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에 팔린 액수만 7000억대…금감원, 상품 판매한 우리·하나은행 집중 검사
문제가 된 금융상품은 ‘금리연계형 DLS(파생결합증권)’와 ‘DLF(파생결합펀드)’다. 유럽 일부 국가들의 금리를 조건으로 두고, 펀드 만기까지 이 금리들이 일정한 수준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3~5% 정도의 이자를 주는 방식이다. ‘국민 재테크 상품’인 ELS(주가연계증권)와 비슷한 구조지만 손실률을 원금의 100%까지 열어뒀다. 유럽 금리가 가입 당시 미리 정해둔 ‘일정한 수준’을 벗어나 기준치 아래로 내려가면 최악의 경우 투자금 전액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선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해 대부분의 은행과 증권사가 이 상품을 팔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유럽 금리가 안정적으로 움직였던 점, 덕분에 만기에 원금과 수익을 안정적으로 지급했던 점 등을 들며 자산가를 중심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알음알음 판매해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국제 금융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면서 유럽 금리가 원금 손실 구간을 뚫고 가파르게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이자는커녕 원금 전체를 잃게 된 것이다.
금감원은 파생결합펀드(DLF), 파생결합증권(DLS) 등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지난 7일 기준 판매 잔액이 총 8224억 원이라고 19일 밝혔다. 우리은행이 4012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우태윤 기자
뒤늦게 실태 파악에 나섰던 금융감독원은 지난 19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8월 7일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DLS와 DLF 판매 잔액은 총 8224억 원으로 집계됐다. 우리은행이 401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3876억 원), 국민은행(262억 원) 등 순이었다. 개인투자자 3654명이 투자한 금액은 7326억 원으로 전체 판매 잔액의 89.1%를 차지했다. 1인당 2억 원 수준이다. 개인 투자자 99%가 시중은행에서 가입했다.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상품은 영·미 CMS 금리 연계 DLF다. 하나은행이 주로 팔았다. 판매 잔액은 6958억 원이다. 이 중 현재 85%가량이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CMS 금리란 외환시장에서 고시되는 ‘이자율 스와프 금리’를 말한다. 만기까지 현재의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경우 총 손실률은 56.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판매 잔액의 대부분인 6141억 원의 만기는 내년에 돌아온다.
문제가 심각한 건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금리에 연동된 DLF다. 판매잔액은 1266억 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판매금액 전체가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만기까지 예상 손실률은 무려 95.1%다. 이 상품의 만기는 오는 9~11월이다. 만기 전까지 독일 금리가 급반등해야만 원금을 건질 수 있는데,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경우 판매 잔액 1266억 원 가운데 1204억 원이 날아간다.
일각에선 투자자들이 스스로 가입해놓고, 손실을 보게 됐으니 문제 삼는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일요신문’이 만난 투자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거래를 해오던 우리은행에서 DLS 상품에 2억 원을 넣었던 A 씨는 “일을 마치고 나가는데 프라이빗뱅커(PB)가 인사를 하면서 다가와 좋은 상품이 있다고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며 “ELS와 비슷하고 손실 위험도 크지 않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A 씨와 같은 지점에서 가입했다는 B 씨는 “그동안 적금만 들어오다가 처음으로 이런 상품에 가입했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상품인 만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PB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고 말했다.
올해 가입한 투자자들은 예측이 어려웠다하더라도 금리가 꺾이기 시작한 올해부터는 상품 판매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한다. 실제 우리은행은 지난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상품들을 판매했는데, 3월 초에도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이미 0~0.1%대에서 맴돌았고 같은달 중순 이후 마이너스 금리구간으로 내려왔다. 금리가 -0.2%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손실이 시작된다. 꾸준히 떨어지다 지난 8월 7일 기준 -0.58%를 기록했다.
올해 3월 우리은행 다른 지점에서 퇴직금을 모두 DLS에 넣었던 C 씨는 “지난해까지 수익이 많이 나왔다는 설명만 주로 듣고 올해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원금을 전부 날릴 수 있다는 얘기는 전혀 못 들었다”며 “적어도 원금 손실이 시작됐을 때라도 말해줬다면 환매 수수료를 내고서라도 중간에 그만뒀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은행들은 올해 초 DLS 등을 판매하면서 금리 구간을 다소 낮췄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은 원금손실 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손실 구간에 접어들때까지도 별다른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은행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소송을 준비하는 투자자들 대부분은 퇴직금을 맡긴 고령자나 주부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금감원에 분쟁조정 등을 신청한 투자자들도 있다. 현재 29명으로 집계됐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은 DLS, DLF 판매와 관련해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을 집중 검사 하기로 했다. 임준선 기자
금감원은 8월 중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의 DLS, DLF의 설계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점검하고, 내부통제시스템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대규모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데도 판매를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핵심 조사 대상이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경영진이 비이자 이익 확대를 위해 무리수를 둔 건 아닌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경영진의 책임이 드러나면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조가 복잡하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데도 개인투자자들 위주로 판매됐다는 점에서 신속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또 DLS가 은행이 증권사 등에 주문해 만든 상품인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판매사가 운용사에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상품 설계를 요구하는 것은 금융업계 관행으로 통해왔지만 이는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실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은행이 DLS 상품과 관련해 수수료 이익을 늘리기 위해 만기를 줄여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금감원 조사 대상은 IBK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다. IBK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우리은행에서 판매된 DLS 상품을 개발하고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투자에서 설계한 상품은 대부분 하나은행에서 판매됐다. 자산운용사 중에서는 유경PSG자산운용 등 3~4곳이 검사 후보 대상이다. 우리은행에서 판매된 DLF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유경PSG운용이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운용사들이 은행들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았는지 등을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하나은행은 금감원 조사를 앞둔 만큼 말을 아끼는 분위기지만, 당혹스러움은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은행은 최근 본사차원에서 PB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여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날선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각에서 거론되는 불완전판매 등은 하지 않았다”며 “금융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현재로선 손실 구간에 있지만 아직 만기가 되지 않은 만큼 확정손실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도 “금감원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답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