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문 회장 | ||
과거 벤처붐 때 증시를 이끌었던 인물은 권성문 KTB그룹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사람은 권 회장과 박 회장 둘뿐이다.
이들은 옥션(권성문)과 다음(박현주)에 투자해 엄청난 투자 이익을 올려 가장 큰 닷컴붐 수혜자로 꼽혔었다. 최근 이들이 다시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재개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 회장이나 박 회장은 닷컴붐이 절정에 올랐던 99년 초 이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둘 다 국내 시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미국행을 택했고 1~2년간의 잠행을 거쳐 최근 다시 모두 국내 시장에 복귀했다.
권 회장은 지난 2001년 8월 ‘국제경영을 하겠다’며 느닷없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당시 KTB네트워크에선 권 회장을 미국 현지법인인 KTB벤처스 회장으로 선임했다. 안방 살림은 국무조정실장 출신인 이영탁 KTB 회장과 권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백기웅 당시 부사장이 책임지는 형태였다.
그때 권 회장은 미국행의 목적에 대해 “KTB네트워크의 ‘글로벌화’라는 기치에 걸맞은 장기전략 수립과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권 회장은 국내에 철저하게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없는 사이 국내에서는 그의 향후 거취를 두고 무수히 많은 얘기들이 나돌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그는 지난 3월 조용히 국내 경영현장에 복귀했다.
그가 국내에 없는 사이 KTB는 시원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닷컴붐이 꺼지면서 벤처쪽에 투자한 KTB의 수익률이 급감했다. 게다가 게임과 영화라는 두 가지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놓고 영화쪽에 베팅했던 것도 KTB의 실책이었다. 최근 닷컴붐 재도약의 디딤돌인 게임관련주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 박현주 회장 | ||
하지만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오는 법. 권 회장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이영탁 KTB 회장이 초대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됐다. 때맞춰 귀국한 권 회장의 국내 체류기간도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경제 수행단에 권 회장도 동행했다.
정치권과 언론의 시야에서 철저히 벗어나려했던 지난 3년여 동안의 그의 행보에 비추어보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이를 그의 국내 경영 일선 복귀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KTB의 한 관계자는 그가 3월 이후 “또박 또박 출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짐도 좋다. 2년 전 팬택과 구조조정펀드를 결성해 공동인수한 팬택&큐리텔(옛 현대큐리텔)이 올 가을 상장을 앞두고 대박 조짐이 일고 있는 것. 팬택&큐리텔의 지분 중 KTB의 몫은 20% 정도. 과거 KTB가 옥션 매각에서 얻었던 것보다 이번에 얻을 수익이 더 클 것이란 전망도 있을 정도다.
이에 비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아직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이 미국으로 돌연 떠난 것은 2001년 2월. 권 회장보다 반년 정도 먼저 떠난 셈. 물론 그가 소리 소문없이 국내에 돌아온 것도 그 정도 빨랐다.
그는 애초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영어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그의 말대로 영어와 경영 공부에 전념했다. 지난해 5월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최고 경영자 과정을 마친 것.
▲ 지난 5월 KTB는 사진 속 건물을 팔아 부채규모를 줄였다. | ||
하지만 이후 그는 급속도로 수그러든 닷컴붐만큼이나 빠르게 루머의 늪에 빠져들었다. 주로 정치권과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기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 결국 그는 2001년 2월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국내와 거리를 두었다.
KTB의 권 회장과 다른 점은 오히려 지난해 5월 귀국한 이후 잠행의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것. 미래에셋 쪽에선 박 회장이 “최근에도 금융쪽의 고위직 관리를 만나는 등 경영에 필요한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지만 대외적인 활동은 일체 끊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에셋투신운용의 경우 지난해 국내 46개 투신운용사 중 수익률 1위를 기록했고, 미래에셋증권도 순이익 부문에서 국내 증권사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미래에셋그룹이 금융계의 중견그룹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박 회장의 올해 경영 강조 사항은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자’다. 때문에 박 회장이 대외 활동을 철저하게 피하고 있는 것이 ‘리스크 관리 활동의 일환’이란 우스개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그가 DJ정부 시절 내내 정치권 연루설로 시달렸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닷컴붐의 절정을 맛봤던 두 사람은 이후 극심한 성공 후유증을 앓았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란히 국내 활동을 재개한 지금 이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