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조차 필요 없는 개인사업자 신분…정부 추진 ‘통합서비스’ 정작 요양병원은 적용 안돼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병실의 모습. 환자 상태와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간호 인력이 배치된다. 사진=연합뉴스
A 씨의 어머니는 간경화 말기 환자로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다. 의사소통도 거동도 할 수 없는 탓에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간병인은 대학병원 간호사가 건네 준 여러 간병인 협회 리스트에서 A 씨가 직접 골랐다. 사건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A 씨의 어머니 몸 곳곳에서 의문의 상처들이 발견됐다. 팔과 다리에는 멍이 들어있었고, 얼굴에는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A 씨는 간병 과정에서 학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간병인은 모르쇠로 나섰다. 오히려 ‘자신이 A 씨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했는데 세세한 상처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황당한 태도를 보인 건 해당 간병인을 파견한 간병인 협회도 마찬가지였다. A 씨가 협회 측에 간병인 교육 과정에 대해 문의하자 협회 대표는 “매일 찾아가서 잘하라고 한마디씩 한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냐“며 신경질적인 답변을 했다.
결국 A 씨는 해당 간병인을 고소하기로 했다. 그제야 “근무태만이었다”는 간병인의 사과를 들을 수 있었으나 정작 협회 대표는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구청, 시청, 보건소, 의료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관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관할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변밖에 받을 수 없었다. 현행법상 간병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까닭에서였다.
A 씨는 “보호자는 전문 인력을 갖춘 곳이라고 믿고 협회 간병인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는 곳도, 관리 감독을 하는 기관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머니는 말기 환자라 떠나실 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누구나 아프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그때는 분명 개인 간병인을 쓰게 될 거다. 간병인 관리 부분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이전 정부부터 꾸준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지원책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다. 현재는 ‘문재인 케어’의 일환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가족이나 개인 간병인이 수행하던 간병을 병원의 공식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비용도 하루 10만~12만 원에 달하는 개인 간병에 비해 하루 2만 원 정도로 저렴하다.
문제는 이 서비스가 정작 가장 필요한 환자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간병인 이용률이 88%(대한요양병원협회)에 이르는 요양병원에서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집계한 간병인 수는 현재 20만 명 안팎으로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해 개인 간병인 고용률을 줄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인력난과 제도적 미비로 서비스 확대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향후 10년간 전망이 밝은 일자리’ 중 하나로 간병인을 선정한 것도 간병인의 수요가 줄지 않을 것이라는 반증이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국가가 개인 간병인을 없앨 것이 아니라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관리에 소홀한 사이 환자는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간병인은 관리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간병인은 국가자격증을 소지해야 하는 요양보호사와 달리 어떠한 자격 요건도 필요하지 않다. 10만 원 상당의 회비를 내고 가입하는 각각의 협회는 환자와의 계약을 돕는 인력사무소에 가깝다. 특수고용직인 간병인의 법적 지위는 개인 사업자에 해당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않고 병동에서 석션 같은 의료행위를 하는 간병인도 많다. A 씨처럼 간병인으로 인해 피해를 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이 없다. 결국 간병인의 불안한 법적 지위로 인해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
간병인을 대하는 정부의 입장은 가지각색이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간병인과 같은 특수고용직의 고용·산재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노동자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겠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인 환자를 위해서는 장기요양보호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