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휠체어 리프트는 ‘살인기계’…더는 장애인 배제한 사회 디자인 말아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3일 열린 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완공 환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서장연
이런 광화문역에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광화문역 1·8번 출구 방면에 새롭게 설치된 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지하 4층 승강장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3일 열린 ‘엘리베이터 완공 환영식’에 참석한 장애인과 시민 30여 명은 “모든 교통약자가 이제서야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 당연한 권리를 얻기까지는 무려 18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중심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싸워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있었다. ‘일요신문’은 8일 박 대표를 통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고도 당연하다.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사진=박경석 대표 제공
“시작은 2001년 1월 22일 있었던 오이도역 사고였다. 리프트를 타던 한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했다. 리프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들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충격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장애인이 광화문으로 모였다. 목숨 걸고 타야 하는 리프트 대신 전국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이러니하게 광화문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렇게 광화문이라는 구체적인 역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인 광화문역엘리베이터설치시민모임(광엘모)이 탄생했다.”
광엘모가 여타 단체와 비교되는 점은 확장성이다. 광엘모는 장애인의 권익증진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시민도 ‘내 편’으로 불러 모았다. 교통약자 전체의 대변인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광엘모 기자회견 자리에는 ‘노인 유니온’ ‘정치하는 엄마들’ 등 다양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 대표는 “사실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보다 비장애인 교통약자의 이용비율이 더 높다. 이런 점에서 광엘모를 광화문역을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지역주민의 모임으로 확장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광엘모 활동을 계기로 서울시도 2015년 12월 3일 ‘서울시 교통약자 이동권 선언’을 발표했다. 그런데 처음 약속과 달리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애초 기대한 완공시기는 2017년 말이었다. 서울시는 구조와 기술을 핑계 삼았다. 역 내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공사를 안전하게 이행할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리프트 사고 피해자는 다섯 명으로 늘었다.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 2006년 인천 신수역, 2008년 화서역, 그리고 2017년 신길역까지 총 다섯 명이 리프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갖은 이유를 들어 공사를 미뤄오던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신길역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광화문역 내 전기실을 옮겨 그 공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결국 구조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로서는 의지와 예산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리프트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박 대표는 어김없이 지하철 농성에 나섰다. 리프트에 올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감은 채 이동권 투쟁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상의 공간에서 남들처럼 일상을 보내려다 죽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휠체어 리프트는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불렀다.
“추락 사고는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교통공사는 대안으로 공익요원을 배치했다. 호출버튼을 누르면 리프트 작동을 돕는 공익요원이 오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막상 사고가 날 때는 공익요원이 지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100kg이 훨씬 넘는 전동 휠체어가 넘어지는 것을 사람 한 명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신길역 사고 당시에도 눈 앞에 공익요원이 있었지만 손 쓸 사이도 없었다. 사고를 당하신 분은 눈 한 번 뜨지 못하고 몇 달을 혼수상태로 있다 사망했다.”
2019년 9월 3일 광화문역 지하 2층 대합실에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사진=박경석 제공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시민은 “평소 계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광화문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은 2006년에서야 처음 시행됐다. 박 대표는 “우리는 장애인을 배제하고 설계된 사회에서 살아왔다. 단적인 예가 바로 지하철이다. 처음부터 장애인을 고려하고 설계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라며 “더는 국가는 장애인을 배제한 사회를 디자인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22년까지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남아있는 엘리베이터 미설치역은 25개다. 이 가운데에서 종로3가, 고속터미널, 청담 등 주요 역은 아직 설계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해결방안을 강구 중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