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대작 여름 극장가 점령, 한국 영화 실적은 낙제점…기대작 포진한 하반기엔 실적 개선될 듯
영화 ‘나랏말싸미’ 홍보 스틸 컷
지난 7월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2019년 여름방학 극장가를 겨냥한, 그것도 송강호라는 가장 확실한 카드를 기용한 한국 영화 기대작이었다. 그렇지만 채 100만 명의 관객도 끌어 모으지 못한 채 퇴장했다. 개봉 직후 불거진 역사 왜곡 논란이 치명적이었다. 개봉 당일만 해도 당시 위용을 떨치던 디즈니 실사 영화 ‘라이온킹’의 흥행 기세를 꺾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집중됐지만 바로 흥행 동력을 잃고 말았다.
7월 31일에는 두 편의 기대작이 동시 개봉했다. ‘엑시트’와 ‘사자’. 둘 다 아직 극장에서 개봉중이지만 ‘사자’는 사실상 퇴장 수순에 돌입했다. 흥행 성적은 8월 20일 기준 160만 6059명으로 역시 기대이하다. 다행히 ‘엑시트’가 한국 영화의 아성을 지켜냈다. 8월 20일 기준 765만 8481명으로 순항 중인데 잘 하면 1000만 관객 신화까지도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가장 늦은 8월 7일 개봉한 ‘봉오동전투’가 일본과의 경제전쟁으로 조성된 분위기를 타고 403만 8105명(8월 20일 기준)으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외화는 초강세를 보였다. 7월 한 달 동안 1858만 명의 관객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796만 명), ‘라이온 킹’(414만 명), ‘알라딘’(366만 명), ‘토이스토리4’(113만 명)가 7월 흥행 순위 1~4위를 독식했다. 외화이기는 하지만 모두 월트 디즈니사의 영화들이다. 디즈니의 실사 영화들과 자회사인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올 한 해 한국 극장가를 사실상 점령하고 있고 이런 흐름이 여름 방학 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제적으로 여름 극장가 공략에 나선 것 역시 디즈니였다. 7월 2일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을 개봉했고 14일에는 ‘라이온킹’이 개봉했다. 이로 인해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7월 말인 24일과 31일에 몰아서 개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흥행 결과가 나왔다.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은 누적관객수가 801만 9879명이고 ‘라이온킹’은 473만 4142명이다. 그나마 ‘엑시트’가 8월 극장가를 주도하면서 ‘라이온킹’의 독주를 막아낸 부분이 컸다. ‘엑시트’가 아니었다면 ‘라이온킹’ 역시 여름 극장가를 장기 지배하며 훨씬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을 수도 있다. 5월 23일에 개봉해 아직까지 일부 상영관에서 상영되고 있을 만큼 롱런 중인 ‘알라딘’은 무려 1250만 5150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 중이다.
영화 ‘엑시트’ 홍보 스틸 컷
그만큼 디즈니의 파워가 거세다. 성인부터 아이들까지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한 디즈니 실사영화와 마니아 관객층이 두터운 마블 스튜디오 시리즈의 흥행 여력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영화 자체가 위기라는 점이다.
‘나랏말싸미’의 흥행 실패는 이제 송강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지적과 맞닿는다. 물론 송강호는 올해도 ‘기생충’을 통해 1000만 관객 영화의 주역이 됐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2017년 여름 극장가 ‘택시운전사’까지는 확실한 티켓파워를 보여준 송강호지만 2018년 겨울 극장가를 겨냥한 ‘마약왕’에 이어 2019년 여름 극장가를 겨냥한 ‘나랏말싸미’가 연이어 흥행 참패한 것. 극장가의 양대 대목 시즌(여름과 겨울)을 확실히 책임져 줄 흥행카드인 송강호가 지난겨울과 올여름 시즌에서 연이어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흥행보다는 작품성에 더 초점을 둔 ‘기생충’이 비시즌에 흥행 대박을 일궈냈을 뿐이다. 한석규, 설경구 등 과거 확실한 티켓파워를 보여주던 배우들은 이미 그 영향력을 잃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우상’에 설경구와 한석규가 동반 출연했음에도 관객수는 채 20만 명이 되지 않았다. 송강호 이후 새로운 티켓파워의 배우가 등장해야 하는 게 한국 영화의 숙제가 됐다.
영화 ‘백두산’ 포스터
할리우드 진출까지 성공했던 스타 감독들 역시 주춤하고 있다. 2018년 여름 극장가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인랑’은 흥행 참패를 기록했으며 박찬욱 감독은 2016년 ‘아가씨’ 이후 3년째 개점휴업 중이다.
다행히 하반기 기상도는 좋다. 정유미 공유 주연의 ‘82년생 김지영’, 전도연 정우성 주연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하정우 마동석 배수지 주연의 ‘백두산’, 최민식 한석규 주연의 ‘천문: 하늘에 묻는다’ 등 기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할 예정이다. 원작이 워낙 화제였던 ‘82년생 김지영’은 흥행 저력이 충분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전도연 정우성 최민식 한석규 등 연기력이 보장된 배우들이 대거 극장가에 신작을 선보인다. 게다가 송강호를 이을 가장 확실한 티켓파워의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는 하정우가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마동석과 손잡고 신작을 선보인다. 게다가 10월 개봉 예정인 ‘말레피센트 2’ 정도를 제외하면 하반기에는 별다른 디즈니(마블 포함) 대작 영화 개봉 스케줄도 없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