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주민들, 당시 강압적 수사 지적…“이춘재 자백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재심 사유”
화성 주민들은 이춘재의 진술에 신빙성을 높이는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화성군 진안리(현재 화성시 진안동) 토박이이자 이춘재와 윤 아무개 씨를 모두 기억하는 화성 주민들은 윤 씨가 범인일 리가 없다고 지속해서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인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이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본관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브리핑을 열고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춘재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오고 윤 아무개 씨를 기억하는 A 씨는 “걔(윤 씨)는 범인이 아니라는 애기를 수없이 했다. 걔는 완전 절름발이에 정신도 온전치 못한 애였다. 걔가 혼자 높은 담을 넘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당시에 형사들이 걔를 패고 협박해서 강제로 진술시킨 거라고 다들 알고 있다. 현장검증 때도 형사들이 옆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걸 당시에 똑똑히 봤지만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화성 주민들은 윤 씨를 가족이 없는 고아로 기억했다. 진안리 토박이인 B 씨는 “걔(윤 씨)는 열 몇 살에 지금으로 치면 카센터에서 일하고, 고아라 가족이 없다 보니까 데려다가 속된 말로 ‘족쳐서’ 무기징역 살게 한 것으로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며 “걔는 그냥 묵묵히 일하고 인사도 잘하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이어 B 씨는 “당시 경찰은 20~30대 남자들을 불러다가 강압적으로 조사했다”며 “경찰이 임시 거점으로 쓰던 역 근처 모텔 방에서 사흘 동안 붙들려 거짓말 탐지기까지 써가며 심문을 받았고,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숨겨놓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새벽에 화성군 진안리 가정집에 침입한 범인이 자고 있던 13세 중학생 박 아무개 양을 살해한 사건이다. 연쇄살인과 범행 수법이 비슷했지만 모방범죄로 결론났다. 범인으로 지목된 윤 씨는 당시 22세였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나온 음모를 일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를 토대로 윤 아무개 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뒤 자백을 받아냈다. 결국 윤 씨는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하승균 전 총경은 “8차 사건은 재판까지 끝난 사건이다. 이춘재가 자신의 진술 신뢰도를 떨어뜨려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고도의 작전이라고 이해한다. 윤 씨가 절름발이였던 것은 기억하지만 정신지체가 있었던 것은 기억 못 한다”며 “당시 사건 현장에서 나온 음모에서 일반인과 비교해 300배 높은 구리, 아연이 검출됐다. 자전거 수리공, 경운기 수리공 등 정비 인력을 중심으로 수사했다. 경운기를 수리하던 윤 씨의 머리카락과 사건 현장의 음모에서 나온 게 똑같았다”고 강조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를 담당하는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이춘재가 8차 사건도 본인소행이라고 진술해 신빙성 등을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을 담당해 무죄를 받아내며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재심 사유가 된다“며 ”다만 자백의 신빙성을 먼저 확인해야 하고, 8차 사건 전후 과정부터 전체 수사 과정 등 전반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심 사건의 경우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편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살인사건에 8차 사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춘재가 8차 사건을 제외한 5건의 살인을 추가로 자백했다고 알려졌지만, 8차 사건을 포함해 4건의 살인을 추가로 자백한 셈이다. 이춘재의 8차 사건 자백이 진실이라면, 이춘재는 말 그대로 자신의 집 반경 100m 안에 살던 이웃 여동생을 죽인 셈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