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패치 홈피 캡처” 사진에 타 매체 워터마크 ‘조작’ 밝혀져…루머 유포 형식 진화 ‘연예계 공포’
루머의 형식 차원에서 변정수 사망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지간한 루머는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연예부 기자와 연예관계자들까지 모두 속아 넘어갔을 정도다. 지난 2003년 불거진 변정수 사망설은 메신저를 통해 확산됐다. 그런데 신문기사 형태로 유포돼 많은 이들이 속아 넘어갔다. 방송 촬영을 위해 서울에서 부산 해운대로 가다가 충남 태안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기사 내용도 구체적이었고 형식도 일반 기사와 거의 동일했다. 알고 보니 한 여대생이 다른 기사에 이름만 변정수로 바꾸는 등 살짝 손을 봐서 만든 루머였다. 이는 연예계 악성 루머의 형식을 바꿔 그럴듯한 신빙성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해당 여대생은 장난이었을지 몰라도 그 여파는 연예계 루머를 엄청나게 발전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기사 형태의 악성 루머가 빈번하게 등장했고 심지어 경찰의 내부 보고 문건 형식을 띤 악성 루머까지 등장했다.
장나라·김남길.
2019년 8월 5일은 새벽부터 김남길 장나라 결혼설로 들썩였다.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이 결정적이었다. 누군가 연예 전문매체 ‘디스패치’가 김남길 장나라 결혼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갑자기 내렸다는 글을 올리고 유포한 것. 게다가 해당 기사가 내려지기 전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캡처했다는 이미지 파일도 함께 유포됐다. ‘디스패치’라는 매체명은 악성 루머에 신뢰도를 부여했다. 다만 연예부 기자들까지 속이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이미지 속 장나라의 사진에 다른 언론사 워터마크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디스패치’ 홈페이지에 오른 기사라면 해당 매체의 사진을 사용하지, 굳이 타 매체 사진을 쓸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중은 크게 동요했다. 결국 김남길과 장나라, 그리고 ‘디스패치’까지 나서서 사실이 아니라는 공식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김남길과 장나라. 사람 일이야 알 수 없으니 언젠가 어떻게 인연을 맺어 결혼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혀 연관 관계가 없는 연예인 조합이다. 실제 장나라는 공식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뵌 일도 없고, 연락처도 모릅니다”라고 밝혔다. 기존 지라시 형태로 유포됐다면 신빙성이 낮아 주목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언론사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조작한 것이 이들의 결혼설에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했다. 또 한 번 악성루머가 형식을 바꾸며 진화한 셈이다.
문제는 이게 진화의 끝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문기사 조작에서 언론사 홈페이지 메인화면 조작까지는 10년 넘게 걸렸지만 앞으로는 가짜뉴스의 진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쉽게 다룰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고 있다. 게다가 SNS라는 강력한 유통 수단도 확보됐다.
전문가들은 향후 딥페이크가 연예계 악성 루머와 만날 경우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연예계에서 딥페이크의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몇몇 유명 걸그룹 멤버들의 딥페이크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성 루머까지 딥페이크와 결합할 경우 더욱 무시무시해진다. 예를 들어 유명 방송뉴스 앵커가 “오늘 저녁 뉴스에서 김남길과 장나라의 결혼 소식을 단독 보도합니다”라고 예고 멘트하는 동영상이 유포될 수도 있다. 방송 뉴스의 포맷을 바탕으로 신뢰도 높은 유명 앵커가 직접 이를 예고하는 동영상이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된다면 다시 한 번 대중은 크게 동요할 수 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다면 이런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제작할 수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 피해는 심각하다. 누군가 그런 장난을 치려 한다면 절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악성 루머를 한 단계 진화시킨 장본인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