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국방부 인정했는데 보훈처가 반려”…보훈처 “나이 들어 생긴 질병인지 확실치 않아”
25일 김문구 국가유공자복지회 회장을 만나 월남전 참전 중 부상을 입게 된 경위와 국가에서 허리부상을 공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연을 들었다.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 9월 예비역 중사 하재헌 씨 공상 처분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2015년 북한 목함 지뢰에 두 다리를 잃은 하 씨에게 육군은 전상(적과의 교전이나 이에 준하는 작전수행 중 입은 부상) 판정을 내렸지만 국가보훈처가 공상 판정을 내리면서다. 10월 2일 국가보훈처가 재심의를 거쳐 하 중사에게 전상 군경 판정을 내리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김문구 회장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전했다. 1971년 베트남전 당시 김 회장이 근무하던 부대에서 한 병사가 총기 난사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김 회장은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또 이를 피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깔려 허리를 다쳤다. 김 회장은 공무수행 중 겪은 일인 만큼 당연히 공상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공상 판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김 회장은 대대장의 진급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승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한 대대장이 병사 총기 난사 사건을 은폐했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사단 의무대 기록까지 통째로 사라졌다고 했다.
1997년 김 회장은 국방부 공상 신청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목격자와 의무병 증언을 얻어내 공증까지 받아 제출했다. 국방부는 이를 기각했다. 김 회장은 사건 중심에 있던 소대장과 대대장 증언을 제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과정을 6차례 반복했고, 7번째엔 실제 총기를 발사한 동료 병사 증언을 제출했다. 결국 총상에 의한 장애 판정은 공상이지만 허리 부상은 인정받지 못했다.
김 회장은 “허리 부상을 인정 받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약만 타먹고 있는 상황”이라며 “허리 부상을 당해 전역을 한 이후 제대로 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허리 디스크도 있어 조금만 걸어다녀도 쥐가 나는 경우가 많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김 회장에게 찾아 왔다. 김 회장은 2017년 6월 15일 국가유공자 청와대 오찬에 초대를 받았다. 김 회장은 오찬 중 문 대통령에게 자신의 사연을 말했다. 김 회장은 “문 대통령도 당시 참모 한 명을 불러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고, 그 분이 내 이야기를 자세하게 메모해 갔다”고 말했다.
김문구 회장은 월남에서 총상을 입고 허리부상을 당했는데 보훈처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김 회장은 “하재헌 중사 논란을 보고 나와 똑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육군에서는 하 중사를 전상이라고 인정했지만 보훈처에서는 공상으로 인정했다. 나도 국방부에서는 공상으로 인정했지만 보훈처에서는 공상이 아니라고 했다. 국방부가 수사까지 해서 당시 허리 부상이 맞다고 인정한 사건을 왜 이렇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김 회장은 이낙연 국무총리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현충일을 맞아 중앙보훈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월남 참전 용사 신동문 씨를 만났다. 신 씨는 “전쟁 중 고막이 나갔는데 서류가 없다고 기각이 됐다”고 하자 이 총리는 “없는 서류를 어디서 가져오겠느냐”며 “전우가 많이 돌아가셨으면 인우보증(다른 사람의 어떤 법률적 행동에 대해 보증을 서주는 행위)을 어떻게 하나.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당시 부상을 입은 게 확실하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인우보증인만 10명을 세웠는데도 인정받지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김 회장은 “자연스레 민주화 운동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 운동은 상대적으로 폭 넓게 인정하는 것 같은데 참전 용사들은 인정받기 너무 어렵다.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행정소송을 하려고 변호사를 찾았다 수임료가 550만 원 든다는 얘기에 섣불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김 회장은 “보훈처가 최대한 보훈대상자의 편에서 일을 해야지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국방부에서 오랜 조사 끝에 공상 인정을 했는데 보훈처에서 너무 쉽게 취소해서 어이가 없었다. 민원인을 두 번 죽이는 결정이었다. 그 부상 때문에 고생한 지난 세월을 위해서라도 내 명예를 꼭 찾고 싶다. 하 중사처럼 나도 끝까지 싸우다 보면 제대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