천만 원이 든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일본과 중국에서 리얼돌을 수입하는 이상진 부르르닷컴 대표는 “현재 인형 제작에 쓰이는 의료용 실리콘은 3D 프린팅 재료로 쓰일 수가 없다고 알고 있다”며 “현재 리얼돌 커스텀 제작 관련 공포심은 과장된 면이 있다. 일단 커스텀제작 문의 자체가 없고, 문의가 들어와도 제작해줄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얼굴까지 완벽히 커스텀제작이 가능하다고 명시한 업체는 단 한 곳이다. 대부분 언론에서 인용 보도한 업체다. 하지만 이 업체는 사기성이 짙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실제 사기 피해 사례도 있다. 이 업체에 리얼돌 4개를 제작의뢰 했다가 물건을 받지 못한 B 씨는 “제작 기간이 3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하고 3개월 동안 연락을 잘 받아주다가 갑자기 연락 두절됐다”며 “거래도 암호화폐로만 해서 기록이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 140cm 미만 ‘초등생 리얼돌’ 논란 “규제 필요”
리얼돌은 커스텀제작을 제쳐두고도 여전히 많은 논란을 남긴다. 한 리얼돌 수입·판매 업체는 최근 국내 최대 이커머스에서 ‘초등생 리얼돌’을 판매했다. 판매자는 길이 120cm 리얼돌을 판매해 은연중에 미성년자로 인식하게끔 했다. 논란이 되자 판매 중단했다. 해외 쇼핑사이트에선 ‘소녀’, ‘작은 가슴’ 등의 단어를 포함해 홍보하는 일도 있다.
아동형상 리얼돌을 긴급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종현 기자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노르웨이 등 선진국은 아동형상 리얼돌 유통과 구매를 규제한다. 미국에선 아동형상 리얼돌 혹은 섹스로봇 생산을 금지하는 ‘크리퍼(CREERER)법’이 2018년 하원을 통과했다. 노르웨이에선 125cm 이하 리얼돌 구매를 규제한다. 영국은 지난 3월 아동 리얼돌 유통·구매 시 최대 12개월의 징역을 구형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국내도 이를 규제할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아동 리얼돌 판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동 리얼돌은 약한 대상을 향한 욕망 표출을 정당화하는 ‘상업적 성착취’”라며 “욕망을 해소하면 현실범죄가 없어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은 반대다. 아청법이 있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법 적용 범위나 개념 등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 8월 8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아동신체형상성기구’(아동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장난감)를 영리 목적으로 소지·운반하거나 공연히 전시·광고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정 의원은 개정안에서 “아동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성착취를 엄격히 금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 리얼돌 성범죄 해소할까, 증폭할까
현재 한국 사회는 ‘리얼돌 찬성’과 ‘반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리얼돌 찬성’ 측은 리얼돌을 허용하면 성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열려 성범죄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리얼돌 반대’ 측은 성적 욕구만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얼돌’을 사용하면 사람을 사물로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리얼돌은 섹스를 상호적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남성 성욕을 배출하는 행위라는 인식을 강화할 것”이라며 “(리얼돌을 사용하다 보면) 여성을 인격체가 아니라 파편화되고 물상화되어 남성 욕구 배설의 도구로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리얼돌은 결국 남성의 성적 욕구를 정당화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리얼돌을 소유한 한 남성은 “덴마크도 포르노를 합법화할 때 우리와 같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합법화한 뒤 성범죄가 현저히 낮아졌다. 이외에 여러 자료가 성에 개방적일 땐 성범죄가 줄어든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보통 여자를 리얼돌처럼 대할까 우려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우리 사이에선 리얼돌만큼 여자를 대하면 된다는 말을 한다. 작은 상처에도 민감하고 세심하게 관리한다. 섹스토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리얼돌 판매업체 이사 “내 얼굴과 몸 본뜬 인형 곧 출시” ‘리얼돌 모델’도 등장했다. 리얼돌을 판매하는 한 업체 이사인 D 씨는 자신을 ‘한국 최초 신체 본뜬 성인용품 모델 & 디렉터’라고 소개한다. 리얼돌 모델 D 씨가 유튜브 영상에서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D 씨 유튜브 영상 캡처 D 씨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가 왼쪽 눈 밑에 점이 있는데 그거까지 따라 해서 소름”이라며 “몸통은 1층에 머리는 2층에, 조립만 하면 끝”이라고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곧 자신의 얼굴을 한 리얼돌 출시를 예고했다. D 씨는 유튜브 영상에서 “엄청 많은 고민을 했다. (성인용품 업체) 운영자와 모델로서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운영자로서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며 리얼돌 모델이 된 계기를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