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판매 여부가 핵심…배상 비율은 투자자별로 차이 클 듯
우리은행이 판매한 파생결합펀드(DLF)의 원금 전액 손실이 확정됐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9월 26일 만기가 도래한 DLF ‘KB독일금리연계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제7호(DLS-파생형)’가 ‘원금 100% 손실’로 처리됐다. 국내에 판매된 전체 DLF(판매잔액 총 8224억 원)가운데 원금 전액 손실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상품의 최종 손실률은 ‘98.1%’라고 밝혔다. 원래 100% 손실이지만 만기까지 펀드를 유지한 경우 제공하는 1.4%의 쿠폰금리와 관리비용 일부 정산(0.5%)을 반영한 결과다. 만약 1억 원을 투자했다면 192만 원만 건질 수 있다. 올해 5월 판매된 이 상품엔 총 48명이 83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금 83억 원이 1억 577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우리은행의 DLF 상품 만기는 이번 3건을 제외하고 앞으로 12건 더 남았다.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상품은 지난 9월 25일 처음으로 만기가 도래했다. 영국과 미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와 연계된 ‘메리츠금리연계AC형리자드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37호(DLS-파생형)’ 상품이다. 손실률 46.1%로 확정됐다. 원래는 원금이 정확히 반토막 났지만, 쿠폰금리로 원금의 3.3%, 운용보수 정산으로 0.36%를 돌려받았다. 하나은행 역시 내년 4월까지 만기가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KB독일금리연계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제7호 상품이 9월 25일 원금 100%로 손실처리됐다. 국내에 판매된 전체 DLF 가운데 원금 전액 손실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우태윤 기자
#투자자는 소송 제기, 금감원은 조사 결과 발표 예고
거액의 손실이 확정되면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판매한 상품 투자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소송에 나섰다. 지난 9월 25일 금융소비자원(금소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DLF 투자자, 법무법인 로고스와 함께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법인, 담당 프라이빗뱅커(PB)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DLF 사태와 관련한 첫 민사 소송. 은행이 민법과 자본시장법 등을 위반했으니 투자 원금과 가입일부터 최근까지의 이자를 돌려달라는 게 이번 소장의 핵심이다. 법무법인 한누리도 투자자들을 모아 단체소송을 준비 중이다. 현재까지 투자자 40여 명이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DLF를 판매한 은행을 비롯해 이 상품을 설계한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합동조사를 진행해온 금융당국의 중간결과 발표도 예고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6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국정감사 이전에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검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안팎에선 이르면 10월 2일로 관측하고 있다. 금감원 검사는 검사국과 분쟁조정국이 각각 진행해왔다.
금감원 은행검사국 등은 그동안 은행들의 DLF 판매 전후 상황부터 은행 시스템 및 경영진 관여 여부를 확인해왔다. 투자자들의 민원을 접수해 조정을 하는 분조국의 경우, 그동안 사전 조사와 법률 자문 등에 집중해 왔다. 원칙적으로 손실이 확정된 사례만 조정이 가능한데, 그동안 접수된 투자자들의 민원은 손실이 확정되지 않거나 중도 환매 수수료를 내고 만기 전 손실을 확정한 사례가 대부분이라 엄밀히 따지면 분쟁조정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하나은행의 DLF 만기가 도래했고, 사전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었던 만큼 분쟁조정위원회 개최 등 관련 절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이 9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피해 관련 계약 취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소장을 접수하기 전 성명서를 읽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불완전 판매 여부가 핵심 쟁점…은행들 “유구무언”
금감원 분쟁조정과 민사소송의 핵심 쟁점은 ‘불완전 판매’ 입증 여부다. 쉽게 말해 은행이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상품 가입 단계에서 원금 손실 가능성을 설명한 녹취가 있고, 상품 판매 후 ‘완전판매’를 한 것인지 전화로 확인하는 ‘해피콜’도 시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초고위험’ 상품임에도 안전 자산인 것처럼 속였다는 게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독일 금리연계 상품인데도 독일 국채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잘못 설명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DLF에 가입한 이들을 일반투자자로 볼지, 전문투자자로 볼지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어떤 투자자로 보는지에 따라 은행의 책임과 손해배상 여부와 금액 등이 크게 엇갈릴 수 있다. 금융투자자는 손실 감내 능력과 투자경험 등에 따라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로 구분한다. 전문투자자는 연소득 1억 원 이상 또는 총자산 10억 원 이상으로, 금융상품 잔고가 5억 원을 넘어 금융투자협회에 등록해야 한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일반투자자로 봐야 하지만 자본시장법 249조에 따르면 사모펀드에 1억 원 이상 투자하면 전문투자자로 본다. DLF는 대표적인 사모펀드다.
일반투자자에게 금융상품을 팔 때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적정성의 원칙, 적합성의 원칙, 설명의 의무다. 적정성의 원칙은 투자자의 연령·수입원·금융지식·투자목적 등을 파악해야 하는 의무고, 적합성의 원칙은 고객의 투자성향을 분석해야 하는 의무다. 전문투자자로 분류되면 설명의 의무만 이행하면 된다.
DLF 상품에 수억 원씩 투자한 만큼 전문투자자로 분류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투자자가 고액 자산가가 아닌 퇴직금이나 예금 등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만난 투자자 가운데 일부는 고령인 데다, 치매 환자도 섞여있었다. 여기에 은행들이 ‘투자자성향분석보고서’ 등을 동의 없이 임의로 작성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투자자는 “은행에서 상품 가입 당시 작성한 투자성향평가서를 보면 나의 투자성향이 95점이었다”며 “안정적인 상품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고, 시킨 대로 연필로 동그라미 친 곳에만 사인만 했는데 1등급짜리 공격형 투자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DLF 투자자 가운데 해당 상품에 재가입을 했거나 다른 파생상품 투자를 한 경험이 있는 투자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DLF를 통해 연 3~5% 수익을 얻었던 투자자도 있다. 이 경우 투자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10월 2일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DLF·DLS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리면 투자자 개별 사안마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와 그 정도를 따진다. 별도의 비용 없이 1~3개월이면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 만약 불완전판매 등이 인정되면 피해액의 최소 20%에서 최대 50%까지 배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분쟁 조정은 법적 효력이 없는 ‘화해권고’에 가깝다. 투자자와 은행 중 어느 한쪽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소송은 확실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시간과 비용이 든다. 높은 배상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2005년 우리은행 ‘파워인컴펀드’의 경우, 공모펀드인 데다 원금 전액손실이 발생했지만 대법원은 배상 비율을 손실액의 20~40%로 낮게 판결한 사례도 있다. 한 변호사는 “불완전 판매 여부부터 투자자의 나이, 투자 경험 등이 소송 등의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며 “투자자 개인별로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금융당국 조사 결과와 별개로 자체적으로 고위험 상품 투자한도를 정하는 등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은행 관계자들은 모두 “현재로선 진행 중인 금융당국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고객 보호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는 것 외엔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