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를 수시로’ 소수선발제도 아니었어?…학교별 전형만 3000개 특기자 전형은 ‘깜깜이’…유명대 아닐수록 구멍 많아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제도 개편 지시 이후 사흘 만에 교육부가 입장을 내놨다. 정시 확대는 없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9월 4일 “학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조정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입제도는 평균 4년마다 변화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오년지계도 못 되는 셈이다. 정권마다 바뀌어 온 우리 교육의 발자취와 한계를 짚어 봤다.
논란의 시작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 한 편이었다. 조 후보자의 딸이 2008년 단국대에서 2주 동안의 인턴을 하고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됐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뒤이어 조 후보자의 딸이 입시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쏟아졌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크로 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생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조국 교수의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조 후보자 측은 즉각 “불법적 요소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현 입시 제도, 특히 수시전형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두텁게 쌓인 탓이었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 관련 대학에서는 ‘공정 사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급기야 대통령이 “현 입시 제도가 공평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며 대입 제도를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에는 변함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세부사항은 논의 중에 있다.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된 건 1994년이다. 이전까지는 대학 자체 시험인 본고사와 학력고사가 있었다. 그리고 단순 암기 위주였던 학력고사의 단점을 보완해 만들어진 종합적 사고 능력 시험이 바로 수능이다.
수능이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정시 위주의 입시가 학생들의 창의성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정부는 ‘수시’라는 해결책을 해놓았다. 수시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7년이지만 그 비중이 늘어난 시기는 김대중 정부 때다.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무시험 대학전형’을 추진하면서 수시 비중이 확대됐다.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고 믿었던 이른바 이해찬 세대의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는 학생들의 잠재력도 대입 평가 항목에 넣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내신 성적 외에 여러 비교과 활동을 평가하는 이른바 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됐다. 이 입학사정관 제도가 바로 현재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전신이다. 논문(현재는 연구보고서),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동아리 등 이른바 ‘자동봉진’은 당시 입학사정관 전형에 응시한 일부 학생만 준비하던 것이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수시 비중은 꾸준히 상승했다. 1997년 최초 도입 당시 1.4%에 지나지 않았던 수시 모집 비율은 2011년 60%을 지나 현재 약 80%에 육박하게 됐다. 서울대의 경우 약 80%의 학생을 수시로 모집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0%는 학종으로 선발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고려대도 전체 선발 인원의 70%를 수시로 모집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60%가 학종 선발이다. 다시 말해 2019년 현재 정시로 대학을 가는 학생은 10명 가운데 2~3명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종으로 바뀐 것은 2013년이었다. 당시 면접 과정에서 일부 입학사정관의 비리가 밝혀진 탓이었다. 정부는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교외수상이나 어학성적을 포함한 외부 실적을 평가항목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현재 생활기록부에는 교내수상 내역과 동아리 활동,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등만을 기재할 수 있다. 소논문은 연구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수차례의 개선에도 입시 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문제는 유독 학종에서 발생했다. 19년 경력의 한 강남 학원 원장 A 씨는 입학사정관 제도 도입 이래 이러한 사례를 자주 보아 왔다고 했다.
그는 “대학교 별로 따지면 입시 전형만 약 3000개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특히 특기자 전형은 깜깜이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가르쳤던 학생 중에는 해당 분야에 아예 뜻이 없지만 특성화고 입학을 해서 교내상을 휩쓴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관련학과 교수였다. 10년 전 일이니 털어놓자면 나도 그 친구 포트폴리오를 대신 만들어주곤 했다. 작품을 대신 만들어 줬다. 그게 관행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는 명문대에 들어가서 전과를 했다. 알면 쉽게 가는 거고 모르면 남들과 똑같이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A 씨는 입시 비리가 비단 명문대에서만 생기는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유명하지 않은 대학일수록 이런 문제가 비일비재하다. 일개 입시 학원장의 인맥만으로도 입학이 가능한 일부 대학들이 분명히 있다. 대학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떨어진다. 이건 대학 서열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학종을 제도의 역설이라고 봤다. 애당초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지영 입시 컨설턴트는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는 공부 이외에 또 다른 장점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애초 도입 취지가 잠재력을 가진 특별한 소수도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율이 전체 모집 학생의 80%다. 정말 우리 수험생 10명 가운데 8명이 공부 이외에 다른 특별한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는 말인가. 결국 재능 대신 스펙 쌓기에만 급급한 학생들만 남았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지위를 이용한 비리가 난무하게 된 거다”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계 내부에서도 학종 폐지 문제는 뜨거운 이슈라고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으나 교육부는 학종의 공정성만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정시 비율을 늘릴 경우, 교육열이 높은 강남으로 수험생이 몰릴 것을 우려해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 컨설턴트는 “학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 있는 학생 가운데 정시로 못 가는 학교를 수시로 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이런 경우에는 학종이 공정한 제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 그 학교도 해당 학생을 서울로 보내기 위해 상 몰아주기를 했을 게 뻔하다. 공정성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