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UCC 산업 발전 위해 저작권법 예외조항 ‘공정이용(Fair Use)’ 포괄적 용인돼야”
국내에 출시된 ‘터보레이터’와 미국 원작 ‘The Penetrator’의 포스터
“아일 컴 어게인(I’ll come again).”
‘터보레이터’ 포스터에 등장하는 문구다. “아일 비 백”을 패러디한 이 대사는 ‘터보레이터’가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한 영화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단순 패러디가 아니다. 성인용 패러디 영화로 스토리 라인도 ‘터미네이터’를 닮아 있다.
핵폭발 이후 미래에서 AI(인공지능)가 인조인간 터보레이터를 현재의 세계로 보낸다. 지구인을 성노리개로 만들기 위해 온 터보레이터는 여성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또 다른 터보레이터가 출동해 벌어지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 포르노물로 원제는 ‘The Penetrator’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포르노 수입은 불법이지만 당시 이 영화는 국내로 정식 수입돼 비디오 대여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의 3류 포르노를 수입한 국내 비디오 업자는 수위를 조절해서 편집, 국내 비디오 심의 기준에 맞춘 성인영화로 재탄생시킨 것. 이 과정에서 제목도 ‘터보레이터’가 됐다. 비디오 대여시장에서 엄청난 돌풍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터보레이터2’도 출시됐는데 미국에서 정식으로 제작한 후속편이 아닌 국내 수입업자가 짜깁기로 편집한 영화였다.
미국의 정식 포르노를 편집한 영화인 터라 기존 성인영화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노출 수위는 국내 심의 기준에 맞췄지만 설정이나 장면 등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특히 세기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성인영화로 패러디했다는 점이 국내에서 상당히 화제가 됐다.
레슬리 닐슨의 ‘총알 탄 사나이’ 포스터.
미국에서는 패러디 영화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미국 포르노 시장에선 인기 할리우드 영화를 패러디하는 포르노가 오랜 기간 인기 장르로 자리를 잡아왔다. 이런 흐름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미국 유명 포르노 제작자인 비비드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는 아예 ‘Cosplay Videos’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여기에선 마블과 DC코믹스의 인기 슈퍼히어로를 거의 다 만나볼 수 있다. ‘어벤져스’는 물론이고 ‘원더우먼’ ‘슈퍼걸’ ‘엑스맨’ ‘스파이더맨’ ‘울버린’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다크나이트’ 등을 패러디한 포르노들이 눈에 띈다. 게다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패러디 포르노도 있다. 할리우드에선 결코 한 영화에 함께 출연할 수 없는 조합도 눈길을 끈다. 바로 ‘슈퍼맨 대 스파이더맨’이라는 포르노다. DC코믹스와 마블, 그리고 소니까지 판권이 꼬여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 힘든 슈퍼히어로들도 포르노에서는 동시 출연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이뤄질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과거 대여용 에로비디오 시장에선 유사한 상황이 연출됐었다. ‘용의 국물(용의 눈물)’ ‘털밑썸씽(텔미썸씽)’ ‘공동섹스구역 JSA(공동경비구역 JSA)’ ‘인정상 사정할 수 없다(인정사정 볼 것 없다)’ ‘살흰애 추억(살인의 추억)’ 등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같은 패러디 성인물이라기보다는 비슷한 제목을 활용한 눈길 끌기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요즘엔 보기 힘든 현상이 됐다.
이런 차이는 한국과 미국의 법 적용이 서로 달라서다. 바로 ‘공정이용(Fair Use)’이라는 개념인데 미국은 ‘공정이용’이 포괄적으로 용인되는 데 반해 한국 저작권법은 ‘공정이용’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의 저작권법은 논평이나 비평, 뉴스 보도 및 학문적 연구 등을 목적으로 원작을 ‘공정하게 사용’하는 조건이 충족되면 원작자 허락 없이 손질하는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1994년 ‘(오) 프리티 워먼’ 관련 소송에서 ‘패러디’ 역시 저작권법의 예외 조항인 ‘공정이용’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당시 마이클 잭슨과 돌리 파튼 등 인기 가수들과 미국음악발행인협회 등이 대법원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 판결로 인해 미국 예술가들은 기존 작품을 패러디 기법으로 개작하는 창작 영역을 보장받게 됐다.
그렇다고 국내에서도 이런 패러디 성인영화가 대거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작권법의 공정이용이라는 개념의 포괄적인 용인이 국내에서도 시급한 과제로 손꼽힌다. 국내 저작권법은 제35조의3에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규정하고 있지만 개개의 사안별로 구체적으로 검토해봐야 하는 다소 추상적인 기준이다. 아직까지 판례는 미국과 달리 포괄적으로 공정이용을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유튜브 등을 통해 UCC(이용자제작콘텐츠)를 둘러싼 저작권법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UCC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저작권을 이용 목적과 사례에 따라 판단하는 ‘공정이용’이 포괄적으로 용인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