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수익률 5~20%” 간접투자도 급증…제때 못 팔면 투자자 손실 커 ‘폭탄돌리기’ 주의
70대 개인 사업자 A 씨는 3년 전부터 해외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세대 주택과 비슷한 건물들을 매입한다. 보통 40억 원 정도를 마련해 투자처를 찾는데, 모자라는 금액은 현지에서 대출을 받는 식이다. A 씨가 그동안 올린 수익률은 평균 12%. 그는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수치지만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이만한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투자처는 찾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조만간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그동안 눈여겨봤던 투자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원화 가치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달러화를 보유해야 하고, 미국 부동산투자는 그 연장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뭉칫돈을 굴리는 국내 자산가들의 ‘블루오션’으로 통하던 해외 부동산 투자에 비상등이 켜졌다. 사진=연합뉴스
A 씨가 투자하는 방식은 본인이 실사부터 매입까지 모두 진행하는 ‘직접투자’다. 아직까지 개인의 직접투자 액수만 따로 집계된 통계는 없다. 기획재정부 등은 국내 거주자가 해외 부동산 취득을 위해 외국으로 송금한 금액을 토대로 그 규모를 추산하고 있는데(2019년 1분기 16억 1000만 달러,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 업계에선 법인의 투자 규모가 여전히 크지만 개인의 직접투자 금액도 최근 수년 사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엔 시중은행들이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직접 투자 확대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올해 초부터 해외 부동산팀을 구성해 전담팀을 운영하거나, 각종 세미나와 설명회 등을 경쟁적으로 열면서 자산가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하기엔 늦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선택의 폭이 넓어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며 “당분간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는 직접투자보다 더 활발하다. 최근 증권가에서 나오는 해외 부동산 관련 펀드는 조기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엔 고액 자산가만 참여할 수 있는 사모펀드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가 우후죽순 늘고 있어 일반 투자자들의 참여가 늘었다. 증권사들이 ‘홍보하는’ 수익률은 최소 5~20%로 다양하다. 한 대형증권사 임원은 “주식이나 국내 부동산 시장과 비교하면 수익성이 좋아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회사의 해외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지난 8월 말 순자산 기준 사상 처음으로 50조 5968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41조 3466억 원. 특별·혼합자산 등을 포함한 대체투자 총 규모는 104조 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28조 원 늘었다. 100조 원을 넘어선 것도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증권사들은 펀드 운용과 함께 자기자본을 이용해 직접 투자도 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국내 중대형 증권사 가운데 해외 부동산 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는 없다. 미래에셋대우는 프랑스 마중가 타워를 1조 1000억 원에 인수했고, 최근엔 미국 최고급 호텔 15곳을 약 6조 6600억 원에 매입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하나금융투자 등도 유럽 빌딩 등에 투자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부동산이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해외 부동산 투자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와 기관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생산 기지와 별개로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고, 최근엔 각 공제회들도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영국과 독일에 집중됐던 투자처가 올해부터 유럽 전반으로 확대돼 시장이 넓어졌는데도 해외 부동산 시장에 ‘태극기 꽂기’ 전쟁은 더 치열해졌다. 오피스나 주택이 거의 없고 여행지로만 치부됐던 국가들도 투자 대상에 올랐다. 전통적으로 각광을 받아온 미국과 동남아시아 시장 역시 좋은 매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 시장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여 본 투자자들과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가격 거품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들 스스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엔 해외 부동산 중개 업체들은 매물이 나오면 한국 투자자들을 먼저 찾는다. 한국 투자자가 없으면 입찰 일정을 연기하기도 한다. 주요 고객이자 큰손으로 ‘대우’를 받는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글로벌 호갱’ 취급을 당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부동산을 비싼 값에 경쟁적으로 사온 만큼 리스크도 크다. 특히 증권사들은 부동산을 계약한 뒤 펀드를 조성, 국내에서 기관투자가 또는 일반에 재판매(셀다운)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제때 팔지 못하면 오롯이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증권사들은 재판매 규모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무리하게 사왔다가 팔지 못한 매물이 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JB자산운용이 운용하고 KB증권이 판매해 개인과 기관투자자가 조성한 3264억 원 규모의 호주 부동산 투자 펀드가 현지 운용사인 LBA캐피탈의 대출 약정 불이행으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KB증권은 자금 회수 및 소송전에 돌입했지만 업계에선 100% 자금 회수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가 판매한 해외 부동산 펀드 관련 파생연계증권(DLS)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최근 만기를 연장했다. 독일 현지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현재 German Property Group)가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건물을 개발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싱가포르 역외펀드(AGPI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이다. 만기 수익률은 14%였다.
그러나 독일 베를린 파워플랜트 개발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원리금 상환에 실패했다. 이번엔 만기 연장으로 버텼지만 앞으로도 허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만기상환이 다가올 때마다 연장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신한금투는 TF를 구성해 부동산 매각이 이뤄지면 언제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증권사들은 시장 과열과 사고에 대한 우려에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의 상품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낮고, 오히려 안정적이라고 주장하는 곳도 적지 않다. 금융업계 다른 관계자는 “투자 시장은 경쟁이 붙고 과열될수록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 경우 무리한 투자나 검증 안 된 상품들이 쏟아질 수 있다. 결국 위험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라며 “지금 투자를 하려면 오히려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